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경매대 위의 흑인여성



 


바바라 스미스는 설득력 있는 한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이성애 특권은 흑인여성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인종이나 성에 따른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우리들 거의 모두가 계급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동성애자가 아니라서 똑바른 처지’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223쪽) 


이성애자 흑인여성들이 흑인 레즈비어니즘에 대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상성’으로 인정받는 창구가 단 하나, 이성애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성애 여성이라는 사실이 다른 불합리를 상쇄시키지는 않았다. 여성이라는 점, 흑인이라는 점, 여성인 데다가 흑인이라는 건, 그들이 속한 세계의 제일 밑바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백인남성이 흑인여성에게 가한 성폭력의 역사를 고려하자면, 백인 파트너를 선택하는 흑인여성 개개인은 집단적인 차원에서 흑인여성에게 이 고통스러운 역사를 상기시킨다. 이러한 관계를 역사적인 주인/노예 관계를 상기시키기에 흑인집단의 아픈 곳을 다시 헤집는 것이다. (282쪽) 



백인남성은 백인여성을 선호했고, 흑인여성을 착취했다. 백인여성은 백인남성을 선호했고, 새로운 욕망의 대상으로 흑인남성을 선택하기도 했다. 흑인남성은 백인여성을 한없이 숭배했고, 흑인여성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마약, 범죄 행위, 구금 등의 이유로 젊은 흑인남성의 숫자가 한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흑인여성은 백인남성을 파트너를 선택할 경우 흑인공동체에서 ‘인종배신자’ 또는 ‘창녀’로 비난받았고, 흑인남성은 백인여성이 손짓만 해도 뛰쳐나갔다. 그러니,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도 흑인여성들은 이 세계의 밑바닥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골라 둔 책은 이렇게 3권이다. 『빌러비드』는 내용은 알고 있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말하자면 고전 중의 고전이고, 『컬러 퍼플』 역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책이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라고 한다면, 이 책을 읽은 후에 이 여성을, 이 작가를, 마야 안젤루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그녀의 솔직함과 용기, 그리고 도전정신은 그녀의 단어와 문장, 문체 속에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살아있다. 같은 세계를 사는 인간으로서 그녀에게 무한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된다. 올해의 책 후보라 할 수 있겠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 나 그리고 엄마』도 찾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흑인여성의 서사인 『린다 브렌트 이야기』.  



흑인 노예여성 해리엇 제이콥스는 린다 브렌트라는 가명으로 자서전을 출간했다. 노예 여성들이 겪는 성적착취와 학대 문제를 다룬 책으로 탈출과 유폐 생활, 자유주로의 재탈출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기록했다. 특히 그녀의 할머니가 판매되기 위해 경매장에 세워지는 모습에서는 노예제도의 비극뿐 아니라 ‘돈’의 잔인함이 엿보인다. 

백인에 가까운 밝은 피부색의 할머니는 오랜 세월 크래커와 통조림을 만들어 판매할 정도로 수완이 좋았고, ‘마사 아주머니’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평생 동안 백인 가족에게 충실한 하녀였기에, 이전 주인은 유언으로 할머니에게 자유를 약속했고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위 플린트씨는 이제 그의 재산이 된 할머니를 개인적인 거래로 판매하려고 한다. 할머니는 그의 비열한 제안을 거절하고, 공개 경매대 위에 선다.  


“말도 안 돼! 마사 아주머니를 판다니 말도 안 돼! 어서 내려와요! 거기는 아주머니가 있을 자리가 아니에요!” 할머니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운명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사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마침내 어디선가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50달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독신으로 살아온 일흔 살 된, 할머니 주인의 언니였다. 40년 가까이 할머니와 한 지붕 아래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가 주인 가족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녀가 자신의 권리를 얼마나 잔인하게 빼앗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를 보호하기로 나선 것이다. 경매사는 더 높은 경매가가 나오는지 기다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의 바람을 존중했다. 아무도 더 높은 가격을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글을 읽고 쓸 줄 몰랐기 때문에 매매계약서에 십자가를 그어 서명했다. 그런 다음 인간다운 정이 넘치는 넓은 가슴으로 어떤 일을 했겠는가? 그녀는 할머니에게 자유를 주었다. (23쪽)  



이 모든 것은 돈의 문제다. 흑인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존재라는 거짓말로 노예제를 옹호했던 것도, n번방 때문에 온 나라가 그렇게 떠들썩했는데도 트위터에 이와 유사한 영상이 유포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돈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상관없고,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괴로움은 상관없고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그 천박하고 잔인한 생각이 이런 끔찍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흑인여성이 소나 말처럼 경매대에 세워져 고통받던 그 시간부터 바로 지금까지.


이전 09화 4분의 1 흑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