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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Apr 16. 2019

여행, 여기라면 행복할까?5

원한다면, 스파게티 프라이스로!

아마 평생 피렌체 잊지 못할 것이다.

내 생일을 보낸 곳이기도 했고, 가장 아름다운 노을과 야경을 본 곳일 뿐만 아니라 여행 중 가장 즐겁고 유쾌했던 친구를 만났던 곳이기 때문이다. 나와 몇 살 차이 나지도 않았던 그 친구.

오늘은 가죽공방 사장 지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미켈란젤로 언덕



"만약에 이 옷이 마음에 들면 싸게 해 줄게, 한... 스파게티 값 정도로?"


이게 무슨 말 이냐고? 피렌체의 한 가죽 가게에서 실제로 들은 표현이다.

피렌체는 아름다운 풍경 말고 가죽 시장으로도 유명하다. 잘만 고르면 굉장히 질 좋은 가죽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가죽 시장을 방문했다. 여느 시장이 그렇듯, 가죽 시장 역시 호객행위가 상당하다. 우리는 그 소리들을 들은 체 만 체 하다가 어디선가 들리는 70% 할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홀린 듯 그 가게로 들어갔다. 그곳이 바로 지미네 가게였다.


지미는 굉장히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우리에게 이것저것 권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주겠다며 가죽 재킷을 한 6벌 정도를 가져다주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팔려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가 어색하기도 해서 나갈 기회만을 살피고 있었다. 이런 우리를 눈치채기라도 한 듯 지미는 말을 건넸다.


"절대 팔려는 게 아니야, 나는 즐거운 기억을 만드는 것을 좋아해.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게 재밌지 않아? 이탈리아 사람들은 즐겁게 웃는 걸 좋아해!"


지미의 말처럼 정말 많이 웃었다. 가죽 가게다 보니 옷은 거의 다 가죽 재킷이었고 안타깝게도 비교적 체구가 작고 순한 인상의 우리에게 그 옷들이 참 안 어울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울에 비친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고 지미는 그런 우리의 반응을 보고 웃었다. 무엇보다 그 상황 자체가 낯설기도 하면서 새롭고 재밌었다.


그렇게 옷을 입어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미는 이런 말을 했었다.


"둘이 여행을 온 거야? 친구? 자매?"

"응, 우리 둘이 여행 왔어, 제일 친한 친구야"

"둘이 오는 여행 좋지, 그런데 그 나이에 이렇게 멀리까지 여행을 오다니 대단하다"

"우리 몇 살인 것 같길래 그래?"

"19,20살 정도 되지 않았어?"

"헐! 아니야 우리 24살이야"


순간 지미의 표정이 형언할 수 없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아니, 우리 나이가 그렇게 놀라웠을까. 그러고 나서 지미는 거의 쏟아내듯 말을 덧붙였다.


"아니, 나는 어린 친구들인 줄 알고 더 말도 재미있게 해 주고 같이 이렇게 놀았던 건데 세상에..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네"

"너는 몇 살인데?"

"나? 28살"


와우, 이번에는 우리가 놀랐다. 사장이라는 직함 때문인지 우리보다는 나이가 더 많을 줄 알았는데 정말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지미가 우리의 나이를 알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이때를 기점으로 대화가 더 활발하게 이어졌다. 전공도 묻고, 장래희망도 묻고 정말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했다. 심지어 지미의 삼촌이 아동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도 우리가 한 번씩 '아 우리에게 팔려는 건가?' 싶은 표정을 지을 때면 또다시 절대 아니라며, 모처럼 온 여행이니 재미있게 즐기다 갔으면 좋겠다며 이런 말 까지 했다.


"내가 팔고 싶었으면 지금쯤 가격표를 보여줬을 거야"


아마 지미의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 가죽재킷의 가격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 그래도 하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그 재킷을 사겠다고 했으면 스파게티 가격 정도였을 것이라는 걸.


"그래도 혹시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스파게티 값 정도로 해줄게, 그러니까 편하게 입어 봐^0^"


스파게티 값이라니, 우리나라로 따지면 한 잔치국수 한 그릇 값 정도 되려나. 귀엽고 독특한 표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떠들었을까.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시장을 조금 더 둘러보고 싶었기 때문에 지미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가게를 나왔다.



내 명함 줄게

그러다 얼마나 걸었을까, 손이 허전했다. 세상에나. 지미의 가게에 들리기 전 샀던 선물이 없어진 것이다. 어디 갔지, 그 가게에 놓고 왔나? 우왕좌왕 당황하고 있을 때쯤 골목 저 끝에서 누군가 우리를 불렀다. 뒤돌아 보자 그 사람은 우리에게 뛰어오며 말했다.


"지미가! 너네를 찾아! 가게에! 뭘! 두고 갔다며!"


세상에나. 정말 정신없이 웃고 떠든다고 가게에 선물을 놓고 온 것조차 몰랐던 것이다. 우리를 불렀던 사람은 아마 지미의 친구인지, 우리를 찾자 지미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알려주고 갈 길을 떠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 멀리서 지미가 나의 짐을 들고 뛰어왔다. 정말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선물 중 하나를 꺼내 지미에게 건네주었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결국 건네주는 데 성공했다. 우리에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준 것도 고마웠고 다시 짐을 찾아준 것도 고마웠기 때문이다.


"와, 정말 안 줘도 괜찮은데 너무 고마워"

"아니야 내가 더 고맙지!"

"잠시만 우리 가게와 볼 수 있어? 내가 명함 줄게"


지미는 우리를 데리고 다시 가게로 돌아가 명함 한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혹시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자신이 도와줄 테니 꼭 연락하라고. 다행인지 아쉽게도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지미에게 연락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든든하게 이탈리아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지미의 명함은 아직도 나의 지갑 안에 고이 모셔져 있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즐긴 시간이었다. 비록 처음에는 의심으로 시작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과정과 결말이 좋았으면 된 것 아닐까. 과정과 결과마저도 별로인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지미는 여러 모로 참 고마운 친구다. 요즘에도 꿀꿀할 때 한 번씩 지미와의 기억을 떠올리면 조금 기분이 풀리기도 한다.


지미가 말했던 스파게티 프라이스. 만약 그때의 기억을 값으로 환산한다면 아마 못해도 스파게티 프라이스의 몇 곱절은 될 것이다. 혹은 그 스파게티가 세상에서 비싸기로 세 손가락 안에 들거나. 그저 풍경이 아름다웠던 피렌체를 보다 활기차고 생생하게 만들어준 지미. 진짜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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