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이다. 당신과 나는 서해에서 한해의 마지막을 보내기로 의기투합한다. 우리는 새해의 첫 해가 주는 생기보다 한해의 마지막 해가 주는 여운이 더 좋았다. 하필 왜 그 흔한 대천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곳이 흔한 대천이라 한해의 마지막과 잘 어울린다 생각했을 수 있다. 아니면 그저 흔한 비용 문제였을 수도. 어쨌든 한해의 마지막 해가 지고 있다. 한해의 마지막을 장식할 만큼 크고 도발하듯 이글거린다.
“잠깐만.”
나는 당신 곁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며 카메라를 든다. 셔터를 몇 번 누른다. 붉은 빛이 조금 더 짙게 번지고 있다. 파도가 멈추는 모래사장 끝에 나란한 연인이 눈에 들어온다. 두 사람은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먼 바다를 응시한다. 그들을 향해 또 한 걸음 바다 쪽으로 다가선다. 태양은 생각보다 빨리 수평선 너머로 가라 앉는다. 나는 맘이 급해져 앵글을 바꿔가며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태양이 수평선 위로 완전히 잠긴 후에야 정신을 차린다. 뒤를 돌아보니 당신 혼자 남아, 노을 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실수를 들키지 않게, 시침을 떼고, 천천히 뒤돌아 걷는다. 당신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해가 진 바다를 등지고 당신 곁에 선다.
“다 찍었어?”
“응.”
눈치 채지 못한 건 나였다. 당신은 내가 머쓱하지 않을 만큼 웃는다. 뒷머리라도 긁적거려야 하나. 우리는 뒤늦게 나란히 해가 지고난 후의 수평선을 바라본다. 아직 하늘은 파랗고 수평선은 붉다.
해가 없어도 바다는 아름답다. 그 풍경은 그 풍경대로 좋다. 내 사진 속에 머물던 연인이 자리를 뜬다. 당신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내민다.
“예쁘지?”
일몰과 나를 찍은 사진이다. 나는 사진 속 내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종종 출장길에 엄마와 동행하곤 했다. 바람이라도 쏘이시라고. 같은 장소에서 나는 나대로 일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여행했다. 엄마는 한참을 혼자 돌아다니다 다가와서는 ‘여행작가니 꼭 찍어야 할 것’이 있다며 나를 부른다. 흔한 들꽃이거나 나무거나 숲이거나. 엄마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들. 그러나 내 작업에는 필요 없는 풍경들. 그럴 때 나는 말없이 엄마가 가리키는 걸 몇 장 찍고 돌아서기도 하고, 방해받은 흐름에 심심한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그럼 엄마는 엄마 대로 또 다시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여행했다.
엄마는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꼭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그날의 여행 사진을 보여주곤 했다. 그 사진 안에는 내가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많았다. ‘여기는 어디냐?’라고 기어이 묻게 되는 아름다운 장면들, 엄마의 마음을 채우는 따뜻한 감성들. 그리그 그 사진 가운데 한두 장은 카메라를 든 내 뒷모습이 껴있었다.
“예쁘지?”
엄마는 그때마다 내 뒷모습 사진을 보며 말하곤 했다. 예쁘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인생에는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 가운데는 나와 상관없다 믿었던, 믿기지 않는 게 더 많다는 걸 알았다. 그런 것들은 대체로 쓸쓸해 나는 한동안 그 모든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두려워지곤 했다. 당신은 그 가운데 다행한 경우, 운수 좋은 거짓말. 엄마가 떠날 때 내 곁에 있던 사람, 그러니 엄마가 떠나고 내 곁에 처음 온 사람. 내가 나를 조금 더 믿어도 괜찮겠다는 거짓말.
사진은 정지한 화면인 것 같지만 살아있는 장면이다. 생기를 불어넣으면 생기롭고, 화를 섞으면 불꽃처럼 타오르고, 환희에 찰 때는 찬란하다. 그리고 사랑을 담으면 때때로 반성을 부른다.
“미안.”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당신에게 사과한다.
“괜찮아.”
당신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뭐’라고 말하지 않는다. 당신 안에 는 이미 내 일몰 사진 만큼이나 많은 내 뒷모습이 담겨 있겠지. 필요 없는 것들을 끌어안으려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바다가 조금씩 어두워진다. 흔한 오늘이 끝나간다. 나는 당신 손을 꼭 쥐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