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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Oct 30. 2018

삶은 둥글게 살아도
여행은 네모나게 하는 거지.

오키나와에서

“우두이가마는 춤의 동굴이야.”

그는 산호였다. 산호 같았다. 암모나이트처럼 늙고 굽은 등을 한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몸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는데 100년이 지날 때마다 시간의 중력을 이기지 못해 하나의 구멍이 생겨난다 말했다. 나는 그의 몸에 난 구멍을 스물 여개까지 헤아리다 말았다. 2000여살은 더 먹었겠다. 그는 옛날에는 마을 사람이 우두이가마에 모여 오키나와 구미오도리를 연습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구미오도리는 류큐왕국의 전통 악극이야. 일종의 뮤지컬.”


그는 몸에 난 나이 구멍으로 약간의 구미오도리를 허밍했다. 파도와 바람이 섞인 소리가 났다. 소라껍데기에서 들리던 바다 소리와 닮아 있었다. 우리는 하늘빛에 춤추는 바다를 바라보며 조금 더 이야기했다. 그는 만좌모가 ‘만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라고 했다. 만 명이 앉아 본 적은 없노라 덧붙였다. 내게 만좌모(万座毛)는 그저 커다란 코끼리모양의 바위 절벽이었다. 거대했지만 그리 놀랄만한 풍경은 아니었다. 샛길로 우두이가마에 들어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또 세소코의 바다 빛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소코는 만좌모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본 바다 비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불과 이틀 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바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더 파란 빛깔과 덜 파란 빛깔의 층을 일곱 가지로 나누어 경쟁하듯 이름을 붙였다. 나는 그 중 가장 연한 푸른 빛에 '오니카나와 블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제 너와 함께 들린 공방에서 산 작은 컵의 빛깔과 가장 닮은 블루였다. 

우리는 <Love&Free>의 작가 다카하시 아유무가 동료들과 함께 오픈한 카페이자 숙소이자 공동체를 두고, 비치‘록’빌리지냐, 비치‘락’빌리지냐로 쓸데없이 다투기는 했어도, 트리테라스의 무료한 일상이란 얼마나 멋진 일인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했다. 

그는 내게 피자집 카진호우를 ‘花人峰’이라 쓴다는 사실과 비세마을의 가로수 후쿠기를 ‘福木’이라 쓴다는 사실도 가르쳐주었다. 꽃사람과 복나무라니. 나는 얼굴에 꽃이 핀 사람과 열매 대신 복이 달려 있는 나무를 떠올렸다. 얼굴에 꽃이 핀 사람이 열매 대신 복을 따 먹는 모습도 떠올렸다.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때때로 바다를 줍는 할머니가 바위 사이를 떠돌다, 우리를 보고 웃었고 알 수 없는 오키나와 방언을 했다. 그럼 그는 마치 생명이 없는 산호인 양 시침을 뗐고, 나는 최대한 오키나와 방언스런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때마다 잠깐 대화를 멈추기는 했어도 우리는 바다가 춤을 추고 할머니가 사라지면 다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그는 야치문노 사토에 가서 오미네 짓세이 씨의 그릇에 담긴 오키나와의 바다를 보고 오라 말했다. 미바루비치의 카리카라는 카레 집에도 들러보라고 말했다. 

“영화 <카모메식당>에 이런 대사가 나와. 세상 어디를 가도 슬픈 것은 슬픈 것이고,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법이다. 그런데 말이야. 슬프고 외롭지 않다면 떠날 이유가 있을까?”



한 300년 즈음의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는 산호처럼 굳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년이 걸린다는 낮잠에 빠진 듯했고 그의 몸에 막 100년짜리 구멍 하나가 새로이 생겨난 듯도 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잠자는 그의 모습을 네모나게 딱 한 장만 찍었다.

“그래, 삶은 둥글게 살아도 여행은 네모나게 하는 거지.”

그가 잠깐 눈을 뜨고는 내게 말했다. 네모난 햇빛이 스미고 네모나 바람이 불었다. 네모처럼 눈을 뜨고 네모처럼 서서 네모난 시간을 셈했다. 너는 바다 저만치에서 발을 담그고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침을 떼고는 가만히 네모나게 웃었다. 너와 내가 맞은 오키나와의 두 번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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