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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후 Jun 23. 2020

타인에겐 관대하지만, 나에게는 야박한 사람

감정의 종속에서 한 발짝 물러나기

 오늘도 해야 할 일들이 많았지만, 잠시 모든 걸 멈추고 방에 누웠다. 내일은 나의 대학 생활의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다. 별거 아니지만, 별거 아닌 게 아니었던 한 시기의 끝을 앞둔 느낌이다. 내가 오늘을 끝으로, 아무런 자책 없이 여유를 부리는 시간이 또 있을까?

 오랜만에 들어간 유튜브에서 하나의 추천 영상을 보았다. 진부하지만 항상 답이 궁금한 주제,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기혐오로 가득 찬 인생을 보내고 마침내 방법을 찾은 유튜버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의 엄마이자 아빠이며, 친구이자 연인이다.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내가 나의 엄마라고? 나에겐 그 정도의 사랑도, 책임감도 없는데.

그렇다. 내가 엄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사랑과 책임감이었다.

잠깐만. 내가 나를 책임지고 먹여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던가. 엄마의 마음으로 나를 아낀 적이 있었나. 나를 사랑으로 살핀 적이 있었나.


 나는 항상 타인을 보호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 혹은 가족의 아픔을 내가 대신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보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그 아픔이 무거울수록 나는 몇 날 며칠을 우울해하며 고민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감정이 힘든 누군가에게 쉽게 동기화됐다. 나는 감정적인 내가 싫었다. 부당한 일에 쉽게 화가 나고, 슬픈 일에 금세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내가 싫었다. 행복한 순간에는 사소하게 감동하다가, 찰나의 상처에는 오래 아파하는 내가 싫었다.


 그런 내가 나에겐 얼마나 야박하게 굴었는지 안다. 모두가 나보다는 더 힘들 거야. 나의 아픔은 자격 없는 아픔이라 여겼고, 나의 힘듦은 어린애의 투정이라 여겼다. 지금 내가 힘들어하는 이유가 자기 연민에 젖은 착각은 아닌지 습관처럼 의심했다. 나에게만큼은 감정의 틈을 열어주지 않았다. 타인의 아픔에는 쉽게 공감하면서 나에게는 참 매몰찼다.


 내가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나 혼자.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아프게 했던 시기에,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이 여행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모든 선택을 맡겼다. 누군가의 아픔에도 한 발짝 떨어져서 아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나의 상황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책임감을 남겨두고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내가 대신 아파하는 것보다 훨씬 값진 응원일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타인을 걱정하기 전에, 나를 보호한 적 있었는지.

자존감과는 다르다. 나의 성격 중 강한 하나의 부분이 나를 다치게 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 부분이 나를 어떻게 상처 입혔는지. 감정의 부분에서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나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서 나는 사랑보다 책임의 힘을 더욱 느꼈다. 내가 타인의 문제까지 책임질 수도, 책임질 필요도 없다. 그보다는 나에 대한 책임에 적극적이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감정만이 아니라 책임이 필요했다.

 나는 또 새로운 상황에서 나를 싫어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나의 모습이든 나를 감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책임지는 어른이 되겠다는 것이 내가 터득한 보살핌의 방식이다.



 나는 아직, 나의 시선으로밖에 글을 쓰지 못한다.

이 좁고 나약한 시선으로 글을 쓴다는 게 부끄러울 때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지금밖에 쓸 수 없는 글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다 안다는 듯이 풀어내는 원숙함이 없다는 게 아직은 다행인 것 같다. 그냥 나에게 바라는 건 끊임없이 생각하고 읽고 썼으면 한다. 그리고 직접 세상을 겪어보길 바란다. 오늘 이 방에서 할 수 있는 '쓰기'는 여기까지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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