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싸늘해졌던 면접장의 공기는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몇 년 전 다녔던 회사 면접 당시 면접관들은 내게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물었고, 나는 ‘김영하’라 대답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그대로 책에 관한 질문은 끝이 났다.
그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 영화제 자원봉사자로 지원했을 때의 일이었는데, 면접장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다른 지원자들이 쿠엔틴 타란티노,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나는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란 영화를 답했다. 주변 사람들은 피식 웃었고, 면접관들은 크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으며 쉬는 시간을 보내고, 혹여나 팀 버튼 감독의 영화가 OTT에서 내려갈까 노심초사하며 몇 번이고 ‘유령신부’를 돌려본다. 최근에는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 출판 20주년을 맞아 진행한 팬 사인회도 다녀왔다. 몇 달 전 동대문 DDP에서 개최한 팀 버튼 특별전은 두 번이나 관람했다.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회를 좇는 동시에 대중적인 무언가는 종종 너무 ‘대중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탓에 나도 한동안 좋아하는 작가에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의 야샤르 케말을 답하며, 인상 깊게 본 영화로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꼽곤 했다.
하지만 나는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를 완독 하지 않았다. 사실 어려워서 읽다 중간에 포기했다. 대학 시절 교양 시간에 잠깐 언급된 책이었는데, 지금은 줄거리가 어땠는지 주인공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마찬가지다. 더 모르면 몰랐지. 사실 나는 저 영화를 아주 최근에서야 보게 됐다. 대략 유명 감독의 슬픈 사랑 이야기,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오를 만큼 수작인 영화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보니 내 취향과 한참 동떨어진 영화였다.
아주 예전, 내가 좋아하는 건 너무 ‘쉽게’ 생각되는 것들이라 부끄럽단 식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땐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그럼 뭐 어때,라는 쪽에 가깝다. 쉽고 가벼움에 관해 논하는 것 이전에, 대부분의 창작물은 멋지고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생동감이 느껴진다. 장르가 무엇이든, 포맷이 무엇이든 우리는 창작자의 질문과 생각에 나름의 대답을 내린다. 그때의 주파수가 맞으면, 서로의 대역폭이 조금 더 넓어지는 것 아닐까.
어쨌거나, 오늘 자기 전에 읽을 책은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이다.(작가님의 다른 소설 퀴즈쇼도 정말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