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회였던가. 인기 교양 예능 프로그램인 <알쓸신잡>에서 김영하는 문학 또는 소설의 역할이 감정을 전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은 소설 속에 무엇인가를 숨기거나 감춰두지 않는다고 했다. 감정을 전하고 싶다고, 감정을 전하기 위해 쓴다고 말했다.
<오직 두 사람>을 읽으면서 갖게 되는 감정이라면 울분이다. 울분. 답답하고 분한 마음. 화자가 바보 같다고 여겨질 때도 여러 번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어린애 같을까.
내 인생은 뭐가 남았지? 아빠와의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빠를 기쁘게 해주려 공부해서 아빠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해 아빠가 권해준 전공을 선택했고, 주말마다 시간을 같이 보냈어요. 보란 듯이 예술사를 전공하는 학자가 되지 못해 늘 미안했고, 아빠가 친구들에게 자랑할만한 직업을 갖지 못해 언제나 부끄러웠어요. (32쪽)
아빠가 원하는 대로 노력하는 인생. 아빠의 계획대로 사는 인생. 아빠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남자 친구와 같이 할만한 일을 아빠와 하나하나 해나가는 인생. 아빠의 기분을 헤아리고, 아빠가 기분이 안 좋을 때 먼저 ‘죄송해요’라고 말하는 인생. 본인이 중독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아프고 힘든 시간을 얼마만큼 보내고, 아빠를 피해 미국까지 도망쳐서야 ‘이젠 아빠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는 인생. 아빠와 진짜 이별한 후에야 인생의 또 다른 발걸음을 준비하는 인생. 무언가 처음으로 혼자 해보려는 인생. 이제서야 부모를 떠나보려는 인생.
『나이트』, 『Night』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이 책도 생각난다. 나치 강제수용소에 이송되었다가 간신히 살아난 엘리 위젤의 자전소설 『나이트』다. 같이 수용소로 끌려온 엘리의 아버지는 병을 얻게 되고, 나중에는 음식조차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갈증 때문에 계속 물을 찾는 아버지는 엘리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른다. 시끄럽다고 독일 병사에게 맞게 될까 두려워,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더 이상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엘리는 밤새 아버지의 애달픈 외침에 응답하지 않는데, 다음날 아침.
No prayers were said over his tomb. No candle lit in his memory. His last word had been my name. He had called out to me and I had not answered.
I did not weep, and it pained me that I could not weep. But I was out of tears. And deep inside me, if I could have searched the recesses of my feeble conscience, I might have found something like: Free at last! ... (112쪽)
아버지는 지옥 같은 세계에서 ‘나’를 보호해준 유일한 사람이다. 오랫동안 의지해왔던 종교적 신념의 실체이며, 사회적 약속의 총합이다. 죽음의 고통 가운데에서 내 이름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며,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친밀한 어떤 존재, 신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바로 나의 아버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때문에 나의 생존이 위협받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나는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의 아들인 ‘나’를 선택한다. 지난밤, 아버지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고, 이제 영영 아버지와 이별하게 되었다. 절망과 슬픔이 찾아온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작은 속삭임.
마침내, 자유다!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모는 존재 자체가 억압이다’라고 말했더니, 친구는 화를 냈다. 부모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왜 부모가 억압이냐고 했다. 친구 말이 맞다. 친구네는 부부 사이가 각별하고, 가족끼리 터놓고 이야기하고, 공부를 포함해 대부분의 일에 관해 아이들에게 강압하지 않는다. 서로 말이 잘 통하고, 서로를 좋아하는 유쾌한 분위기의 가정이다. 그러니 ‘부모는 존재 자체가 억압’이라는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나로 말하자면, 컴퓨터 화면을 굳이 온몸으로 가리는 큰아이 때문일 수도 있겠고, 학교에서의 일을 물을 때마다 “네, 아니에요~”를 연발하는 둘째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아이들이 나를, 나의 존재를 억압으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사람이며, 오늘 내가 넘어서야 할 사람. .
나를 가장 사랑해 주는 사람이며, 그 사랑에 근거해 내게 희망을 품는 사람.
나의 장점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의 단점 또한 잘 알고 있는 사람.
한 때는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가끔은 떨어져 있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되는 사람.
죽는 그 순간까지 나를 이기는 사람이자,
결국에는 나에게 지게 될 운명을 가진 사람.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부모라는 억압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부모와 나를 부모로 둔 아이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받은 억압과 내가 주었던 억압에 대해 생각한다.
부모라는 억압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