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맥퀸 감독의 <슈퍼노바>
영화가 시작되면 밤하늘의 별들이 차례차례 화면을 채운다. 먼저 밝게 빛나는 별 세 개가 보인다. 그 주변으로 별들이 하나둘씩 반짝이며 나타난다. 그러다 어느 별 하나가 점점 밝아져 가장 밝게 빛나더니 홀연히 사라진다. 슈퍼노바(초신성)다. 그 위로 샘과 터스커가 맞잡은 손이 오버랩 되고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소원을 한 가지 들어준다면 무엇을 빌 거야?”
“이 여행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당신은?”
“애초에 이 병에 안 걸리길 바라겠지.”
몽골 고비사막에서 밤하늘을 본 적이 있다. 세계는 오로지 밤의 하늘과 밤의 땅만으로 나뉘어 있었다. 땅에 속한 나는 지평선에서 지평선까지 시야가 닿을 수 있는 밤의 하늘 어디에나 별이 가득한 걸 보았다. 처음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실감한 찰나였다. 그날의 밤하늘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데 나는 내가 그 밤, 땅 너머의 세계를 보았기 때문이라 여긴다. 살아가다 보면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경이로운 시간들. 그때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깨닫는다. 그리고 비로소 묻게 되는 것이다. 이 세계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터스커(스탠리 투치)는 샘(콜린 퍼스)의 조카와 나란히 누워 별을 헤아리다 ‘세상이 굶주리는 건…경이로움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서’라고 말한다. 샘의 조카는 그게 무슨 뜻이냐 묻자 ‘항상 질문하라’고 답한다. 터스커의 말처럼 엄지와 검지로 만든 작은 원 안에만 백만 개의 은하계가 있으며, 그 별들은 죽어 우리의 몸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우주가 생겨난다. 그에게 샘은 또 하나의 우주라서, 그가 샘을 사랑하는 건 그처럼 경이로운 일이자, 밤의 하늘을, 광활한 자연을, 두 사람을 둘러싼 세계를 의심 없이 묻는 일이다.
피아니스트 샘과 소설가 터스커는 20년이 넘은 연인이다. 두 사람은 터스커가 치매 판정을 받는 후 샘의 제안으로 캠핑카 여행을 떠난다. 캠핑카는 잉글랜드 북부의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가로지른다.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론리플래닛>에서 ‘잉글랜드에서 걷기의 심장과 영혼으로 불리는 곳’이라 소개한 여행지다. 워즈워드, 키츠, 러스킨이 사랑한 산과 숲과 호수가 있는 곳. 그들의 캠핑카가 황홀하고 장대한 풍경 속을 지날 때 두 사람은 한 편의 시가 되고, 우주를 유영하는 조각별처럼 보인다.
“당신이 이렇게 힘들어하잖아. 당신에게 불공평한 처사야.”
“공평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게) 사랑인 거잖아.”
해리 맥퀸 감독은 영화를 기획할 때부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질문했다 말한다. 샘은 여행의 날들 속에서 그 질문을 반복한다. 기억을 잃어가는 터스커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터스커는 샘과 다른 선택을 준비한다. 샘이 잠시 연주회에 다녀오는 사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샘의 바람처럼 한적한 곳에서 둘만의 여생을 보내는 건 ‘불공평한 처사’이므로. 하지만 샘은 터스커에게 “공평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게)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뭐길래, 우리는 삶과 죽음마저 사랑에게 묻고, 사랑에 거는 것일까?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 삶속에서 너무 자주 언급되어 뻔한 말처럼 들리는데, 둘의 사랑을 보며 실은 우리가 그 경이로움을 묻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슈퍼노바>가 경이로움을 묻는 방식은 뜻밖에도 **'거대하면서 말도 안되게 작은 이야기'라서, 우리의 가슴에 길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항상 질문하라.”
사실 터스커는 이 말을 샘의 조카가 아니라 샘에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인간은 조각난 별들의 흔적이고 그 여정의 기억으로 인해 불꽃놀이처럼 폭발해 사망한 후에도 더 밝게 빛날 수 있다고. 죽음 그 너머의 사랑을 보아달라는 것, 자신이 떠난 후에도 세계를 향한 질문을 멈추지 말아달라는 것, 그러므로 샘 자신의 삶을 살아달라는 것, 그가 샘에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이 아니었을까?
“뭔가 사라져서 슬프다는 건
그러기 전까진 좋았다는 거잖아.”
