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장날이 되어버린
자식들과의 추억 만들기

by Hoo








확실한 장날이 되어버린 자식들과의 추억만들기





오래 전, 나의 애들이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기 얼마 전, 아들과 딸 두 녀석을 데리고 설악산을 갔습니다.



아빠와 헤어지기 전 추억만들기를 위해서입니다. 설악의 추위를 너무나 잘 아는 나는, 애들의 방한에 모든 신경을 써서 장갑과 옷 등 매서운 겨울설악의 추위에 대비하여 완벽한 준비를 하여 올라갔습니다.



길이 먼 한계령에서 출발하려 했지만 서북릉에 강풍과 폭설로 출입이 통제되어, 하는 수 없이 오색에서 출발 합니다. 오색에서 오르면 정상에서 바람이 아무리 강하게 불어도 설악폭포를 지나기까지 오르는 동안에는 오목한 남향의 지형이라 바람 하나 느끼지 못합니다. 다만 눈가루가 대청봉에서 날려와 계곡으로 흩날려 걸어가는 등산객들의 머리 위로 떨어집니다.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을 오르는 가장 가까운 길인 오색등산로는 거리가 짧은 반면, 해발 천 일이백 미터까지 경사도가 가파릅니다. 오르며 딸아이는 힘이 들어 끙끙 거립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산행이라고는 서울의 청계산과 관악산 몇 번 정도가 모두이고, 평상시 등산을 하지 않으니, 그것도 설악정상을 오르는 가장 지근거리至近距離인 만큼 가파른 길에서 힘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는 수 없이 딸아이의 35리터 백팩을 75리터 나의 백팩 위에 올려 오르자니 나도 힘이 듭니다. 사실 애들 둘에게 작은 백팩을 하나씩 주다보니 나는 어쩔 수 없이 크고 무거운 75리터 백팩을 메고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막상 대청봉 가까이 다가가니 휘몰아 치는 바람소리와 흩날리는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며, 하늘에선 윙윙거리는 강한 바람소리가 계속해서 울리고, 강하고 차가운 눈보라가 눈을 떠지 못하게 불어댑니다. 두터운 모자까지 써고 얼굴을 바람하나 들어오지 못하게 방한마스크로 가렸더니 그 입김으로 마스크와 애들의 속눈섶까지 얼음이 동글동글 얼어붙어 있습니다.



대청봉을 오르는 순간 폭풍같은 바람에 아이들과 같이 모두 밀려 넘어져 버립니다.



오랜 세월 설악을 다니며 그렇게 강한 바람을 맞아보기는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날입니다. ㅎㅎㅎ, 자식들과 함께 추억만들기를 하러 갔던 날이 확실한 추억의 장날이 되어버렸군요.



대청봉에서 중청대피소까지 내려가는 데 보통 15 ~ 20 분이면 충분하지만, 이 날은 도저히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강한 바람이 거꾸로 밀어 올리는 지, 서서는 도저히 전진이 안되어 몸을 낮춰서 기다싶이 겨우 내려왔습니다.



아이들이 크렘폰(아이젠)을 신었지만 눈으로 덮혀있는 바닥을 손으로 지탱하며 겨우 균형을 잡아가며 기어가다 싶이 중청대피소로 내려가는데, 아무리 내려가고 싶어도 바람에 밀려 내려갈 수 없었고, 무려 50여 분이 걸렸습니다. 대청봉의 바람은 계절과 상관없이 강하기로 유명합니다만, 이 날은 분명 특별히 바람이 너무나 강해 몹시도 추웠던 날 중의 하루였습니다.



대피소에 도착하여 깡깡 얼어버린 도시락을 꺼내 컵라면(지금은 환경보호로 판매금지 품목이지만, 당시에는 대피소에서 컵라면을 팔았음)으로 녹여 아이들과 식사를 하고 나오며 대피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영하 55도의 체감온도라 합니다.



겨울철에 영하 2~30도 정도 내려가는 일은 설악에서 허다합니다만, ㅎㅎㅎ 가히 상상하기 힘든 북쪽 시베리아의 겨울철과 비슷한 온도입니다.



중청 대피소에서 식사 후 하산길에 소청봉을 향하다, 아들녀석의 크램폰이 벗겨져 버립니다. 두터운 방한용 장갑을 끼고는 크램폰을 다시 채워줄 수가 없습니다. 그 강하고 매서운 바람 속에 맨 손으로 다시 채워주느라 내 손도 얼어 버립니다.



하산길이 좀 긴가요? 천불동계곡의 길이만 하더라도 8.7Km입니다. 몹시 춥고 험한 설악에서, 딸 아이가 맨몸으로도 힘이 들어 얼마나 혼줄이 났는지 모릅니다. 아들녀석은 두 살 위지만, 그래도 사내녀석이라고 힘들다, 춥다는 소리, 한 번 하지않고 걸었습니다.



딸 아이는 죽는 한이 있어도 설악산은 두번다시 오지 않겠다며, 내 품에 안겨 엉엉 울었던 하루입니다. ㅎㅎㅎ 수고했다며 품에 껴안고 딸아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지만 울음을 쉬 그치지 않습니다. 너무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다는 의미겠지요.



자식들과 추억만들기를 하려고 어린 자식들과 설악에게로 다가갔지만, 설악은 너무나 매서웠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하여 직장을 다니는 성인이 된 자식들을 생각하면, 무슨 세월이 이리 빠른 지 세월은 쏜 살이 아니라 로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흘러가버린 지난 세월의 에피소드입니다. ^^*~







(아들이 6 살 때, 용평 리조트에서 스키를 가르키는 옛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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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들녀석은 거리가 몇 Km 더 먼 한계령에서 걸어보겠다며, 그 다음 주말 나를 따라 한계령에서 출발하여 또 설악산을 올랐습니다. 그 추웠던 설악에서 혼줄이 났을텐데도, 이럴 때 어린 아들이지만, 아들을 가진 아비의 마음이 얼마나 든든한 지 모릅니다.


어리지만, 그래도 사내녀석이라고 그렇게 꽁꽁 얼어버린 매섭게 추웠던 설악에서 고통이 많았을텐데도, 또다시 한 번 더 따라가겠다 하니, 아들을 가진 아비로서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고 기분이 좋았는 지 모릅니다.


막상 지난 이야기지만,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 매서운 겨울설악을 갈 때, 막상 가자고 말은 했지만, 애들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왜냐면, 애들 엄마도 겨울설악이 얼마나 추운 지, 한 번 경험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애들 엄마에겐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린 두 아이들이 설악의 극한 추위(서울도 춥다 하지만, 겨울설악을 가보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그 추위의 느낌을 잘 모름)에서 고생되지 않게 하려고, 내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던 그 날이 그리운 오늘입니다.


이젠 녀석들도 다자라 미국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어, 나름 험한 세상에 내어 놓기가 걱정 되었지만, 애들의 적응력은 참으로 뛰어납니다.


아빠가 항상 말하듯이, 언제, 어디서라도, 열심히, 바르고, 당당하게, 그렇게 살아가거라 내 아들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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