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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석 May 29. 2020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와 포퓰리즘 (2)

야스차 뭉크, 위험한 민주주의를 읽고

위험한 민주주의 PartⅢ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와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세 번째 파트에서는 본격적으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구체적인 방안을 소개한다. 야스차 뭉크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똑바로 마주서야 하며 심각한 정치적 위기 속에서 자유를 수호하는 다양한 형태의 중단 없는 집회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자유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프란체스카 폴레타의 책을 인용해 주장하였다.


저자는 우리가 앞선 두 파트에서 보았던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와 함께 찾아온 포퓰리스트를 정치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항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첫째, 단결의 중요성이다. 포퓰리스트를 앞에 두고 정치적 결사체 간의 분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정치인들은 대중의 언어로 현상을 설명하고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아야 한다. 세 번째, 당장 포퓰리스트를 깎아내리기보다 대중에게 긍정적인 메시지 즉, 실현 가능한 공약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이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중의 인식을 바꿀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유권자들의 생각과 고민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과 연구 결과를 지속적으로 도출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기본 전제들을 살펴보았다. 이후로 저자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문제들(다인종 국가 체제, 경제 침체,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을 극복하는 방안에 대해 서술한다. 첫 번째는 ‘민족주의 길들이기’이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초(超) 국가적 ‘세계화’의 분위기가 그 어느 시대보다 강하게 일어났지만, 여전히 한 국가를 구성하는 절대 다수 인종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볼 수 있다. 여러 경제 위기를 겪은 이후로는 이 민족주의의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부정적인 요소로는 인종주의와 같은 차별이 이민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다시금 시작되고 있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자세로 민족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을 지양하는 것을 주장한다. 오히려 민족주의 자체를 배척하고 인종주의라는 고유의 인간적 특성을 ‘색맹’과 같이 외면하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인종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수정하는 노력하거나 보편적 원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보편적 원칙들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도록 싸우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포용적 민족주의’의 형태를 통해 다 민족적 민주주의 전통의 토대 위에서 우리를 묶는 유대 관계가 인종과 종교를 뛰어넘을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 방안은 ‘경제 뜯어고치기’다. 대부분의 포퓰리스트는 국민들로 하여금 과거의 풍족했던 경제 시절 혹은 제국주의적 풍요를 누렸던 강대국으로서의 향수(鄕愁)를 자극하는 문구를 만든다. 이는 경제 불황과 맞물려 유권자들로 하여금 단순하지만 해결책이 명확한 것처럼 보이는 포퓰리스트에게 표를 던지는 사태를 발생시켰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경제 불황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포퓰리스트가 득세하는 국가들을 살펴보면 과거 부모 세대와 현재 자식 세대의 ‘미래’가 다르다는 것도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결국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풍요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가 안전하게 ‘보장’될 것이라는 안정감을 원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포퓰리스트와 대조되게 건강한 ‘미래’의 보장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 깊었다.


국민들이 기성 정치인이 아닌 포퓰리스트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긴 원인은 기성 정치인의 실패에 있다. 저자는 구체적인 예로 미국의 정책이 부요한 사람들을 위한 방향으로 개정되어 왔으며 사회의 취약 계층을 보호하는 조항들은 삭제하는 기성 정치인에 국민적 실망이 계속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는 단순히 기성 정치인만의 잘못은 아니다. 국제 정세, 더불어 기술 발전과 국제 무역이라는 현대의 특성들이 경제/사회적 변화를 초래했다는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전제로 거대한 경제의 흐름의 변화 속에서 산출되는 이익의 공평한 분배를 주장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 첫째 세금 정책을 뜯어 고칠 것을 주장한다.(고소득자와 수익성이 높은 기업에 대한 실효 세율을 높이는 것 등) 이를 위해서는 한 국가만의 노력이 아닌 국제적으로 조세 피난처를 줄이고 국가 간의 공통된 대응과 원칙이 필요하다. 둘째, 복지국가의 기본 요소를 복원해 사회 공공 기반 시설, 교육과 같은 공공 지출이 정상화되도록 지출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이 외에도 주택 공급 개선 및 생산성 증대, 교육 체계 개선 등의 구체적 실행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세 번째는 ‘시민들의 신뢰 되찾기’다. 시민들의 신뢰가 무너지게 된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부상은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소셜 미디어는 기존 미디어와 다른 정보 전달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팩트 체크’의 강제성이 없다. 저자는 이 사실로 인해 자유민주주의에 상당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 이 분야에 조치를 취하면 독재 정권의 검열과 비슷한 형태가 될 것을 우려한 저자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먼저, 정부의 규제가 아닌 소셜 미디어 기업들 자체의 ‘자기 검열 모델’ 형성이다. 기존의 매체들이 엄격한 형태의 정부 규제를 피하려고 취해왔던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다.


다음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 자체적으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시물을 장려하고 거짓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는 일부 제한을 두는 형태의 자체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다. 덧붙여 혐호 발언을 생성하는 일부 봇(Robot)의 활동을 제한한다면 상당 수준의 정보 자정 작용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정치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찾기 위한 방안은 앞선 미디어 매체만의 노력만으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서로 공모하는 것을 차단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시민들이 상황을 추적할 수 있는 여러 안전장치의 마련 역시 매우 중요하다. 물론 그 안전장치는 정치인들 스스로의 신뢰 회복을 위한 투명한 정치 활동과 공민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의 재건(再建)이 전제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일독한 위험한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공부할 수 있는 최고의 교과서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과거에 번영에 초점 맞춰진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현재 우리가 현실에서 겪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의 순간에 초점 맞춘 책이라는 점에서 더 인상 깊었다.


야스차 뭉크의 말처럼 자유민주주의는 가만히 둔 채로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노력과 보다 세심한 관점에서의 상황 분석이 필요하다. 사회/경제 등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많은 환경적인 요소들이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시대이다. 더불어 시기적으로 국민이 정치에 신뢰를 잃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실패들이 많이 목격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서 우리가 그동안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자유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시민은 건강하게 단결하고 정치인은 사익이 아닌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하며 정부는 보다 공정한 시스템으로 국가가 운영되도록 법과 규제를 운영해야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의 후손에게도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의 여러 가치들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야스차 뭉크가 제시한 해결책들이 구체적인 제도와 정책적 어젠다를 제시한 것이 아니라 국민 정서와 민주주의의 본질/가치에 치중한 해결책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기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넥스트 모델이 아닌 현재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의 완결성에 대한 전제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 또 다른 한계로도 느껴졌다. 실제로 책의 말미에도 저자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이 진정으로 이루어져 자유민주주의의 융성으로 지루한 평화를 경험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물론 야스차 뭉크의 주장과 해결책이 결국 답이 없는 이 현실과 문제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에 더 집중해 현 상황을 타개하자는 의미 일견 동의가 되기도 한다. 원래 문제가 복잡할 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하니까. 그리고 어쩌면 이 체제가 인간에게 주어진 최적의 체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앞으로 겪게될 미래 사회 속에서 우리뿐 아니라 미래 세대가 경험할 복잡한 환경 속에서 과연 지금의 체제와 형태가 아무 문제 없이 지속되고 적용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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