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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석 Oct 28. 2015

중국을 얕보지 마세요.

열 한번째 인터뷰_짜이서울 장재영 대표님

['짜이서울' 한국으로 여행을 오는 중국인(유커)을 대상으로 여행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스타트업으로, 특히 매거진, 여행지도, 시티투어버스 등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통해 여행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 2011년 2월,  서울여행 매거진 ‘짜이서울’ 발행을 시작으로 최근 2015년 9월 Nice그룹으로부터 30억 원의 투자 유치를 진행할 때까지, 짜이서울은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출처 : http://www.zaiseoul.com/


'짜이서울'은 장재영 대표님과 이경준 대표님, 두 분의 공동창업으로 시작됐다. 두 분을 모두  찾아뵈었다면 좋았겠지만, 일정상 우리는 한국에 계신 이경준 대표님을 통해 중국 상하이 지사에 계신 장재영 대표님만을  찾아뵈었다. 그리고 높은 빌딩이 즐비한 상하이에서 우리는 장재영 대표님과 '짜이서울' 창업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짜이서울'이라는 서비스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신 건가요? 


제가 창업을 생각하게 된 것은 당시에 고민하던 것에서 시작되었어요. 그 고민은 제가 중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중국 베이징에서 대기업 인턴 2개월을 하는 중에 생긴 고민이 있어요. 어느 날 문득 인턴 생활을 즐겁게 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아침에는 일어나 출근하기가 싫었고 출근해서는 퇴근 시간만 기다렸어요. 주말에는 잠만 잤고요. 그때 든 생각이 '2개월 밖에 안됐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나중에 정말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회사를 다니게 되면 정말 힘들겠다, 큰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이런 생각이 들다 보니 직장 생활에 대한 매력을 별로 못 느꼈어요. 그리고 만약 내가 앞으로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취업하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후회 없이 직장 생활을 하자'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1년 늦고, 2년 늦는 것은 인생에 큰 악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1년간의 유예시간을 갖기로 하고 뭘 할까 고민을 했는데 창업이 제게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결심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디어를 찾으려는데 생각이 나질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디어가 생각 나는 대로 하나씩 하나씩 종이에 적어보니 100개 정도 되더라고요.  그중에 추리고 추려서 몇 개로 정리했고, 또  그중에서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니 ‘매거진’에 관련된 아이디어더라고요. 사실 그 당시에는 매거진도 아니고 쿠폰북이었어요. 이 쿠폰북이라는 초기 모델이  확장돼서 지금의 '짜이서울'이 된 것이죠. 엄밀히 말하면 '짜이서울'은 제가 처음 생각했던 모델과는 많이 달라요.


창업을 결심하시고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막막하지는 않으셨어요?


저도 초반에 많이 방황을 했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그 어려움을 해소하려고 했었죠. 그 어려움은 창업은 하고 싶은데 아이템이 나오지 않은 것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했고, '왜 창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어요. 사업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기였죠. 그래서 창업의 방향과 목적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매체를 통해 대표님들을 찾아 만나러 다녔어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저를 만나러 오신 것처럼요.  그분들 중 한분의 말씀이 제게 가장 큰 자극을 주었는데 그분이 제게 ‘사실 이렇게 인터뷰를 다니는 것은 창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길을 뻗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든지 한 발자국 움직여라. 그 움직임이 백 마디 말을 듣는 것보다 중요하다.’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아, 그래 이제 충분히 들었다. 뭐가 됐든 간에 작게라도 한번 시작해보자’라고 결심했어요. 그 작은 실행이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었어요.  이 작은 실행이 창업의 출발점이 됐죠.


그 당시 아이디어를 고민할 때 팀원은 없으셨어요?


네, 혼자 했어요. 사실 팀을 세팅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사업은 혼자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마치 자영업처럼요. 그냥 제가 영업, 디자인, 그리고 인쇄까지 다 하자라고 생각했었죠. 지금 돌아보면 제가 많이 부족했어요. 그냥 열정만 있었고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었죠. 그래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요즘은 책도 나오고 팀원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가이드가 많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정보도 부족했고 저도 그다지 그런 것들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업이라는 것이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이디어만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었죠.


