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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Oct 29. 2018

하이파이브는 무척 오랜만이었다

춘천물레길에서

카누를 타기로 한 사람은 그와 촬영을 나온 나 둘 뿐이었다. 

“두 분이 짝이 돼야겠어요.”

카누 조교가 말했다. 그는 일흔 네 살의 노인이었다. 팔뚝이 굵고 허리가 꼿꼿했다. 

‘아직 건강하시네.’ 나는 혼잣말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짝이 됐다. 


그가 카누 앞자리에 앉았다. 내가 뒤에 앉았다. 강사는 뒤에 앉은 사람이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고 했다. 조금 더 노를 저어야 할 거라고 말했다. 그는 내게 잘 부탁한다고 했다. 배운 대로 노를 저었다. 배가 천천히 물길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엇박자가 나던 노질도 금세 나란했다.

“호흡이 잘 맞네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우리는 함께 노를 저어나가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일 년에 한 차례 일주일 동안 홀로 가을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젊어서부터 여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사는 게 바빴다. 첫 여행은 예순 일곱 살이었다. 첫 여행지는 전남 목포였다. 막상 목포에 도착하자 막막하고 두려웠다. 그가 택한 방법은 친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여행 온 또래 노부부를 보고는 말을 걸었다. 같이 여행하지 않겠냐고. 함께 다니며 택시비도 아끼고 밥값도 아끼자고 꼬드겼다. 그들과 함께 목포에도 가고 홍도에도 다녀왔다. 첫 여행이 끝났을 때 뭔가 ‘해냈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 후로 8년째, 가을이면 일주일씩 혼자 여행한다.

 

“제일 많이 묻는 게 왜 혼자 다니냐? 아내는 어쩌고. 와이프랑 같이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걸 어려워 해. 그 다음부터는 혼자 떠나요. 처음에는 수상한 눈으로 봐. 그런데 몇 해 지나니까 그러려니 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선물을 산다. 양구펀치볼마을에서 양구 특산품 시래기를 샀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혼쭐이 났다. 그 다음에는 평창에서 황태를 샀다. 그때는 ‘성공적’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아내가 손으로 만들 수 없는 재료들을 산다.

      

그 사이 카누는 반환점에 다다랐다. 우리는 강사가 가르쳐준 대로 배의 방향을 틀었다. 그가 순간 긴장했다. 방향을 헷갈려 거꾸로 노를 저었다. 나는 기다렸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다시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조금 더 노를 저어 나아갔다. 그리고 10분 정도 지나 강 위에서 잠시 노를 놓았다. 풍경을 즐겼다.

“와, 좋다.”

그는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여행을 떠난 이유가 있으셨어요?”

나는 그의 첫 마음이 궁금했다. 어떤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몸이 더 약해지기 전에.” 

스스로 체력을 살피니 여행 다닐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사실이 조금 억울했다. 그렇지. 그보다 절박한 이유는 없을지 모른다. 

“처음 나올 때는 겁났어요. 이제는 할 만 해. 그러길 잘 했어. 도전하길 잘 했어.”

광고 밖에서 ‘도전’이라는 말을 듣는 게 오랜만이었다. 우리는 다시 호흡을 맞춰 노를 저었다. 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호흡 맞을 만하니 끝나네.”

그가 먼저 카누에서 내렸다. 내가 뒤를 따랐다. 그가 힘차게 두 팔을 뻗어 올렸다. 광고의 한 장면 같았다. 

“야~ 좋다! 해냈어! 자, 하이파이브 한 번 합시다.”

그가 나를 향해 한쪽 팔을 뻗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짝’하고 경쾌한 소리가 났다. 누군가와 ‘하이파이브’를 한 것이 무척 오랜만이었다. 손끝이 얼얼했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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