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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Dec 14. 2018

지금 아니면
또 어느 시간에 너를 만날까.

도야마에서

짐을 풀고 숙소를 나섰다. 가까이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있었다. 마침 공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10년 전에 선정되기는 했어도)가 있었다. 우리는 낯선 도시가 주는 일상을 만끽하며 발을 맞췄다. 나른하니 좋았다. 하루의 나머지를 욕심 없이 나눠가질 때면  손끝에서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나는 맞잡은 손을 자꾸 꼼지락거렸다. 


15분 정도 걷자 수로가 보였다. 옛 운하를 정비한 공원은 꽤나 유명했다. 우리만 몰랐을 뿐. 스타벅스는 호수를 감상하며 커피를 마시기 좋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지는 모르겠다. 정작 우리 관심을 끈 건 스타벅스 옆 전망탑 다리와 붉은 조명 케이블이었다. 

강의 동서에는 각각 다리 기둥 역할을 하는 3층 전망탑이 있었다. 그 사이 공중에는 붉은 케이블 조명이 밤하늘을 갈랐다. 마치 이쪽에서 저쪽으로 쏘는 레이저 같았다. 뭘까? 계단을 이용해 전망탑 꼭대기에 올랐다. 건너편 전망탑으로 뻗은 붉은 케이블이 강렬했다. 발아래는 공원 전체가 내려보였다. 살살 바람이 불자 달그락 소리가 들렸다. 줄로 묶인 플라스틱 컵이었다. 컵을 당기니 줄은 붉은 케이블 조명과 덩굴처럼 엉켜 건너편 전망탑을 향했다.

“어?”

종이컵 전화기였다. 우리는 당장 종이컵 전화를 실험하기로 했다. 

“내가 건너편으로 갈게.”

너는 말이 끝나자마자 달렸다. 나는 기대 섞인 마음으로 서쪽 전망탑에 네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네가 건너편 전망탑 발코니로 나오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마주 답하고 컵 전화기를 잡았다. 

“들려?”

컵에 대고 말한 후 건너편을 봤다. 너는 얼굴에서 컵을 떼고 내 쪽을 바라보며 손짓했다. 안 들린다는 건가? 우리는 몇 차례 말을 하거나 귀를 대거나 건너편으로 소리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곧 우리가 서로에게 동시에 말하거나, 동시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내가 먼저 말할게. 들리면 내게 손을 흔들어 신호해. 그 다음 네가 말하면 그때는 내가 귀를 기울일게.’

대략 이런 뜻을 반복해서 전했다. 그렇게 ‘몸으로 말해요’를 몇 차례. 우리는 의사소통에 성공했다. 내가 손을 흔든 후 컵에 대고 말했다.

“들려?”

그런 다음 컵전화기를 귀에 대고 네 쪽을 바라봤다. 네가 손을 흔들었다. 이제 내가 귀를 기울일 차례였다.

“잘 들려.”

네 목소리가 가늘게 넘어왔다. 첫 통화에 성공한 우리는 그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아이처럼. 다시 내가 손을 흔들고 말했다.

“신기해.”

이번에는 네가 손을 흔들고 답했다. 

“재밌어.”

두 번째 대화를 성공하고 우리는 또  팔짝팔짝 뛰었다. 우리가 실낱같은 줄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감격스러웠다. 



“좋아해.”

나는 다시 손을 흔든 후 컵에 대고 속삭였다. 네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컵 전화기를 귀에 대고 네 목소리를 기다렸다. 

“뭐라고?”

안 들렸을까? 나는 다시 손을 흔들고 한 번 더 말했다. 수줍은 내 마음이 컵 전화기를 따라 건너가길 바라면서.

“안 들려.”

두 번째 네 목소리를 듣고서야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건너편에서 장난스런 몸짓으로 나를 놀렸다. 


돌아보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시간이 많았다. 말 안에 말이 있다는 걸 몰랐다. 입 밖의 말로 전해야만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마음은 마음과 이어져 있어 텔레파시처럼 전해지는 줄만 알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어긋난 말을 건네고서야 서로를 인정하기로 마음먹었을까. 그리하여 말없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됐을까? 잘게 쪼개진 말의 파편이 먼지처럼 지워진대도, 지금이 아니면 나는 또 어느 시간에 너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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