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우리들의 판타지아

<한여름의 판타지아>

by 박상준

“모두가 건강하게 사이좋게 아무 나쁜 일도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혜정(김새벽)과 유스케(이와세 료)는 고조시 관광안내소에서 처음 만난다. 여행자 혜정에게 호감을 느낀 귀농청년 유스케는 여행가이드를 자청한다. 시내로 가는 길, 유스케는 혜정에게 어떤 일을 하느냐 묻는다. 혜정은 ‘뭔가 만드는 일’을 한다 모호하게 답한다. 유스케가 다시 묻자 ‘뭔가···’라며 한 번 더 말끝을 흐린다. 여행자의 경계심만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을 내가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여행을 떠나곤 한다.

"여기서 뭔가를 찾고 있어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1부 ‘요시코의 첫사랑’과 2부 ‘벚꽃우물’로 이뤄진 영화다. 앞서 말한 혜정의 에피소드는 2부의 도입부다. 혜정은 나라시를 여행하던 중 아침을 먹다 말고 ‘좀 더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아서 무작정 고조시로 왔다. 그녀는 무엇을 할지 결정한 건 없지만 ‘잘 온 것 같아’라고 말한다. 실은 자신이 찾고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뭔가를 찾고’ 있다기보다 찾아야 할 것이 뭘까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의 여행에는 목적지가 없다. 그들에게 ‘어딘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장소가 아닌 목적을 여행하고, 무언가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믿음이 이들의 여행을 이끈다. 그때 여행(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나 세계문화유산과도 거리가 멀다. 우연히 들린 카페의 어떤 표정이나 우연히 건네받은 누군가의 귓속말이 길을 연다. 그리곳 그곳에서 일어난 무언가로 인해, 그 여행은 나에게만 의미를 갖는다. 인스타그램에는 없는 여행이다.

1부 ‘요시코의 첫사랑’은 영화감독 태훈(임형국)의 촬영 답사 여행이다. 그는 영화에 담을 이야기를 찾는다. 고조는 ‘한국인이 오는 게 드문 일인’ 도시고, 그는 고조시라는 것 외에 ‘어디서 무엇을 찍을지 정해진 게’ 없다. 막막한 출장이다.

“일단 사람이 나와야 할 것 아냐. 내가 풍경 찍으러 온 건 아니잖아. 사람이 중요한 거지.”

극중 영화감독 태훈의 말이다. 맞다. 여행은 사람이다. 무언가를 찾는 여행은 누군가로 인해 해답에 다가서기도 한다. 그래서 세계테마여행 역시 풍경은 스치듯 담고 기어이 사람을 찾아 에피소드를 만들지 않나.



태훈은 통역을 돕는 조감독 미정과 함께 고조시 공무원 유스케 그리고 고조시 토박이 켄지의 안내를 받는다. 유스케와 켄지는 ‘당연한 곳을 데려다’ 주기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런 곳으로 데려간다. 유스케는 도쿄 태생으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3년 전 처음 고조시에 왔다. 한때는 배우를 꿈꿨고 고조시에서 미정을 닮은 한국인을 가이드한 적이 있다 . 켄지는 반대다. 고향을 떠나 오사카에서 치기공사 일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사카에서 첫사랑 요시코를 닮은 한국 유학생을 잠시 만난 적이 있다 고백한다.

영화는 누군가의 판타지를 여행하는 일일 것이다. 태훈은 서로 다른 시점을 가진 두 사람 유스케와 켄지의 눈으로 고조시를 들여다본다. 그래서 태훈이 만들었다 생각되는 2부 ‘벚꽃우물’에는 유스케와 켄지의 사연이 줄기를 이룬다. 태훈은 유스케와 켄지 외에도 여러 사람을 만나 인터뷰한다. 켄지의 고향 시노하라에서 만난 아흔 살의 할머니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다.


시노하라는 고조 시내에서 한참을 들어간 마을이다. 관광객은커녕 고조사람도 잘 찾지 않을 고요한 산골이다. 태훈과 미정은 그곳에서만 평생을 산 한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귀가 멀어 보청기를 한 할머니는 임업이 한창이던 시절 100채 남짓하던 집이 이제 20채 밖에 남지 않았다고, 자신이 입학했을 때 전교생이 60명이었던 초등학교는 이제 텅 비어 있다 말한다. 태훈은 고조시에서 시노하라로 오는 길에 보았던 풍경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풍경 안에 한 그루 고목처럼, 긴 시간 터 잡고 산 할머니의 ‘무언가’가 궁금했을 것이다. 태훈은 할머니 이야기를 듣다 할머니에게 청한다.

