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
펀이 남편 보와 함께 살았던 네바다주 엠파이어는 광산이 문을 닫으며 유령도시로 변한다. 펀은 뱅가드라 이름 붙인 밴을 타고 앰파이어를 떠나 노매드의 삶을 선택한다. 그녀는 대자연의 길 위에서 많은 이들을 만난다. 그 만남과 이별은 그녀에게 삶을 질문하고 답한다. 채워지고 지워지고 기억되고 남겨진다.
“7월 이후, 엠파이어 우편번호 89405는 사용이 중단됐다.”
펀(프란시스 맥도랜드)은 길을 떠나기 전 물품보관 창고의 문을 연다. 시간이 멎은 채 차곡한 펀과 보의 물건들. 그녀는 짧게 숨을 내쉰다. 사랑했던 존재가 사라지면 시간이 멈춘다. 상실감은 반복으로 숙달되는 것이 아니라서, 미뤄둔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은 이렇듯 단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녀에게 지금 이곳을 견디는 건 그토록 쉽지 않은 일이다.
필요한 물건들을 밴에 실은 후, 펀은 남편 보의 옷가지를 감아쥐고서 한 번 더 사라져가는 체취를 끌어안는다. 자신의 일을 좋아했고 엠파이어를 사랑했던 보는, 병원에서 모르핀에 의지해 고통을 견디다 생을 마감했다. 펀은 남은 물건들을 채 정리하지 못하고 창고의 문을 닫는다.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바래지 않고, 그 아름다움은 영원할 것이니
죽음조차 그대를 가두지 못할 것입니다.”
펀은 노매드가 되고도, 얼마간 사람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에게 상실은 누군가 채워줄 수 있는 빈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데이브의 캔 따개가 펀에게로, 펀의 라이터는 데릭에게로. 내게 남아 필요 없는 것이 다른 이에게서 소용을 찾듯, 길 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야 한다. 그게 노매드의 삶이다. 그리고 물건이 내게서 옮겨갈 때, 그 안에 간직된 사연 역시 함께 옮겨간다.
펀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길 위에서 데릭을 다시 만난다. 그녀는 데릭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데릭은 그녀가 건넸던 라이터를 기억한다. 이번에는 데릭이 펀에게 새로운 라이터를 선물한다. 펀은 여자 친구와 떨어져 힘들어 하는 데릭에게, 자신이 결혼식에서 보에게 전했던 연시 한 편을 들려준다.
‘그대를 여름날에 비유해도 될까요?’로 시작하는 시는 펀에게서 데릭에게로 건너간다. 데릭은 어느 날 자신의 연인에게 그 시를 읽어줄 것이다. 그리고 펀과 보의 사랑은 다시금 데릭과 함께 여행할 것이다. 이제 그 시 안에서 ‘영원한 여름은 바래지 않’으며, ‘여름보다 더 사랑스럽고 온화한’ 계절이 숨쉬기 시작한다.
“난 여행을 떠날 거야. 다시 알래스카로 돌아갈 거야.
좋은 추억들이 있거든.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할 거야.”
일흔다섯 살의 스웽키는 폐암으로 7~8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 그 사실이 펀과 스웽키를 가깝게 한다. 스웽키는 쌀쌀맞은 듯하지만, 펀에게 진정한 노매드의 생활을 일깨운다. 펀은 스웽키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아무렇지 않게 보를 잃은 슬픔을 고백한다. 병원에 앉아 지새던 밤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던 무력한 시간들. 스웽키는 그 날들 속에서 보가 펀과 함께 좀 더 오래 있고 싶었을 거라 말한다. 그것은 죽음을 맞딱드린 스웽키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다.
스웽키는 병원 대신 자신의 ‘인생이 완전했다’ 느꼈던 추억 속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어느 밤, 펀은 스웽키가 보낸 영상 문자를 받는다. 그 영상 속에서 스웽키는 카약을 타고, 그녀가 ‘그 순간에 죽어도 정말 괜찮았을 거야’라고 말하던 아름다운 풍경, 수백 마리의 제비 둥지가 있는 절벽 아래에서 갓 부화한 제비들의 껍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펀은 스웽키에게서 남편 보를 본다. 병석에서 고통 가운데 마지막을 맞이했던 보의 영혼은, 스웽키와 함께 그곳을 여행하고 있다. 스웽키는 펀에게 이제 그만 껍질을 깨고 나아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언젠가 그 사랑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것은 펀에게 전하는 보의 음성이기도 할 것이다.