그리고 사회 경험도 없었던 터라 어떤 아이템이 사업성이 있는지도 잘 몰랐죠. 사실 창업하시는 분들의 대부분이 자신이 다니던 예전 직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을 하잖아요. 이 부분이 요즘에야 공감이 되는 것이, 무슨 일이든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파봐야 뭔가 새로운 것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이렇게 보면 학생 창업이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 이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죠. 사실 제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참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창업을 어떻게 시작해야 한다는 답은 드릴 수 없지만 제 경험에 비춘다면 ‘지금의 생활 혹은 직장의 경험을 최대한 살리고 그 속에서 아이디어를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왜 하필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사업을 시작하셨어요?


대학교에 와보니까 뛰어난 친구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집안 환경도 다들 좋고 고등학교도 좋은 곳을 나왔고, 그런데 저는 부산에서 갓 올라온 학생이었거든요. 그러다 좋은 기회로 (그리고)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다녀왔었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영어를 못해서 그런 것 인지 아시아인이어서 그런 것 인지 무시를 하더라고요. 그 속에서 ‘아 어쩌면 유럽은 내게 맞지 않겠구나' 싶더라고요 그 이후에 기회가 한번 더 있어서 이번에는 중국으로 한번 더 교환학생을 갔어요. 그런데 유럽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중국 친구들이 저를 좋아하더라고요. 그 덕분에 6개월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중국을 좋아하게 됐고, ‘아 여기다’ 싶었어요


그리고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중국을 들여다 보니 미국이 경제적으로 대세이긴 하지만, 얼마 안가 중국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여러 이유들로 중국을 선택했고, 그 후로 중국이라는 시장이 점점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저희가 시작한 사업을 여기까지 확장시킬 수 있었어요.


최근 중국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을 보면  그때의 선택이 좋은 선택이셨네요?


운이 좋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정말. 지인 분이 말씀해주신 건데 사업이라는 것은 결국 '비가 오는 와중에 양동이에 물을 담는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물을 담기 위해선 우선 양동이가 아주 크거나 구멍 없이 튼튼해야 하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양동이를 놓은 곳에 비가 많이 내려야 해요. 저의 경우에 적용해본다면 만약 제가 한국에 오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 오는 '중동인'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렇게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거예요. 앞서 말한 비유에 빗대면 이슬비 정도 내리는 비에 양동이를 둔 셈이죠. 결국 중국 시장을 선택하고 실행한 것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죠.


그 당시에 경쟁사는 없었나요? 그들과 어떤 차별점을 두고 경쟁하셨나요?


저희는 사실 저희 서비스가 최초인 줄 알고 '대박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업체를 설립하고 보니 20개 정도가 이미 시장에 있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세상에 없는 아이디어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그 당시에는 중국인 보다 일본인이 한국을 더 많이 방문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경쟁사들은 우리와는 다르게 일본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들을 주로 진행했죠. 그렇다고 중국인 대상 서비스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고, 2곳의 대기업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땐 망했다 싶었죠.(웃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하나씩 차근히 준비해 나갔어요. 그땐 구성원 모두가 미친 것처럼 새벽 3,4시까지 일을 했어요. 그 방법밖에 우리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그렇게 버티다 보니 시장 상황이 바뀌더라고요. '일본인'이 대부분이었던 관광산업에서 '중국인 관광'이 대세로 떠오르게 된 것이죠. 결국 지금은 그 수가 완전히 반전이 됐어요. 지금은 일본인 관광객의 몇 배 더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으로 들어와요. 결국 이 시장 상황이 저희의 사업을 지속시켜줬죠.


거대한 경쟁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이겨내셨네요?