"할머니 손 한 번 잡아 봐도 돼요. 손 한 번 잡고 싶어요."

할머니는 혜정의 통역을 듣고는 두 손으로 태훈의 양손을 맞잡아 악수한다.

"예쁘지 않는 손인데...."

할머니의 손에는 1928년에 초등학생이 되던 한 소녀의 세월이 주름져 물결친다. ‘친구들은 모두 도시로 가 버렸는데 무슨 인연이 있는지 여기서 계속 살고’ 있다는 할머니의 말은 체념도, 운명도 아닌 덤덤하게 지나가버린 세월일 따름이다. 그렇게 할머니의 할머니가 살았고 어머니가 태어난 집과 학생 없는 폐교에 걸린 낡은 단체 사진처럼, 사라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흔적들은 할머니의 손을 빌려 태훈의 가슴으로 옮겨간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는데 태어난 곳이니까 어쩔 수 없죠. 모두가 건강하게 사이좋게 아무 나쁜 일도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할머니의 생이 전하는 소소한 바람은 영화의 초반부를 떠올리게 한다. 태훈과 미정은 유스케의 안내로 고조시를 돌아보다 더 이상 돌봐줄 사람들이 없는 무덤들의 *공동묘지를 지나간다. 이때 공동묘지는 <비포 선라이즈>속 비엔나의 이름없는 공동묘지와도 닮아 있다. 무덤을 보며 태훈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같이 모여 있어서 쓸쓸하진 않겠다.”

영화 속 태훈은 <한여름밤의 판타지아>를 만든 장건재 감독의 분신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나라국제영화제의 제작지원 프로젝로 제작됐다. 장소는 고조시로 정해져 있었다. 갇힌 틀, 그래서 감독에게는 일상적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다른 이야기가 절실했을 것이다.

1부 ‘요시코의 첫사랑’은 감독이 고조시에서 영화에 담을 이야기를 찾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2부 ‘벚꽃우물’은 그 과정을 거쳐 감독이 찾은 영화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유스케와 혜정(미정)은 1부와 2부 모두에 등장한다. 다른 배역이지만 1부와 2부는 앞서 말한 이유로 인해 이어져 있다. 하지만 따로 떼 놓고 보아도 온전하다. 그럼 다른 표정이 보인다. 1부는 김태훈 감독의 여행으로, 2부는 혜정의 여행으로. 이유가 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요네자와 코하루를 기억하며’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요네자와 코하루는 김태훈 감독이 손을 잡은 할머니의 이름이다. 실제로 시노하라에 살던 노인이다. 할머니는 촬영이 끝나고 후반 작업이 한창일 때 돌아가셨다. 그러니 영화 속 요네자와 코하루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의 삶을 전하는 마지막 육성이다. 할머니의 나이든 손이 남긴 유산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나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이 감독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요네자와 코하루 할머니의 따님이었다고 한다. 또 고조시민들을 위한 시사회가 따로 마련됐다. 고조시민들은 영화 속 마을 풍경과 이웃의 이야기를 보며 처음으로 자신들의 고향 고조를 여행했을 것이다. 모두 나이는 들어가지만 ‘건강하게 사이좋게’ 그리고 ‘같이 모여 있어서 쓸쓸하’지 않다 느꼈을 것이다. 요네자와 코하루 할머니도 살아계셨다면 그러했겠다. 시노하라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건 ‘드문 일이니까. 살면서 그런 일은 없었’을 테니까. 이제 더는 들을 수 없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 있다.

그런 장면들, 그런 만남들은 영화 뿐 아니라 여행을 값지게 한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요네자와 코하루 할머니로 인해 장건재 감독에게조차 일로 떠나 여행으로 돌아오는 추억이 됐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처럼 찍은 ‘요시코의 첫사랑’은 영화와 현실을, 현실과 여행을 넘나든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행은 끝나지 않아, 그곳을 여행한 감독에게 안부(부고)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만남은 습관적인 하루를, 무료하던 여행을 빛나게 한다. 앞서 말했듯 그곳에서 일어난 ‘무언가’로 인해 의미를 갖는다. 그 의미로 인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이 ‘무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되는 것이다.