여행 중에 터스커가 샘을 위해 준비한 파티에서, 터스커는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 샘의 누이 릴리에게 말한다.
"그래도 새로운 시작은 좋은 거잖아.
뭔가 사라져서 슬프다는 건 그러기 전까진 좋았다는 거잖아.”
죽음 다음의 미래를 기약하는 건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곳은 인간이 가본 적 없는 세계이므로 애초에 불가한 약속이다. 그럼에도 터스커와 샘은 다음의 세계를, 그 경이로운 미래를 묻는다. 그것은 터스커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할 수 있는 선택이고, 터스커가 선택한 죽음을 묵묵히 묵도하는 건 샘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앞서 말한 밤하늘의 슈퍼노바가 두 사람이 맞잡은 손 위로 오버랩되던 영화의 첫 장면은 여행을 떠나기 전날의 아침인 양하지만, 실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두 사람이 묵었던 마지막 숙소, 두 사람이 함께 보낸 마지막 하루의 침대 위다.
“별이 폭발하면서 생긴 조각들이 있는데 그 작은 별 조각들은 우주를 끝없이 떠다녀. 아주 아주 긴 세월 동안. 나중에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서 우리 인간이 만들어지지.”
슈퍼노바는 스스로 폭발하기도 하지만 두 별이 만나 폭발하기도 한다. 그 폭발은 끝의 시작이라서 ‘new’를 뜻하는 라틴어 노바(nova)를 써서 슈퍼노바라고 명명했을 것이다. 그러니 터스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슈퍼노바> 안에서 두 사람은 이미 별의 한 생을 살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므로 열린 결말이 아니라 순환하는 이야기다. 죽음과 탄생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별의 세계, 두 사람의 영혼은 여전히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길 위를 여행 중일 것이다. 그것은 두 사람이 나눠가진 마지막 ‘사랑의 인사’이자 새로운 시작이리라.
# 페이드아웃 여행이 끝났을 때
우리 말 ‘안녕’은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모두 쓰이는 인사말이다. 여행의 길 위에서 그 인사를 나눌 때면 우리의 삶이 생과 사의 어느 경계를 지나고 있는 것만 같다.
“돌아가지 않을 거야.”
여행이 시작되고 샘이 터스커에게 건넨 첫 말이다. 잊은 물건이 있어도 차를 돌리지 않겠다는 뜻인데, 그 말투가 단호해서 더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때 터스커는 샘의 속내를 알지 못하므로, 그들이 진정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 서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한 채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샘은 터스커가 원하는 ‘사랑의 인사’를 연주 한 후 말한다.
“같이 있게 해줘.”
터스커는 가만히 샘을 끌어안는 걸로 답을 대신하는데, 그 몸짓이 너무도 담담해서 그 말이 두 사람의 현재에 속하는지, 세계의 너머를 향한 몸짓인지 알 수 없다. 그때 ‘같이’는 삶과 죽음 어느 한쪽에만 속하지 않아서, 그들의 사랑의 인사는 시점을 알 수 없는 ‘안녕’이어서, 끝과 시작이 아닌 별과 별 사이에 자리한 이별이 된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다시 별이 가득한 밤의 하늘이다. 둘의 사랑의 질문은 고스란히 영화 밖의 우리에게 다시 주어진다. 이 세계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정지용 시인은 ‘불현듯, 솟아날 듯 불리울 듯, 맞아드릴 듯 문득 영혼안의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일는 회한에 피여오른다’고 ‘별’을 노래한다.
옛사람이 별들에 이름을 붙인 건 나만의 별을 만들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 별들과 별들을 이어 별자리를 만든 건 사랑이 시작되어서였을 것이다. 그 속에서 서로에게 닿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삶은 이토록 경이로운 물음의 연속이다. 사랑은 그 가운데 가장 나중까지 남아 있을 질문이다.
* <론리플래닛>이 레이크디스트릭트에 대한 업급은 김남희 작가의 <유럽의 걷고 싶은 길>에서 읽었습니다.
** <씨네21> 배동미 기자의 기사에서 언급된 해리 맥퀸 감독의 인터뷰 '로드무비로서 랜드스케이프 속을 달리는 작은 밴이 광활한 우주 속 작은 별과 같아 보인다. 동시에 이 영화가 거대하면서 말도 안되게 작은 이야기이길 바랐다'에서 인용했습니다.
** <슈퍼노바>가 잔잔한 감동과 긴 여운을 남긴 건, 해리 맥퀸 감독이 '거대하면서 말도 안되게 작은 이야기'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