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남'이 아닌 '우리'가 말해야 할 때
만 나이 26세, 무직, 대학 졸업유예, 미필. 나는 소위 말하는 90년생이다. 정확히 말하면 93년생. 2019년은 90년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이다. ‘90년생이 온다’라는 도서가 히트를 쳤으며 그 열기는 아직까지 가시지 않고 있다. 18년 국가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인구대비 90년생의 인구비율은 약 13.56%이른다. 90년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거웠던 것은 90년대 초반생을 시작으로 90년생이 본격적인 경제활동인구로 편입됨에 따라 기업들이 우리의 소비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이런 기업의 니즈에 맞추기 위해 소비, 문화, 환경 등에 기초한 90년생에 대한 분석과 설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 전 ‘90년생이 온다’를 읽게 되었다. 80년생 작가의 시선을 통해 기성세대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였다. 책을 읽으며 전반적으로 조사를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90년생을 핵심키워드로 설명한 것에 대해서 당사자로써 나름 정확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이질감을 느꼈다.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객관적인 분석으로 기술하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공룡들이 자신들의 화석을 가지고 이리저리 자신들의 모습을 유추하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면 아마도 같은 감정이지 않을까. 이질감이 들었던 또 다른 이유는 ‘90년생이 온다’가 우리에 대한 분석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우리’의 목소리는 아니라는데 있다.
“90년생을 설명하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정작 90년대생인 우리들의 목소리는 빠져있는 걸까?”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90년생에 대한 다른 누군가의 분석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목소리는 사회에 대한 우리의 ‘지엄한 요구’를 말한다. 내가 구태여 ‘지엄’하다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그 만큼 우리의 요구가 절박하고, 사회적 필요성도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90년생인 우리는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소위 말하는 ‘청년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대표적인 문제들로는 교육, 취업, 집 마련 등을 들 수 있겠다. 한국의 고용시장은 IMF,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정규직일자리는 줄이고 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해 내고 있다. 이에 따라 청년의 일자리 또한 동시에 줄어들면서 많은 청년들이 취업난을 겪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동산 가격은 자꾸 오르기만 하니 청년들은 아주 죽을 맛이다.
사회적으로 극한에 환경에 몰린 우리는 결국 한국에 대한 최종 진단을 내리기에 이렀다. ‘헬조선’ 지옥으로 변해버린 한국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우리들의 분노와 절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청년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삼포세대’, ‘오포세대’ 등의 단어로 문제제기가 이어져 오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문제제기가 되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봤을 때 우리의 처지가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언론은 심심치 않게 우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공시족이 늘고 있고, 알바로 삶을 연명하고 블라~블라~. 청년일자리 정책, 보금자리 정책 등 우리에 대한 정책적인 시도들도 이어지고 있지만 무엇 하나 충분한 것은 없다. 청년문제가 몇 년째 해결되지 못하는 것의 핵심은 우리의 문제가 그저 수많은 사회 문제 중 하나로 다루어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삶의 전체일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이런 젠장!)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첫째는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처럼 표심 잡기용 엉터리 청년정책이 난무하고 사회적 기회는 증발해버린 ‘헬조선’에서 영락없이 지옥주민의 신세를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정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우리의 생존권 보다는 부동산 소유자과 기업들의 이미 부른 배를 더욱 불려줄 것에만 지대한 관심을 쏟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90년생에 대한 분석들은 대부분 우리의 문화적 특성을 파악하는 선에서 그치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도 ‘90년생이 온다’의 부제는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이다. 이와 같은 경우 기업의 소비자 조사용 자료로는 사용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90년생인 우리에게는 아무 필요성이 없는 자료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를 대변하는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닌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다.
글쓴이는 20대에 들어서부터 나름 성실한 삶을 살아왔다. 약 18개에 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3번의 수능을 봤으며, 3년간의 학생회, 회장 활동을 했다. 이런 다양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스팩은 하나 없고, 한술 더 떠서 나이는 먹었는데 군대마저 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집에 대단한 재력이 있어서 믿는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니 할 말은 다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런 나도 취업, 집 마련, 결혼 등을 위시한 청년문제에 대해서는 빠질 것 하나 없는 팔방미인이라 하겠다. 그 어느 하나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 문제가 없으니 말이다.(엄마 미안해.)
20대에 들어서 했던 다양한 활동들이 취직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망정 무의미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거기서 흘리는 90년대생들이 흘리는 피땀을 이해할 수 있었고, 학생회 회장 경험을 통해서는 90년생들이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과 사고구조를 거의 날 것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그렇다보니 스스로가 90년생임과 동시에 우리들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글쓴이는 취업, 집 마련, 결혼 등 사회와 경제 전반에 걸친 청년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누군가의 힘도 아닌, 바로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다. 문제제기를 하기에 앞서 우리부터가 각성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글은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인 동시에 지금까지 문제의 해결에 대해 적극적이지 못했던 우리들 스스로에 대한 비판이기도 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