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 감독의 <만추>
애나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7년만에 출소 휴가를 받아 나온다. 그녀는 시애틀로 가는 버스에서 훈을 만난다. '사랑이 필요한 여자들에게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는 훈은 표정 없는 애나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두 사람은 시애틀에서 연인처럼 72시간을 보내며 차갑게 서로를 보듬어 껴안는다.
“당신의 표정이 예스라고 했으니까요.
웃고 있었잖아요.”
애니(맥 라이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애틀 사는 남자’ 샘(톰 행크스)에게 운명적 사랑을 느낀다. 동료 베키는 그녀에게 일침을 가한다.
"거긴 지겹도록 비 오는 곳이야.“
모든 사랑이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처럼 끝나지는 않는다. 처음 만난 남녀가 운명처럼 사랑을 느끼고, 아름답게 손을 잡고 영화 밖으로 걸어 나가는 일은 현실에서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만추>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같은 시애틀을 배경으로 한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72시간의 출소 휴가를 나온 애나(탕웨이)는 시애틀 가는 버스 안에서 훈(현빈)을 만난다. 훈은 누군가에게 쫓겨 급하게 버스에 오른다. 버스 안을 둘러보고는 애나에게 다가가 버스비 30달러를 빌린다. 애나는 나중에 왜 자신에게 돈을 빌리려 했는지 묻는다. 피부색이 같은 이방인이라서? 훈은 애나가 웃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물론 애나는 웃은 적이 없다 말한다.
“당신의 용서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난 당신의 사랑을 원해요.”
애나와 훈은 시애틀에서 연인처럼 하루를 보낸다. 둘은 경계를 넘지 않으며 조금씩 서로를 알아간다. 애나는 그 하루 속에서 옛 연인 왕징과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데이트도 하고 춤도 추고 파티도 가고’ 왕징이 ‘좋은 여자를 원하면 좋은 여자가 되어주고, 나쁜 여자를 원하면 나쁜 여자가 되어주’려 했던 시애틀의 시간들.
애나는 왕징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구타하는 남편을 죽이고 살인자가 되었다. <만추>의 첫 장면은 남편을 죽이고 집밖으로 뛰쳐나온 애나다. 그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집 안에 널브러져 있던 흔적들 가운데, 왕징과 함께 찍은 사진을 찢어서 먹으므로 증거를 지운다. ‘그땐 그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만큼 좋아했다’는 애나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걸 알았다면 사랑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애나가 버스 안에서 훈을 보고 웃었다면 그건 ‘(사랑 때문에) 갇힌 자’가 알고 있는 ‘(사랑 때문에) 쫓기는 자’의 결말에 대한 동정 같은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훈이 사랑이 아닌 돈을 쫓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애나는 훈과의 감정이 거래될 수 있는 것이라 안도한다. ‘서로 다시 만날 일은 없는’ 적어도 목숨을 걸 만한 사랑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만추>를 두 번째 볼 때, 애나와 훈이 처음 만나는 초반부 버스 장면을 유심히 살폈다. 애나의 입꼬리가 두 번 실룩거리기는 했다. 훈은 자신을 보고 웃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애나 자신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운명일까? 훈이 애나에게 버스 안에서 웃어주었기 때문에 돈을 빌렸다고 말한 건, 실은 오늘 내가 당신을 웃게 했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애나는 이제 막, 훈에게 자신이 감옥에게 가게 된 사연을 고백했으니까. 그리고 훈은 이제 막, 몸을 쓰지 않고 대가없이 상대를 만족시켰으니까.
“안녕, 난 훈이라고 해요.”
“안녕, 난 애나에요.”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훈은 애나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찾아간다. 훈은 장례식장에서 애나의 옛 애인 왕징과 심하게 싸운다. 왕징이 자신의 포크를 쓰고 사과하지 않았다 변명하지만, 그로 인해 왕징은 애나에게 처음 사과한다. 사랑은 포크를 빌려 쓰는 것처럼 사소한 오해의 해프닝일 수 있지만,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포크 하나는 살인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운명적 사랑과 목숨을 건 사랑은 그 맹목으로 인해 동전의 양면처럼 닮아 있다.
두 사람의 휴가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훈은 시애틀의 버스정류장에서 애나와 작별하고 돌아서지만, 곧 애나가 탄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 시침을 뗀 채 애나의 옆자리에 앉아 인사한다.
"안녕, 난 훈이라고 해요."
"안녕, 난 애나예요."
