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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후 Jun 10. 2020

네가 그러는 거, 실은 괜찮지 않아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 관하여

어떤 이와의 대화 후엔 찝찝함이 남는다. 괜히 내 얘기를 했나?

친한 사이일수록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하기 쉽다. 나아가 나를 잘 안다는 착각에 취해, 나를 쉽게 본인의 기준에서 단정 짓는 사람이 있다. 역시나 그 사람은 내가 한 이야기 중 부정적인 부분만 쏘옥 골라 나를 판단하기 시작한다. 내가 행복했던 기억을 말해도 그 속에 숨은 부정적인 부분을 기어코 찾아내 '너는 이게 문제다'는 식으로 섣불리 충고하는 사람이었다.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너 좋을 대로 생각해라' 하고 넘어갔다. 한 귀로 흘렸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에겐 나는 방어를 치게 된다. 좋은 건 말하지만, 나쁜 건 굳이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더 적극적으로 나에 대해 묻는다. "저번에 그 일은 어떻게 됐어? 떨어졌어, 붙었어? 지금은 뭐해?" 화룡점정으로 본인의 자랑까지 마치자 비로소 대화가 끝났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나조차도 내가 그런 사람인지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나를 잘 안다고 착각하며 뱉는 상대의 말이 점차 불쾌해지는 정도가 되었다. 무례를 무례인 줄 모르고 본인의 잣대에서 사람을 평가한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신념이 강하게 풍겨온다. 너무나 확고한 그의 정신세계에 질려 버렸다. 사람이 자신의 주관쯤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자신의 틀에 박혀 있는 사람은 사양이다.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는 관계를 지치게 한다.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의 장점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상대가 나를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말에 '내가 진짜 그런가?' 흔들린 적도 있다. 나를 잘 아는 것처럼 평가하는 것을 넘어 나의 이야기를 함부로 남들에게 하고 다닌다. 나조차도 나를 잘 모르는데, 왜 네가 더 안다고 나서는 것 같지? 내가 예민한 건가. 쿨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될 일인 건가.



상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의 관념에 박혀서 나를 판단해도 나는 아무렇지 않아'라며 담담한 척했다.


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아.

어느 누가 나를 함부로 평가하는 것을 달가워하겠나. 나는 네가 판단한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변명하고 싶고, 억울한 감정도 들고, 심지어 그 사람이 미워지더라. 좋은 감정으로 시작한 관계일지라도 건강하지 못한 채로 유지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느꼈겠지만, 나는 단호하게 이 관계에 '그만'을 말하지 못했다.

그냥 내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말자라며 상황을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상대가 변할 것을 기대하지 말고, 내가 변해야 한다.


상대에게 모진 말을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연습해야 한다. 누군가 계속 나를 할퀴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 무례한 말과 행동에는 즉각 반응하지 말자. 한 번 생각하고 그래도 불쾌하다 생각이 들면 그 자리에서 말해야 한다. 할 말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 좋게 웃어넘기는 것도 상황에 따라 불필요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단호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사실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잠시 거리를 둔다.

사람 사이엔 어느 정도 신비감이 존재한다. 나의 속마음을 밑바닥까지 꺼내서 보여줘야 비로소 진정한 관계가 아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구에겐 하고 싶고, 누구에겐 하고 싶지 않은 대화가 있다. 그 판단은 내가 하는 것 아니겠나. 건강하지 못한 관계라고 생각이 들면 의식적으로 멀리할 필요가 있다. 그 사람과 관계를 완전히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점차 '따로'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일정한 거리는 더욱 필요하다.


나 또한 가깝지만 건강하지 못했던 관계에서 한 발짝 물러난 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관계에 밀려 뒷전이었던 나를 보살피는 중이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이런 걸 싫어하는구나.' 하나씩 느껴보고 있다.



결국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내가 섣불리 누구에게 조언을 하겠나. 내가 요즘 이런 상황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풀어보고 싶었다. '글로 써서 훌훌 털어버리자. 쓰다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이 잡힐 수도 있잖아?'라는 생각으로 노트북을 켰다. 역시나 글을 쓰면서 내가 나의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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