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것
첫 출근.
사무실은 강남역 인근의 언덕배기 위에 있는 3층짜리 주택이었다.
꼭 시티콤에 나오는 부잣집 같이 생긴 사옥이었는데, 오후가 되면 고양이들이 몇 마리 놀다가는 고즈넉함이 있는 곳이었다.
나의 역할은 용역을 따내기 위한 기획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사수는 당연하고, 인수인계나 실무경험도 없었다.
맨몸으로 무인도에 떨궈진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었지만,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신입은 유전학적으로 인간보다는 구황작물, 이를 테면 말하는 감자에 가깝다. 말하는 감자가 의자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니, 회사의 입장도 난처할 것이다.
그러니 서로 쌤쌤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이곳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봤다.
일이 사소한지, 효율적인지는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기는 법도 모르는 아이가 뛸 수 있을 리 없다.
일단 기는 법부터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동력과 태도를 익히는 것이 좋다.
20분씩 일찍 출근하여 청소를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환기를 했다.
고양이가 밖에서 낙엽더미를 뒤질 때, 나는 컴퓨터 파일을 뒤졌다.
지난 사업들의 기획서, 보고서를 훑어보며 전체적인 업무 구조를 파악하고,
일을 하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유튜브 강의를 들으며 그때그때 막히는 부분을 해결했다.
고된 과정이었지만 값진 순간들이었다.
상황을 결정하는 것은 직면한 문제가 아닌, 대처하는 사람의 태도라는 것.
이것을 알게 되어 이전보다 나 자신을 더 담백하고,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