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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Sep 07. 2021

발행 취소했던  글_지금 보니 작고 소중하다

그때는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브런치 초반에 발행했다가 발행을 취소했던 글이다. 너무 우울해 보이고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그런데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다시 보니 당시의 고민이 참 별 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스물 셋에서 돌이켜 본 스무살이 왜 그렇게 힘들었나. 살다보면 누구나 겪는 시간이고 따지고 보면 그렇게 크게 망한 인생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는 참 세상이 쓰다고 생각했다. 늘 스스로 자책하고 자존감은 떨어질대로 떨어졌던 예전의 스무살은, 살다보면 인생은 다 흘러가게 되어있다고 생각하는 느긋한 백수가 되었다.

스무 살이 될 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의 심정이 어땠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난다. 비참하고 슬펐다. 삶이라기도 민망할 정도로 짧은 기간을 살며 손에 꼽을 정도로 힘들었을 때가 바로 스무 살 때였다. 당시 나에게 닥친 시련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될 것이었다. 나로 인해 비롯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별 것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인생 처음으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할 상황에 놓인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큰 일이었다. 스무 살, 나는 재수를 시작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그리고 어른은 어른답게. 이러한 생각들은 종종 나를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다. 예의 바른 초등학생은 선생님들의 예쁨을 받는 중학생이 되었고, 나아가 성실하게 공부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성실함이 결실을 맺어서 멋진 대학생이 되었으면 좋았으려 만, 그러지를 못했다.

생각보다 열심히 하는 학생과 잘하는 학생의 차이는 컸다. 나는 전자였다. 요령이 없었던 탓인지 아니면 그다지 공부머리가 좋지 않았던 탓인지, 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해서 딱히 결과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슬금슬금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학생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정히 교복을 차려 입고 선생님들의 말을 잘 들으며 열심히 공부를 해도, 답게 살면 다운 결과가 있던 예전과 달리 나는 잘하는 학생이 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성과주의적인 우리나라 입시 제도에서 학생다웠던 나는 그다지 행복한 결말을 맺을 수 없었다.

누군들 그렇겠냐만은 나의 인생 계획에 재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학생 다움의 끝은 결국 나를 다시 학생의 길로 몰아넣었다. 대학생도 고등학생도 아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재수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엄밀히 따지면 학생은 아니니 아예 새로운 '나'다움을 찾아야 할까? 혼란스러웠다. 그동안의 생각을 유지했다가는 재수가 삼수로 이어질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공부에도 잘 집중을 하지 못했다. 지금껏 생각했던 신념이, 어쩌면 고정관념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혼란스러워하고, 현실을 피하며, 미워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는 미봉책이라도 찾아야 했다. 결국 그때의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굳이 그 나이에, 그 시기에 얽매여 한 가지의 모습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려다 망했던 것이니까. 그저 그 시간을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보려 했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받아들이려다가도 멈칫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틀을 만들어 실패했다면, 틀을 깨 보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재수는 절반 정도 성공했고, 고정관념도 절반 정도는 허물어졌다. 어찌 보면 참 나 다운 결말로, 이 절반의 해피엔딩은 스무 살의 나에게는 최선의 결말이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 그 사이의 어느 지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때로는 눈 앞의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그 순간이 매우 힘들다는 것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고 또 당연한 소리지만,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될 준비를 하던 스물에게는 큰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때의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당시의 내가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조금만 더 넓은 시야를 가졌다면 내 이십 대의 시작은 절반의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으로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무 살의 내가 마음속으로는 스스로를 몰아붙였다면, 지금의 나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를 전해주고 싶다. 긴 인생에서 스쳐가는 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그 한 부분을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노력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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