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지는 드라마 밤샘 촬영. 숨 막히는 폭염에 밤 촬영이 되려 다행이다 싶다가도 낮밤이 일주일 넘게 뒤바뀌니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다음 주 후반 즈음부터는 기온이 조금씩 내려간다하니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되겠다 싶다. 올림픽 주요 경기가 새벽에 펼쳐지니 덩달아 가족들의 낮밤도 내 뒤바뀐 일정과 비슷해진다. 방학마저 아니었으면 뒤바뀐 시차에 아이들 얼굴 보기도 힘들었을 텐데, 늦은 새벽에 에어컨 바람 쐬며 응원을 이유로 옹기종기 모일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은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오늘길에 근심 한 덩이를 지니고 왔다. 촬영과 관련된 작은 이슈가 하나 생겼는데 문제 자체보다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집에 들어온 뒤에도 생각이 쉬이 떠나질 않는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괜히 못다 읽은 책을 펼쳐본다. 체조와 유도 단체전 응원에 열중인 가족들 뒤에서 꿋꿋이 남은 페이지들을 읽어간다. 아직도 그 책을 다 안 읽었냐는 아내의 말에 오기가 생겼나보다. 응원 반, 독서 반. 그렇게 두어 달 만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은)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中>
오늘 지니고 온 근심을 떨치려면 그 무게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테다. 사실 내 근심은 작가가 겪고 말하는 악운과 재앙에는 티끌만큼도 되지 않는 사소한 일임에 분명하다. 타인의 아픔에 견주어 생각하는 게 속물 같기도 이기적이기도 하다. 에어컨 냉방이 선풍기 바람에 실려 때때로 추위가 느껴진다. 거실 바닥에 캠핑용 에어매트를 깔고 아내와 두 딸 그리고 나, 다 같이 취침준비를 한다. 괜히 중학생 큰 딸의 허리춤에 머리를 덴다. 따뜻한 온기. 같은 자세로 조금 더 있어본다. 부대낄 가족이 있음에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2024.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