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때굴 Apr 16. 2019

여행, 여기라면 행복할까?6

사진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까지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들 중 유일하게 이메일까지 교환한 친구가 있다. 바로 밀라노의 '조니'다. 한국에 와서도 몇 번 메일을 주고받았었는데 둘 다 바빴던 탓에 지금은 아쉽게도 연락이 끊긴 상태다. 그래도 최근까지 바뀐 날씨에 대해, 서로의 근황에 대해 주고받았었다. 언젠가 또 기회가 된다면,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연락이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약간의 희망을 품어보며 마지막 친구, 조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밀라노 두오모(대성당)


1시간 뒤에 여기서 만나자

한 달 내내 여행을 다니며 친구와 떨어져 있던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두오모(대성당)에 올라갈 때였다. 두오모에 올라가기 전 텀블러를 샀었는데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딘가에 맡기고 들어갔어야 헸는데 근처에 보관함도 없었고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 명이 먼저 성당을 돌아볼 동안 다른 한 명이 텀블러를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같이 보는 재미가 있는데, 너무 아쉬웠다. 결국 우리는 따로 구경을 한 뒤 한 시간 뒤 성당 바로 옆 백화점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광장에 앉아 잠시 휴대폰이나 확인할까 했지만 아, 휴대폰이 없었다. 이탈리아로 오기 전 스위스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휴대폰도 없고 친구를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대체 무얼 해야 좋을까. 다소 착잡하고 공허한 마음에 성당 주위를 걸어 다녔다. 하지만 휴대폰이 없다 보니 멀리 가기도 무섭고 이래 저래 발이 묶인 느낌이었다. 결국 성당 앞 광장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바로 조니였다.


사진 좀 찍어줄 수 있어요?

조니 역시 혼자 여행 온 듯했다.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주고 싶은데 성당은 너무 크고, 혼자 사진을 찍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혼자 광장을 걷던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한 것이다. 마침 할 것도 없었고 심심하기도 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나름 열심히 구도를 잡아주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다행히 마음에 들었는지 조니의 표정이 밝았다.


그리고 이어진 조니의 말, "사진 찍어줘서 고마워! 그래서 말인데 우리 같이 사진 찍을래? 부담스러우면 안 찍어도 괜찮아!" 사실 또 의심병이 도져서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아무렴, 여행 진데 뭐 어때. 여행지의 힘으로 기꺼이 사진을 찍고 내 메일로 사진을 전송받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메일 연락처를 교환하게 된 것이다.


조니도 피렌체의 지미처럼 대화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좋았다. 마침 조니도 친구를 기다린다기에 우리는 서로의 친구를 만날 시간까지 광장 근처를 걸으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조니는 밀라노로 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사진은 다른 나라에 사는 친구에게 그냥 보내주고 싶었다고. 어쩄거나 밀라노 거주민답게 패션업에 종사한다고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조니가 건넨 말.


"사진도 잘 찍어주고 고마워서 그런데 내가 커피 한 잔 사도 괜찮을까?"


커피라니,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조니가 말을 덧붙였다.


"여기서는 오랫동안 마시지 않아. 잠깐 서서 작은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는 게 끝이거든. 저기 앞 카페 체인(네스프레소)이기는 해도 되게 맛있어"


고민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발걸음은 카페를 향하고 있었다. 친구를 기다리다 혼자 사진 찍고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어느새 커피를 대접받게 되었다. 정말이지 짧은 시간이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결국 커피까지 함께 마시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리고 메일로 꼭 연락을 하자는 인사와 함께 각자의 친구를 만나러 갔다. 나는 조니의 친구와의 즐거운 만남을. 조니는 내 여행의 행복한 마무리를 바라며 말이다.





 아직도 밀라노에서의 그 한 시간을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사진 찍는 것을 도와주고 이메일을 교환하고, 같이 커피까지 마시게 되다니. 그때 이후로 에스프레소의 맛을 알게 된 것인지, 아니면 작은 컵을 보며 그때의 기억이 나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인지 몰라도 작은 컵에 담긴 커피를 꽤나 잘 마시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사람, 그리고 낯선 경험이 이윽고 익숙해지는 것. 나아가 익숙함이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 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도 종종 커피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커피 한 잔으로 밀라노에서 기억을 더욱 아름답게 해 준 조니. 아마 오늘 메일을 다시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 여기라면 행복할까?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