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불편함보다는 온전히 자식들의 결정이었다. 엄마는 백내장의 어려움을 호소한 적도 없으시다. 얼마 전에 정말 오랜만에 종합건강검진을 해드리다가 눈검사에서 백내장이라는 소견을 들었다.
"엄마 세상이 뿌옇게 보여요?" 여러 번 물어봐도 엄마는 자꾸만 괜찮다고 하셨다. 검진 결과를 보면 결코 괜찮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백내장이 초기도 아닌데 이 정도면 답답하셨을 텐데 인지하지 못하고 사셨다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던 것인지 뭔가 안타까웠다.
백내장 수술 3일 전부터는 안약 3가지를 넣어야 한다. 아침, 점심, 저녁, 취침 전까지 잘 챙겨서 넣어줘야 한다. 그중 한 가지는 아침, 저녁만 넣으면 된다. 만나서 충분히 설명을 여러 번 해드리고 "혼자 계시니까 잊지 마시고 이대로 잘 넣으시면 되세요" 하면서 신신당부를 했다. 마주한 자리에서는 다 아시는 듯하셨다. 그러나 그다음 날 걸려온 전화에서는 엄마의 머릿속은 언제 들었냐는 듯 안약의 사용설명서는 뒤죽박죽 엉켜버리셨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어렵게 여기셨다. 얼핏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3가지뿐인 안약인데 다시금 설명하는 내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다시금 설명을 해드리는데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에는 답답함과 짜증이 섞였고 말의 억양도 살짝 높아지기도 했다. 엄마에게 내 감정이 전달되고 있었다. 어쨌든 인내를 하면서 최대한 친절하게 잘 설명을 해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문득 아들과 내가 가끔 대화하는 몇 차례의 상황들이 생각났다. 내가 이해를 잘 못할 때면 아들이 설명을 해주다가 답답해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럴 때마다 그 순간의 상황과 아들의 표정으로 나는 조금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아들 입장에서는 엄마니까 격식을 차릴 필요도 없고 표정관리를 할 필요도 없으니 답답하면 답답한 대로 편하게 엄마를 대했을 테지만 부모입장에서는 한편으로 답답한 티 내지 않고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는 없나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던 적이 있다. 원래는 가족끼리 더 친절해야 하는데 참으로 보면 그렇지 못한 것이 보통적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다. 다음에 또 그와 같은 상황이 생기면 "아들 엄마가 이해가 안 되는데 조금 더 천천히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는 없을까?" 하면서 웃어 보여야겠다고 말이다. 정색하지 않고 내가 먼저 더 친절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볼 생각이다.
그때의 내 기분을 되짚어 보면서 엄마에게 다시금 전화를 걸어서 설명해 드렸다. 그리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설명을 해드렸고 무한반복을 하더라도 짜증을 내지 말자는 생각까지도 했다.
'나도 여든을 넘는 나이가 되면 그럴까.'
미리부터 슬쩍 겁도 났다. 내가 그 나이가 되어서 무언가를 이해하는 인지능력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 없기에 그렇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 앞에서 또 한편으로 겸허해졌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자식을 통해서 다시금 내가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