2부 ‘벚꽃우물’에도 요네자와 코하루 할머니 집은 등장한다. 1부에서 영화감독 태훈이 할머니의 손을 잡은 그 집을, 2부에서는 혜정이 유스케와 같이 찾는다. 우연은 아닐 거라 짐작한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집은 장건재 감독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오래 산 사람들의 더딘 걸음이, 지나온 세월이, 남아있는 시간들이 그에게는 고조시와 시노하라가 간직한 심상이었을 수 있겠다. 요네자와 코하루 할머니는 관객 입장에서 보아도 유독 기억에 남는 등장인물이다. 그래서 유스케와 혜정의 행복을 묻는 대화가 그곳에서 오가지 않았을까?

유스케와 혜정은 시노하라의 아무도 없는 할머니 집 툇마루에 앉는다. 유스케는 자신의 작은아버지가 태어난 건너편 산기슭 집을 가리킨다. 요네자와 코하루 할머니가 자신의 ‘할머니가 살았고 어머니가 태어난 집’이라 말한 그 집일 것이다.

“혜정 씨는 오래 살고 싶어요?”

유스케가 묻는다.

“적당히(ほどほど)”

혜정이 답한다.

"저는 오래 사는 것보다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상이라면 유치하다 핀잔을 들었을 질문은 여행이라서 진지하며 현실적이다. 그리고 그 말은 할머니의 ‘모두가 건강하게 사이좋게 아무 나쁜 일도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던 바람을 떠올리게 한다. ‘꿈의 노예가 되기보다 지금을 행복하게 사는 것’은 어렵지만, 건강하게 사이좋게 살아가는 건 그래도 도전할 만한 꿈처럼 여겨진다.

혜정과 할머니가 정의하는 행복이 같지는 않겠지만, 같은 자리에서 누군가의 소망을 듣는 건 서로에게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그 장면에서 유스케와 혜정은 뒷모습으로 툇마루에 앉아 있다. 카메라는 그들의 뒤에서 그들을 비추는데, 숨을 고르며 한 단어, 한 단어 내뱉던 할머니의 따스한 시선인 양하다.




+ 페이드아웃, 여행이 끝났을 때


떠나야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곳에서만 알 수 있는 사실들. 나와는 상관없는 곳인데 그곳에서 마주한 이야기들은 나의 이야기가 되곤 한다. 그 음성은 운이 좋다면 우연히 주어진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이 알려주는 우연의 장소들, 그곳에서 들은 그곳만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여행에서 찾아 헤매는 ‘무언가’란 그런 것들이 아닐까. 우리 삶에 힌트를 주는 여행의 배려는, 지금 여기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속 1부와 2부의 이야기는 모두 불꽃놀이로 끝난다. 그건 마치 그 ‘무언가를 찾았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안타깝게도 불꽃처럼 금세 사라지고 말 것이다.


여행을 다녀오면 얼마간은 손 안에 여행지의 공기를 쥐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공기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그날의 여행이 내 몸 안에 온전히 스미었다 믿는다. 요네자와 코하루 할머니의 온기는 곧 손 안에서 사라질 테지만 그 온기가 남았다는 기억은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서 꺼지지 않는다. 무언가는 찾아서 손에 쥔다기보다, 무언가가 있으므로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며 살아낼 수 있는 것일 테다. 그러니 혜정의 말처럼 "ほどほど“한 만큼 살아내면 된다. 그때 ‘적당히’라는 의미의 "ほどほど는 대충대충과는 다르다. 할 수 있는 만큼, 서두름 없이.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조금씩 기다려주는 장면이 많아 좋았다. 인물이나 이야기가 나타나기 전에 편집점이 조금씩 뒤로 밀리거나 당겨진다. 영화를 보다 멈춰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 짧은 여백들. 나는 그 장면들을 이 영화가 간직한 여행의 찰나라 부르고 싶다. 여행은 좀 더 머물 수 있고, 좀 더 기다릴 수 있고, 때로는 좀 더 내버려둘 수 있어 여행이다. 마침표가 분명하지 않는 말줄임표들. 우리가 여행에서 무언가를 찾게 된다면 그런 점점점의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들었던 이야기를 곱씹어 마주하고, 이제 곧 듣게 될 이야기를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는, 누군가의 손을 잡기 전,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난 후, 누군가와 입을 맞추기 전, 누군가와 입을 맞추고 난 후.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그것이 여행의 ‘판타지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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