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부터 바뀌어야 한다 4-
대한민국에는 청년문제 외에도 다양한 문제가 산재해 있다. 취업, 주거 문제만 하더라도 비단 청년만의 문제는 아니다. 40, 50대 중장년층에서도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치킨집 사장님이 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집을 마련하지 못해 매달 내야 하는 높은 월세에 시달리며 매달 월급을 파도에 쓸려나가는 모래성 마냥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세대 간에 상대적으로 체감하는 삶의 어려움이나, 살아갔던 시대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문제가 없는 세대는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청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봐야 하는 걸까.
첫 번째는 글을 쓰는 필자가 청년세대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관련 문제에 더 많은 관심과 공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청년층의 인구비율에 있다. 통계청의 2018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51,629,512명의 국민 중 20세 이상 35세 미만의 인구는 10,344,721명으로 약 20%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필자는 주로 90년생들의 시선을 기준으로 글을 쓰려 하지만 어디까지가 청년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35세 미만의 인구의 대다수가 사회 초년생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글에서 20세 이상 35세 미만을 청년이라고 간주하는 것에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통계에서 나타나다시피 대한민국 사회에서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결코 낮지 않다.
마지막으로 청년층의 역동성에 주목하고 싶다. 예로부터 청년층은 사회의 변혁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4.19 혁명, 6월 민주항쟁 등 대한민국의 근대사에서 청년세대는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민주화를 이루어낸 과업의 중심에 있었다. 사회 변혁에 대한 청년세대의 역할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의 6.8 혁명처럼 다른 사회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해 왔다. 청년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비교적 사회적 이해관계, 생계 등 얽매인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변혁의 필요성에 대해 더욱 선명하고 분명한 요구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연의 생태계가 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정작용이 필요하듯이, 사회 또한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 자정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자라나는 청년세대의 가치관은 많은 순간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충돌하고는 한다. 비록 그 과정에서 세대 분열이나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기존 사회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도 한다. 청년세대는 사회라는 생태계 안에서 새로운 담론의 생성과 이를 실행할 동력으로써 자정작용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사회가 건강한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해당 사회에 속한 청년세대를 잘 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몇몇 기성세대에게는 청년세대의 역할이 자정작용은커녕 단순한 파괴활동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젊은것들은 옛것에 대한 존중도 없고, 핸드폰만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청년세대로서 우리가 기성세대와 가지는 문화, 정치 등에 있어서의 차이점이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점을 배제할 수 없는데 이를테면 동물권, 여성인권 등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그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은 가정에 속박된 존재였다. 가정을 위해 봉사하고, 그렇게 어머니가 되는 것이 당연했다. 사회는 여성의 헌신에 대해 ‘왜’를 묻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빼앗긴 사회진출의 기회, 자아실현의 욕구는 사회적으로 대변되지 않았다. 그리고 꽤나 최근까지 그것이 당연한 사회였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여권신장의 흐름에 따라 지금까지 고려되지 못했던 여성들의 처우가 예전에 비해 상당 부분 개선되는 중에 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로운 청년세대가 관련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시작하고, 이를 사회의 장에서 담론화 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청년세대가 초래하는 변화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는 기성세대에게 우리를 태풍과 같은 것이라 생각해 달라 말하고 싶다. 태풍은 필연적으로 파괴활동을 수반한다. 하지만 동시에 오염된 바다와 대기를 정화한다. 기성세대에게 그러니 그냥 청년세대가 가져오는 변화를 받아들이라고만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기성세대 또한 우리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쏟아부은 땀과 노력이 있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막 땀을 흘려야 할 청년세대 입장에서 기성세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와의 소통에서 그들이 흘린 땀과 노력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하고, 설령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최소한 무례하지는 말아야 한다.
청년세대가 만드는 변화 또한 우리의 경계를 넘어서 다른 세대들과의 소통의 시도가 있을 때야 비로써 진정한 변화로써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변화는 끽해봐야 하위문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왜 우리가 청년에 주목해야 하는가에서 시작된 논의가 핵심에서 조금 빗나간 느낌이 들지만, 해당 논의에 있어서 기성세대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언급하게 되었다. 필자가 ‘우리가 바로 90년생입니다’ 시리즈를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청년의 현실에 대한 우리의 목소리다. 하지만 이것이 청년세대만을 위한 목소리이기만을 바라지는 않았다.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세대의 노력과 함께 다른 세대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변화라는 것은 독선적인 외침이 아닌 구성원 간의 소통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의 글에는 기성세대에 대한 배려 또한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관련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로써 ‘우리가 바로 90년생입니다’의 도입부를 마쳤다. 다음 글들부터는 ‘교육’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청년문제 논의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글은 필자가 해당 주제를 선정한 이유와 구체적인 문제점들, 이를 어떤 방향성으로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이야기로 꾸려나갈 예정이다. 글은 통계, 기사와 같은 자료들 보다는 문제의식을 풀어나가는 관점에 역점을 두려고 한다. 필자와 같은 현실을 살아 나가는 청년세대나 다가오는 세대에 관심을 가진 기성세대에게는 분명 좋은 문제의식과 사회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