언제인가 스웽키가 특별할 것 없는 어느 날, 평범한 노을을 보며 낮게 읊조리던 장면이 떠오른다.
“뭔가 멋지게 보여.”
펀은 매일의 노을 속에서 보를, 스웽키를 만난다.
“난 여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작별인사는 하지 않아요.
항상 이렇게 이야기해요. 길에서 만나요.
그게 한 달이든, 일 년이든, 나는 그들을 다시 봅니다.”
펀은 ‘기억되는 건 남아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길 위에서 조금씩 알아간다. 기억은 흔적을 간직한 물건에만 남아 있지 않다. 기억은 누군가의 기억을 빌려 여행한다. 추모와 애도는 내 안에 머물 때 슬픈을 달래는 일이지만, 나누어 가질 때 기억 밖에서 영원을 살아낸다.
노매드의 커뮤니티 아리조나 RTR에서, 펀은 노매드의 방식으로 스웽키의 장례식을 치른다. 다음 날 아침, 펀은 리더 밥과 두번째 마주앉는다. 그리고 보가 죽은 후에 곧장 엠파이어를 떠날 수 없었던 이유를 말한다.
“보는 부모를 몰랐고 우리는 아이가 없었어요. 만약 내가 엠파이어를 떠났다면 그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되었겠죠.”
그리고 자신이 너무 오랜 세월 기억만 하며 보냈다, 는 걸 깨닫는다. 밥은 좀처럼 말하지 않았던, 아들을 잃은 이야기를 꺼낸다. 그 또한 그 상실에서 벗어나려 길을 떠났으며, 길 위에서 답을 찾았노라고.
“내가 이 삶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마지막 작별인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항상 이렇게 이야기하죠. 길에서 만나요.”
스웽키를 떠나보낸 후, 펀은 남편 보와의 기억이 남은 엠파이어로 향한다. 앰파이어의 텅 빈 거리를 거닐고 옛 직장의 사무실에 들러서는, 먼지 낀 책상을 손끝으로 훑는다. 그녀의 손가락이 지난 자리는 길처럼 남는다. 노매드의 삶은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며 길을 내는 일일지 모른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나기 전, 그녀는 남편 보의 물건들을 모두 처분한다.
“정말 이 물건들 필요 없어요?"
그의 물건을 인수하던 앰파이어의 옛 친구가 묻는다.
“괜찮아요. 아쉬운 건 없어요.”
이제 엠파이어에는 펀과 보를 기억할 수 있는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보는 펀과 함께 떠날 것이고, 펀은 길 위에서 또 다른 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펀과 보의 물건들을 싣고 떠나는 옛 친구가 말한다.
“나중에 봐요. see you later.”
떠나는 것과 남는 것, 나는 김종관 감독의 <조제>를 이야기하며 사랑은 죽어 추억을 남긴다 말했다. 사랑하는 남편이 죽은 후, 펀은 자신에게 남겨진 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지워지는 기억을 잃지 않으려, 기억되는 건 남아 있다 믿으며.
여행은 무엇일까? 머무는 것일까, 떠나는 것일까, 떠도는 것일까, 돌아오는 것일까, 남는 것일까 ,사라지는 것일까, 사라지는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사라지는 것들 안에 머물고 싶어 떠나는 것일까?
나 역시 사랑하는 엄마을 잃고 떠난 적이 있다. 언젠가 견딜 수 없는 이별이 오면 가야지 했던 그곳은, 북향의 어촌 마을이었다. 다만 그 대상이 엄마가 될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는 그 바다마을에서 한쪽 눈을 잃은 고양이를 만났다. 그 고양이는 가만히 내게 다가와 몸을 비비고는 다시 방파제로 물러났다. 우리는 잠시 떨어져 한쪽 눈만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북향의 마을에도 오후의 햇살은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한쪽 눈의 고양이가 한쪽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길에서는 그런 우연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슬픔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그처럼 믿기지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만으로, 조금은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기억이 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라면 그 다음의 어느 날, 우리는 사랑을 잃고 떠나게 될 것이며, 슬픔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얼마간은 기억 속 슬픔이 힘이 된다. 하지만 그 슬픔을 떠나보내는 법 또한 배워야 한다. 그렇게 사랑은 죽어 추억이 될 것이다. 희망이 되고, 다시 믿음이 될 것이다. 나는 언젠가 당신을 다시 만날 것이다. 한 해가 걸리든, 한 달이든, 일 년이든, 그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함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 길에서 만나요.”
그렇게 나는 우리를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