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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시몬처럼 괜찮은 여자가





제출용과 소장용을 구분했던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다. 일기는 중요한 초등 숙제 중의 하나였는데 선생님이 검사하는 일기에 내게 중요한 그 일들을 써낼 수 없으니, 일기를 ‘제출용’과 ‘소장용’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었다. 제출용은 ‘오늘 엄마가…’ 아니면 ‘오늘 동생이…’로 시작했고, 소장용은 ‘오늘 2교시가 끝나자마자 그 애가 내 옆자리로 와서는…’으로 시작하곤 했다. 사건과 사건에 대한 설명, 해설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애도 나를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에 대한 물음이 3년 정도 계속되었는데, 그렇게 시작된 일기쓰기는 제출이 필요하지 않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거쳐 회사에 다닐 때까지 이어졌다. 결혼 후 여러 번 이사하는 와중에도 초등학교 일기, 즉 소장용 일기는 무사히 살아남아 안방 앞 베란다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70대 후반, 아니 80대 중반쯤 되어 인생에 낙이 없고, 재미가 없고,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남아도는 때가 오게 되면, 그때 꺼내서 재미있게 읽어보려고 한다. 지금 꺼내 보기에는, 심히 부끄럽다.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 일기쓰기를 멈췄다.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해왔던 일기쓰기를 왜 갑자기 그만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육아가 힘들었거나 시간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한참 아이들 꽁무니를 쫓아다니다 좀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쯤 일기쓰기를 그만두었다는 걸 알았다.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은 난다. 이제 더 이상 내게 중요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 어쩌면 바로 그때가 순간순간이 신나고 재미있고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그때는 내게 해야만 하는 일들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주인공이지, 나 자신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고 하루를 살았다. 일주일이, 한 달이, 일 년이 그리고 십 년이 하루처럼 지나쳐갔다. 


재작년에 서점에 들렀을 때, 친구가 다이어리계의 명품 *스킨을 사주었다. 친구는 다이어리를 사주면서 다시 일기를 써보라고 했다. 그래서 2020년부터 일기쓰기를 시작하게 됐는데 생각보다는 쉽지 않았다. 사건이 아니라 해석이 꽤 자리를 차지하다 보니 흡사 100자 평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비싸고 예쁜 일기장이 아니었다면, 친구 선물로 받은 일기장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알라딘 이웃 몰리님의 종이일기 찬양론도 일기 다시쓰기에 큰 격려가 되었다. 그렇게 2020년부터 종이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작년 말 *타벅스에서 준다는 다이어리를 받을 때는 일기쓰기에 적당한 다이어리를 골랐다. 마음이 복잡하고 시끄러울 때 썼던 일기를 읽어보았더니 속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건 알겠는데 그 일이 정확히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인데도 그랬다. 기억은 선택과 편집이란 걸 알지만, 일기장에서조차 그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건 좀 색다른 일이었다. 일기장에서조차 말하지 못할 일이라니. 소장용에서조차 말할 수 없는 일이라니.

 


생애 후기의 한 인터뷰에서 보부아르는 회고록에 쓰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볼 때 집어넣고 싶은 부분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녀는 “솔직하고 균형 잡힌 자신의 성생활 이야기,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정말로 진실한 이야기”라고 대답했다. 보부아르는 일기에조차 솔직한 성경험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어머니가 일기를 볼까 봐 두려웠을까? 보부아르는 자신의 개인사가 명성으로 인해 왜곡되고 자신의 철학과 정치학에 쏠려야 할 관심을 가로채리라고는 아직 알지 못했다. (136쪽) 



시몬 드 보부아르는 말년에 회고록을 써서 자신의 삶을 돌아봤지만, 후에 발견된 그녀의 일기 그리고 연인들과 주고받는 편지는 회고록의 내용과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 책의 저자는 판단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연애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이었고, 두 사람의 평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 사르트르이며 보부아르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음을 그녀의 일기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람둥이 사르트르와 달리 보부아르의 애정 관계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어쩌면 이는 보부아르가 원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일기장에서조차 솔직하지 못했다.  



보부아르 평전을 저술하는 저자의 입장이라고 한다면 보부아르에 대해 긍정적일 수밖에 없을 테지만, 궁금증은 계속 일어난다. 이런 사르트르에게 보부아르는 왜 매여 있었을까. 궁금한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닌 듯하다. 



영국 작가 앤절라 카터(Angela Carter, 『피로 물든 방』의 저자)는 “서구 세계에서 생각이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었을 거라고 했다. ‘어째서 시몬처럼 괜찮은 여자가 장폴처럼 지루하고 멍청한 남자 비위를 맞추느라 인생을 허비했을까?’ 카터는 오직 사랑만이 “그러한 낙오자 신세마저 자랑으로 삼게 한다.”고 했다. (244쪽)    



계약 연애였지만 사르트르의 ‘배우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여겨졌던 보부아르. 그녀의 사후, 여러 명의 애인과 다양한 방식으로 오랜 기간 사랑의 행각을 벌인 증거들인 편지와 일기가 다수 발견되었다. 사르트르와의 계약 연애라는 카테고리 안으로 자신을 고정시킨 건 그녀 자신일 수도 있겠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의 사랑만이 기억될 만한 ‘사건’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것이 사르트르가 보부아르를 이용한 것처럼, 보부아르가 사르트르를 이용한 방식일 수도 있겠다. 또한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사상을 다듬고, 보완하고, 정교화하는데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는 걸 아까워하지 않은 듯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자연스레 『뒤의 올 여성들에게』의 이런 구절이 떠오른다. 





샘과 내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수년 뒤, 주디스 스팀Judith Stiehm은 똑똑한 여자들이 자신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를 선택하고, 내내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며 산다는 글을 썼다. 주디스 스팀은 이 현상을 ‘질투 어린 친밀감’이라고 불렀다. 나는 주디스 스팀의 묘사에 완벽히 들어맞는 사람이다. (131쪽) 



알람시계를 하나 샀다. 빨간색이 줄어드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시각적인 효과 때문에 쉽게 집중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좋다는 상품 설명을 보고 구입하게 됐다. 도서관에서 사준 책이라 애지중지하고 있었는데, 반납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분초를 아껴가며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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