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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Aug 23. 2019

모래가 모래?

창경궁의 길에는 00가 있다.

  나는 지독한 집순이다. 작지만 시원하고 안락한 침대 위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는 것을 지상 최대의 행복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휴대폰만 붙들고 사는 것은 아니다. 나름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는 집도 치운다. 깨끗해진 집에서 더욱 쾌적하게 집순이 생활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에는 집 안이 최고다. 우스갯소리로 들숨에 돈 나가고 날숨에 돈 나간다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 나갈 돈이라면 차라리 에어컨 전기세로 나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 돈이나 저 돈이나 나가는 품은 어차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순이가 밖을 나서는 순간들이 있다. 바로 집에서 안식을 얻지 못할 때다. 집에 있으면 오히려 머리가 복잡해진다거나, 보기 싫은 것들만 눈에 띈다거나 혹은 청소를 미루고 미루다 방이 너무 더러워질 때 말이다. 특히나 집안에 있어 마음이 더욱 심란해질 때, 집순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깨끗하게 단장을 한 뒤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집 밖으로 나선다. 바로 오늘처럼.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갔다. 사실 그동안 참 많이 바빴다. 베트남에 다녀온 영상을 편집하느라 하루가 나의 시간이 아니었다. 눈을 뜨면 편집을 하고, 돌아오면 피곤에 절어서 눕기 바빴다. 그러던 찰나에 잠시 짬이 났다. 동료의 여행으로 잠시 쉬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집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하나의 작은 사건이 이 결심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얼마 전 모 언론사 인턴 면접을 보고 왔다. 그리고 또 떨어졌다. 그 상태로 집 안에만 있으려니 기분이 영 내키지 않았다. 답답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할 일이 많은데 영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그러느니 차라리 다 제쳐두고 잠시 나갔다 오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어디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그것 조차 쉽지 않았다. 잠시 고향에 다녀올까 생각도 했지만 다음날 학원이 있어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래, 바빠서 잊고 있었지만 나도 나름 취미생활이라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사진 찍기'. 그렇게 오늘, 나는 창경궁으로 향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사진을 찍으려니 원하는 구도나 색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마음에 드는 사진 장소도 찾기 어려웠다. 전각은 공사 중이었고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뭐 하나 좀처럼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결국 몇 장 찍다 그만뒀다. 터덜터덜, 요즘따라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그저 힘없이 걷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샌들 사이로 모래가 들어왔다. 순간 확 짜증이 올랐다. 아니, 왜 이제 모래까지 난리람. 신경질적으로 발을 툭툭 털어 내었다. 그러다 발로 모래를 꾸욱 눌렀다. 그러자 평소에는 들을 수 없었던 모래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새삼 모래의 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어느 곳 하나 예쁜 구석 없던 창경궁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공사 중인 전각 너머로는 태양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소한 소리였다. 사실 창경궁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내가 계속 듣고 있었던 소리기도 했다. 자각하지 못했을 뿐. 그렇지만 우연한 기회로 발에 모래가 밟혔고, 그로 인해 모래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 짜증이 나는 순간이었으나 사소한 것의 존재를 지각하게 된 것이다.


창경궁의 하늘


    사실 평소 모래를 듣기란 쉽지 않다. 너무 작기도 하고 길이 잘 포장되어 있는 탓이기도 하다. 기껏해야 공사장의 모래 더미나 운동장의 모래 정도. 그것도 공사 소리나, 시끄럽게 운동하는 소리에 묻혀 모래를 밟는 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모래에 소리가 있기는 한지, 그것부터 생각해봐야 할 일이기도 하다. 모래가 스스로 소리를 내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해서 말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귀를 열고 듣는다면 그 무엇이든 제 소리를 가지고 있다. 조음 방식이 나와 다를 뿐이다. 모래는 샌들과 마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소리를 내어 결국 내가 지금 이 시간, 모래의 소리에 관한 글을 쓰게까지 했다. 그 소리는 오늘 하루 내가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 주었으며 작은 깨달음 또한 얻게 해 주었다. 덤으로 아름다운 하늘의 사진까지 얻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이라는 것도 너무 당연한 것이라, 이렇게 글로 쓰기도 민망하고 부끄럽다. 그러니 정확히 글로 짚고 넘어가지는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때로는 당연한 것이 가장 중요하고, 잊기 쉬운 것이기도 하니 이렇게 긴 글로나마 나의 감상을 남기고자 했다. 모래가 뭐래? 음, 뭐냐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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