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석 Feb 29. 2020

시간에 대해 문득

시작과 끝이 있다

어릴적에는 시간의 끝이 있다는 사실이

퍽이나 서운했다.


크리스마 이브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한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문득 홀로


'이 순간도 곧 끝이 날텐데'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을 때

행복에 겨워 뭉클함이 가득차다가도

문득


'이 관계에도 끝이 있겠지'


이렇게 행복이 마음을 가득 채우다가도

내 마음의 한 구석에는

시간의 끝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한 사실에 다가가는 것을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더 한껏 그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차는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방어적인 감정을 남겨두었다.


그래야 힘들지 않으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한살 한살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애써 너무

소중하게도 하찮게도 여기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지나보내면서


문득 어느 순간에는

끝이 있음에 감사한 시간들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고난을 마주했을 때

그 시기의 끝이 있다는 것은

곧 희망의 또 다른 말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어려움을 느꼈을 때

이 시간의 끝이 있다는 사실은

곧 안도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삶의 많은 순간들의

끝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아니, 순간들이 의미를 갖는다기보다

그 순간을 살아내는 나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삶의 많은 순간들은

내 능력이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속절없이 흘러가버린다.


그래서 사실 대부분의 시간들은

내가 아쉬움이나 즐거움을 느낄 새도 없이

찰나처럼 지나가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마음에 그 어느때보다

강하게 아쉬움으로, 감사함으로

느껴지는 시간들이 있다.


그러나 그 감정들은

시간에 끝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끝이라는 사실 속에서

내가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는

내 주관적 감정일 뿐이다.  


시간이라는 객관적 대상은

어느 순간엔가 시작되었고,

하나의 일직선마냥 묵묵히,  

독립적으로 홀로 그 길을 쭉 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고고한 시간이 만들어낸

선 위를, 사람들은 한 명 한 명  

각기 다른 시작점을 가지고

하나씩 채워간다.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객체로

독립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시간으로 인해 종속적 관계를 시작한다.

시간이 곧 사람 간의 관계를 잇고 맺는  

매개체인 마냥

우리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갖는

시간에는  

모두 시작과 끝이 있다.


누구에나 공평하게

주어졌듯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끝이 있다.


그래,

인생의 모든 순간들, 하나 하나에는

모두 시작과 끝이 있다.


순간이란 곧 시간이고

시간은 무한한듯이 보이지만

분명 끝이 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있듯이

1개월에도 1년에도 10년에도

인생에도 시작과 끝이 있다.  


어쩌면 이 사실은 조금은 삭막한

우리네의 인생을

따뜻함으로 채워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주어진 환경들이 달라

근본적으로   

이어질 수 없는 우리가


시간이라는 공통 분모로

유일한 동질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참 매력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히 고마운 대상이다.


그러니

조금은 담담해지자.

아쉽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의미가 있기도

의미가 없기도 하지만


그저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에

충실하게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에

감사하면서

 

한껏 그 순간들을 느껴보자.


결국 이 시간들에는 좋든 안 좋든


끝이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특별함과 평범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