정말 이 일에 미쳤기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뚫고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기존 경쟁사들 말고도 저희가 이 분야에서 일을 지속하는 것을 보고 주위의 분들이 비슷한 모델로 많이들 도전하셨었어요. 저희도 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죠. 그런데 오래가지 못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차이가 얼마나 이 일에 '미칠 수 있고', ‘내 일’이라고 생각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그냥 시장만 보고 기회만 봐서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죠. '왜 우리만 살아남았냐'는 것은 우리가 잘해서라기보다 '정말 죽을 가오로 했기 때문'이에요.

대표님은 짜이서울을 공동 창업하셨잖아요, 공동창업자분은 어떻게 만나셨는지 궁금한데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혼자 창업 준비를 시작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일을 지속하다 보니 문득 '내가 잘 하고 있나' 걱정이 되더라고요.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대학생 때, 6개월 정도 창업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어요. 그런데 그때 실패했거든요. 그런데 그 이유를 돌이켜 보니  저 혼자 다 하려고 했던 것이 원인이었어요. 누군가에게 일을 맡길 줄도 모르고 팀을 꾸릴 생각을 할 줄 몰랐었어요. 그냥 혼자 하면 되지 라는 생각만 컸던 것이죠.  결국은 일의 진전 없이 실패했어요. 그렇게 경험해보니까 ‘아,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큰 일은 같이 하는 것이구나' 싶었고요. 그래서 팀원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 와중에 공동창업자 이경준 대표님을 만나게 됐죠. 


이경준 대표님을 만난 건 사업을 하기 훨씬 전이었어요. 첫 만남은  2004년도쯤에 여행을 하다가 이루어졌어요. 제가 당시 친구들과 여행하면서 한인 민박집에 머물 때였는데, 그때 그곳에 있던 이경준 대표님과 이야기 나눠보니 고향도 같고 고등학교 선배시더라고요. 같이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서 이것저것 대화를 많이 했는데,  '이 사람  괜찮' 싶었죠. 이때가 인연이 돼서 2011년까지 쭉 인연을 이어 왔어요. 사실 중간에 제가 군대도 다녀오고, 대표님도 창업을 시도하고 PR회사에 취업도 하면서 연락이 잘 안되던 시기도 있었죠.  그렇게 각자의 길을 걸어갔어요. 그러다 하루는 제가 창업 초기 모델을 가지고 관광공사로 아이디어를 발표하러 간 적이 있었어요. 발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 대표님이 그 근처에 사신다는 것을 알고 한번 보자고 연락을 드렸었죠. 그때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근황에 대해 나누다가 왜 오늘 이곳에 오게 됐는지로 화제가 전환됐어요. 그래서 창업 아이템이 있는데 그 아이템을 발표하러 관광공사에 왔다고 설명드렸었죠. 근데 이경준 대표님이 제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더니 '재영아, 같이  해볼래?'라고 말해주시더라고요. 마침 저도 함께할 분이 있으면 더 힘이 나겠다 싶어서 그때 함께 하게 됐죠.


혼자 하는 창업도 힘들지만, 공동창업 역시 쉽지 않다고 하는데 시행착오는 없으셨나요?


초반에는 조금 어려웠어요. 부부도 싸우고 삐지고 하는데 남자 둘이 부대끼며 하는 일에 쉽거나 항상 웃을 수만은 없잖아요(웃음). 한 번은 공동대표님과 의견 다툼을 벌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인터넷에서 한 분이 쓰신 글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래서 읽어 봤는데 동업에 관한 글 이었어요. 그 글을 보니 '동업자를 온전히 믿지 못할 것 같다면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말아라, 동업을 할 것이라면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신뢰하면서 시작해라'라고 쓰여있더라고요. 그런 각오가 없다면 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런데 어린 마음에 그 글이 마음에 확 와 닿아 이경준 대표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기로 했죠(웃음). 그렇다고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에요. 여전히 싸우지만 초반처럼 감정적으로 싸우지 않고 논리에 근거한, 그리고 회사 발전에 필요한 부분을 위해 건강하게 싸워요.  

