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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Jun 03. 2019

어느 순간 글을 쓰는 게 겁이 났다

지금이나 되어서야 하는 말

그런 날이 있다. 글을 쓰고 싶지만 도무지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날. 굳이 잘 쓰지 않아도 한 편 정도는 완성하고 싶은데,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지 도통 감히 잡히지 않는 그런 날 말이다. 적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싶어 책상 앞에 앉았다 일어나기를 수십 번 반복하다, 결국은 노트북을 닫고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하며 포기하고 만다. 그렇게 글을 못쓴 날에는 수월하게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들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글을 쓴다는 것

초등학생 때부터 글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을 읽는 것보다는 쓰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법 실력도 괜찮았다. 종종 학교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그때는 얼마나 큰 즐거움이고 축복인지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고 무엇보다 나에게 '글'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했기 때문이다. 시 쓰기로 상을 받아 전시가 되었을 때도 그저 뿌듯할 뿐이었지, 그 이상의 감정이나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글을 잘 썼고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중학생 때까지도 글쓰기에 대한 태도는 유효했다. 국어 성적도 나름 좋았고, 과제로 제출했던 글들도 좋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종종 친구들이 너는 참 글을 잘 쓴다며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한없이 뿌듯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한때는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다. 나의 글이 정말 좋은 글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언제부터인지 글을 쓰는 것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글을 쓰다 손을 떤 적이 있다. 마음처럼 글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표현을 써야 좋을지, 문장을 어떻게 구성해야 자연스러울지 거듭 고민해도 알 수가 없었다. 글이 어색한데도 고칠 수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하며 수정을 반복해도 더욱 복잡해질 뿐,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어 버린 것일까.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가 보면,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았던 것은 고등학생 때 논술을 준비하면 서다. 그때 처음으로 글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배웠다. 논술을 통해 배운 글은 그간 내가 써왔던 글과는 참 많은 것이 달랐다. 예전에 썼던 글들은 그저 잘했다, 못했다에서 그쳤다면 논술은 표현 하나, 구절 하나까지 엄격하게 평가받았다. 글 전개의 논리도 분명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답안지로의 가치가 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아직도 첫 논술 수업 날 나의 답안지가 빨간색 첨삭 볼펜으로 가득 찼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 처음으로 내 글에 대한 좌절을 느꼈다. 첨삭 결과 나의 답안지는 참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가치가 없는 글이었다.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열심히 논술을 공부를 했다. 물론 대학을 가기 위한 이유도 컸지만, 글을 좋아했고 잘 썼었다는 나름의 자존심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논술로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나름 좋은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예전만큼 쉽고 즐겁게 글을 쓰지는 못했다. 조각조각 글을 평가받던 버릇이 남아서인지, 아무래도 자신 있게 글을 쓰기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나의 글을 보고 첨삭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나노 단위로 분석하고, 평가하고, 빨간 줄을 그을 것만 같았다.


좋은 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대학생이 되고 나서 했던 가장 오래된 고민 중 하나는 글에 대한 것이었다. 예전처럼 즐겁게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썼던 글들은 항상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라고 허술했다. 예전보다 거친 표현들도 많아지고 문장도 어색해졌다. 분명 배운 것은 더 많아졌는데 왜 실력은 그에 반비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거의 4년을 고민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글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고 그 결과가 결국 손떨림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손을 떨었던 그 순간. 답을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외부의 평가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남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곧 그 글은 좋은 글이고 잘 쓴 글이었다. 타인의 반응에 의존하다 보니 나만의 기준을 만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잘 쓴 글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한다는 데 동의한다. 쉽게 읽히고 논리에 비약이 없어야 하며 비문이 없어야 하는 것 등 말이다. 그렇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바로 '나'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참 당연한 답을 돌고 돌아와서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는 그 자체로 행복해서 글을 썼다. 그게 끝이었다.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상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서부터는 높은 점수를 받고 시험에 통과가 된 글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었다. 어느새 스스로의 만족도나 글을 써 내려갈 때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다. 대신 다른 이들의 평가가 어떨지 생각하고 있었다. 어색하다 하지 않을까. 혹시 이전에 썼던 글보다 못하다고 하지는 않을까 하며 말이다. 아직 결과물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걱정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불안하고 확신이 없을 수밖에.


여전히 글쓰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무리 답을 찾았다 해도, 여전히 글을 쓰고 어딘가에 내보인다는 것이 겁난다. 글을 써 내려가면서 즐거웠고, 스스로 만족하면 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나의 글은 수많은 이들의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입사 시험만 해도 그렇다. 논술을 배울 때처럼 고득점을 받은 글이 나를 취직의 길로 이끌어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예전처럼 겁을 먹을 수도 있고, 겨우 찾아낸 지금의 답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또다시 손을 떠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보려 한다. 두렵다고 피하기만 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없다. 서툴고 미숙하더라도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수월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 언젠가 겁 없이 즐겁게 글을 좋아하던 나를 생각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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