두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처음 마주한다. 애나는 고개를 숙여 웃는다. 웃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웃음소리가 분명하게 들린다. 이제 두 사람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처럼 손을 맞잡고 운명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두 사람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훈은 잠깐 멈춰 선 휴게소에서 어떠한 이유 때문에 애나와 멀어지는데, 영화는 애나에게 끝까지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 가득한 건 을씨년스런 날씨와 아득한 안개인데, 그 가을이 여름을 막 지나온 이른 가을인지, 겨울로 접어들기 전의 늦은 가을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은 그 계절 속 어딘가에 그대로 멈춰 선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운명적으로 알았어요. 마법에 걸렸다는 걸.”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애니와 샘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뉴욕이지만0)에서 처음 마주하는 순간 손을 맞잡는다. 샘과 애니의 사랑은 운명적일까?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우연이 운명의 증거라면 둘의 사랑은 운명적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운명적 사랑이라고 단언하지도 않겠다. 무엇이든 존재할 확률은 존재하지만, 그 반대의 세계도 마찬가지로 존재할 확률은 존재한다.
"거긴 지겹도록 비 오는 곳이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베키가 애니에게 했던 말이 다시 떠오른다. 그 말은 지겹도록 사랑이 이뤄지는 시애틀, 처럼 들리기도 한다. 베키 역시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었고 곧 후회했으며 다른 사랑을 찾았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운명적으로 알았어요. 마법에 걸렸다는 걸.“
이 대사는 샘이 애니에게 한 말이 아니다. 샘은 죽은 아내 역시 자신의 운명이라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운명’이라는 말이 조금은 의심스럽다.
그럼 애나와 훈의 사랑은 운명적일까. 둘 사이가 운명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운명에 대한 공고한 믿음이 어떻게 생겨나는 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게 무엇이든 존재할 확률은 존재한다. 훈이 애나를 웃게 한 순간 그 사랑은 둘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사랑은 시애틀이 아니더라도 지겹게 일어날 것이다. 그 가운데 어느 날 우리는 우리를 너무 강렬하게 믿으므로, 그 사랑이 전부라 생각해 목숨을 걸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마법(magic)에서 풀려나고 모든 사랑은 안개 속을 걷는 일이란 걸 알게 될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사랑이 말하는 운명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어이 다시 사랑하게 되는 까닭에 대해서도.
여행은 시작과 끝이 닮아 있다. 비행기 아래 세상은 이륙과 착륙의 풍경이 다르지 않다. <만추>의 휴가 역시 그 시작과 끝의 감정이 닮아 있다. 사랑의 빈자리에서 시작해 사랑의 빈자리에서 끝난다. 다행한 건 그 빈자리가 떠난 사랑의 한기보다는 아직 다다르지 않은 사랑의 온기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고작 72시간의 휴가라고 말하지는 말자. 누가 사랑의 무게를 잴 수 있으며, 거리를 가늠할 수 있을까?
애나는 시애틀에서 보낸 ‘휴가’가 끝났을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버스는 같은 휴게소에 멈춰 서지만 이제 그녀의 손에는 두 잔의 커피가 들려 있고, 그녀의 옆자리는 더 이상 비어 있지 않다. 그녀는 이제 더는 목숨을 걸 만큼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 않지만, 훈이 자신을 웃음 짓게 했다는 걸 안다. 애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웃음이 많은, 감자칩과 고양이를 좋아하고, 한때는 발레리나를 꿈꿨을 수도 있는, 모텔의 부서진 문 위로 자신의 주먹과 머리 높이를 맞대어보고, 범퍼카 위에서 훈과 함께 연기하다 시침을 뚝 뗄 줄 아는 장난스런 사람. 오늘 사랑이 어제와 같을 수는 없지만 애나는 다시 내일을 기다릴 이유를 갖는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마치 사랑이 끝난 후 홀로 밤길을 걷는 것 같은 쓸쓸한 느낌을 받곤 한다. 떠날 때의 두근거림은 막 사랑이 시작될 때의 그것과 닮았는데, 돌아오는 길의 두근거림은 왠지 모를 상실의 감정이다. 발끝에 보이는 세상은 시작과 끝이 같은데 이제 더는 시작 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이야말로 여행이 남긴 선물이라 생각한다. 영화로 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남는 여운과 같은.
<만추>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그 사랑을 예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안개 속에서 갈피를 잃게 만드는데, 그걸 여운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문이 쉽게 닫히지 않는다. 살아가다보면 다시 떠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지치지 않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시나브로 생겨난다. 여행처럼 사랑의 끝이 그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별이 미움으로 끝날지라도 그 미움이 다음 사랑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그리하여 언젠가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됐을 때, 미움이 두려움이 되지 않았으면, 지난 사랑의 교훈이 여운으로 남아 있었으면, 그렇다면 <만추>는 아직 끝이 나지 않는 애나와 훈의 여행이다. 그래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애나는 영화 밖으로 말을 거는 것이다.
“안녕, 오랜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