 

주변의 많은 분들이 공동창업을 권하지 않는게 사실이지만, 투철한 신뢰관계를 기반으로한 공동창업은 올바른 시너지가 나면 여러 측면에서 혼자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이점이 있어요. 저처럼 이 기업에 진정으로 힘을 쓰는 사람이 두 명인 것이니까요.


그럼 다시 중국에 대한 얘기로 돌아올게요. 중국 진출을 위한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사실 창업 초반에는 둘 다 중국어에 전무했어요. 중국에서 교환학생을 6개월 동안 보냈다곤 하지만 대부분의 수업이 영어라 중국어는 잘 못했고 이경준 대표님도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지금도 대표님이랑 같이 '그때 우리가 중국 관련 사업을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됐지'라고 우스갯소리로 해요. 그런데 그런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중국시장'이니까요. 그만큼 시장이 크니까 기회가 다양하고 불가능한 일도 가능한 시장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사업을 진행하면서 대표가 중국어를 하지 못하다 보니 사업의 확장과 그 속도가 뭔가 늦어지더라고요. 점점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고요. 그래서 '짜이서울'의 전반적인 운영과 영업은 이경준 대표님에게 맡기기로 하고 저는 중국 현지로 직접 가서 현지 시장 상황을 보고 중국어를 배우기로 결정했어요. 이 결정에는 그 전에 출장을 하면서  ‘중국 관련 일을 한다면 꼭 중국 현지에 머물러 있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작용하기도 했죠. 


그래서 방 빼고 돈을 모아 중국 지사가 생기기도 전에 먼저 중국으로 넘어왔어요. 도착해서 한 5개월 정도는 베이징에서 집 알아보고, 중국어 공부하며 중국 진출을 위한 투자 유치도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 당시 제 중국어 선생님이 7명이었어요. 하루에 7시간씩 중국어 공부를 했죠. 그런데도 잘 안되다가 6개월 정도 지나니까 중국어가 들리더라고요. 그 덕분에 지금은 라디오도 들리고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을 정도로 소통이 가능해졌어요.


사실 이렇게 중국으로 혈연단신 넘어온 것이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멋져 보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결코 현명한 행동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대책 없이 온 것이기도 하고요. 똑똑한 분들은 철저히 준비하고 들어오셨겠죠. 그런데 저는 준비 없이 마음만 갖고 넘어왔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다른 분들은 최소한의 준비라도 해놓은 후에 현지에 오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당시 중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처음에 베이징에 왔을 때는 공기도 안 좋아서 한 달 만에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목이 막혀서. 그리고 밥도 안 맞고 아는 사람도 없으니까 죽겠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하루하루 눈을  부릅뜨고 살았어요. 항상 긴장하면서 살았죠. 그래서 집에 오면 그냥 잠만 잤던 것 같아요. 그렇게 베이징 생활을 시작했어요. 사실 상하이로 넘어온 지금도 여전히 힘들어요. 중국어로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중국어로 업무 보고서를 쓰고 법인을 세우고, 계약서를 쓰니까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조심스러웠어요. 모든 게 처음이고 지금도 모두 새로운 경험의 반복이에요. 그래서 중국에서 하고 있는 일을 '제 2 의창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것이 중국어가 조금씩 들리고 비즈니스적 업무들도 이제 조금이나마 익숙해지고 수월해진 것 같아요.

 

사실 중국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외롭다'거나  '힘들다'라고 생각할 시간조차 없이  정신없이 바쁘게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그런 감정에 휩쓸려 고민하다가는 당장 제 생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버틸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의 상황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 사실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해요. 제 나이대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또래가 많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중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기업을 세팅하고 경험해 나가는 것을 누가 경험해봤겠어요. 나중에 정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이 순간에 감사해 하며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제가 중국에서 겪는 일들 경험을 토대로 회사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며 하루하루 해나가고 있고요. 그래서 지금은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 상태예요. 


중국시장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요? 


이곳에 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같은 동양권의 나라이지만 한국과 많이 달라요. 처음에 저는 중국을 같은 동양권의 국가라서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차원이 다른 곳이더라고요. 우선 시장의 크기가 현저히 차이가 나요. 그러다 보니 한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이 갖는 파이의 크기가 한국에 비교했을 때 월등히 커요. 그만큼 한 분야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과가 다른 것이죠. 그렇지만 그 성과 만큼 실질적으로 한국 시장에서 한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에 적어도 '10배 이상'이  투입되어야 이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중국의 시장이 크다 보니 돈이 많이 들어오게 돼요. 돈이 많이 들어 오기 때문에 사람이 몰리면서 시장 활성화에 가속도가 붙는 것이죠. 가속도가 붙으니 점점 발전과 혁신이 나오고요. 이 덕분에 예전에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서비스를 베껴와서 중국 시장에 적용해 개발했다면, 이제는 중국 자체 내에서 개발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들을 제작하고 있어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중국이 한국의 공장이지만 나중에는 한국이 중국의 공장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죠. 그래서 더더욱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장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시대적 분위기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죠. 


이제는 중국 시장을 세계적이라고  얘기하는데, 반대로 중국인들은 한국 시장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는 자신만만했어요. 한국에서 이미 경험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중국 내에서 만난 중국인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한국을 중국의 '한 성(省)' 정도 되지 않냐고 농담처럼 말하더라고요. 사실 이런 말을 하기에 조금 조심스럽지만 중국인들은 한국을 그렇게 주목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시장규모로 봤을 때 주목할만한 시장은 아닌 것이죠. 이와 더불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쿠폰북을 만들려고 학교 내에 있는 교환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적이 있어요. 그 친구들 덕분에 중국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었죠. 그런데 그와 동시에 알 수 있었던 사실이, 중국인들이 한국을 오는 것은 쇼핑이나 미용을 하고 싶어서 오는 것도 있지만, 가장 가까운 외국이 한국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크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인들이 해외 여행을 가고 싶을 때, 일본은 비자가 잘 안 나오고 동남아는 휴양하러 많이 가고, 쇼핑이나 뭔가 구경하기 위해서는 한국으로 많이 간다고들 하더라고요. 사실 현실적으로 한국이 낭만적이고 발전이 돼서 온다기 보다 가까운 해외의 나라여서 오는 것이 크다고들 해요.


이런 면에서 볼 때 중국 시장 내에서의 저의 역할은 중국인 직원들이 더 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에요. 그리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조율을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죠. 중국 시장 내에서는 한국인으로서 시장에 접근하는 것보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중국인들의 관점에서 다가가는 것이 더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 고집과 방향을 최소화하고 중국인 직원들의 말을 최대한 경청하려고 하죠.


마지막으로 한국에 있는 예비창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사실 저도 아직 부족해서 이런 말 드리기가 부끄럽네요(웃음). 그나마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많이 부족한 '저도 했는데 여러분들이 못할 건 없다'라는 말을 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실패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한번 시작해보는 것이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거예요. 지금이니까 실패할 수 있는 것이고요. 마지막으로 기왕 하시는 거 '왜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실 이 부분은 철학적이고 고리타분한 고민 일수도 있지만 이 부분이 제대로 정립이 돼 있다면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큰 원동력이 될 거예요. 그리고 중국 시장에 관해서는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철저히 중국에 현지화’가  되어야 해요.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문화를 습득하고 중국인을 이해해야 해요. 그게 첫 출발점이 될 것이에요.  



사실 대표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중국보다 한국이 훨씬 발전했고 한국인이 보다 문화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이 너무 어린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착각이었다.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접한 중국은 말 그대로 거대했고, 그 속에 있는 중국인들의 사고는 깨어있었다. 그들은 변화에 민감했고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시각을 갖게 된 첫 시발점을 장재영 대표님이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대표님을 만나고 난 후 새삼 이 거대한 나라에 이웃한 우리나라, 그리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어떤 가치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고민이 들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이 거대한 국가가 만들어내는 흐름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님 말씀처럼 더 깨어있기 위해  우리는 더 다분히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by. 피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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