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과 아내가 코로나 확진되자 소식을 들은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몸도 안 좋고 입맛도 없을 테니 먹을 것을 좀 가져다주겠다고 하신다. 우리 집과 부모님이 사는 집은 지하철 역 수로 세 정거장. 차로는 10분이면 닿는 멀지 않은 곳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엄마는 종종 우리 집 까지 오셔서 잠시 쉬었다 가기도 하고 식사도 하고 가셨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부터는 오늘처럼 볼일이 있어도 좀처럼 집까지 오시질 않는다. 아이들 좀 보고 가라고 해도 극구 사양하신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여느 때처럼 집 근처 지하철역 정해진 출구에서 '접선'을 하기로 하고 차를 끌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2주 전쯤, 내가 도움을 드려야 할 다른 볼일이 있어 오늘과 동일한 장소에서 보기로 한 적이 있다. 늘 만나는 지하철 7번 출구는 매우 혼잡해서 오랫동안 차를 정차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늘 엄마가 지하철 역에 도착해서 출구로 올라오실 때쯤 차를 몰아 타이밍을 맞추곤 한다. 그날은 좀 상황이 달랐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연락도 없이 온 것이다. 혼자 길을 헤매다 도저히 못 찾겠다며 뒤늦게 나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마침 집에 있던 나는 위치를 확인하고 서둘러 차를 몰아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5분도 안 되는 거리.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 시끄러워서 벨 소리를 못 들으시는 건지 전화가 안 터지는 건지 불분명했다. 잠시도 정차하기 힘든 곳이라 지하철 역 주변 블록을 서너 바퀴 돌았다. 한참만에 전화 연결이 되었고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은 그날과는 다르다. 여느 때처럼 7번 출구에서 만나면 되는 상황이지만, 불과 2주 전에 힘겨웠던 기억이 있어 이번엔 확실하게 확실하게 통화를 마치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교차로를 지나 우회전을 하니 멀리 엄마의 모습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음식이 든 검은색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이에서 신호를 줄 아들의 차를 찾고 있는 듯 사방을 둘러보고 계신다. 가까이 다가가 차를 멈추고 창문을 내린다. 반갑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인사도 나눌 새도 없이 창문 너머로 검은 비닐봉지를 건네받는다. 그리고 잠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뒤에서 경적을 울리는 차도 없는데 마음이 서로 마음이 급하다. 그렇게 30초 정도 지났을까. 서로 조심히 들어가라며 황급히 인사를 나눈 후 창문을 닫는다.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는 동안 창 밖으로 엄마를 본다. 지하철 역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멀어지는 내 차를 보고 계신다. 도로 한쪽으로 차를 다시 세우고 창문을 다시 내린다. 엄마와 잠시 대화를 더 이어간다.
"시장에 함께 간다고 했던 친구분은 먼저 가셨어?"
" 혼자 다녀왔어"
" 전화로는 같이 간다고 하지 않았어?"
" 너가 또 싫어할까 봐 그렇게 말했지"
" 그런 것까지 거짓말할 필요가 있어?"
“......”
엄마는 이어질 대답 대신 바쁜데 어서 들어가라며 연신 손을 저으신다.
엄마가 나한테 친구랑 같이 간다고 한 건 이유가 있다. 의학적 진단을 받진 않았지만 엄마는 부정망상의 행동들을 오랫동안 보여왔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의 노력으로 여러 해가 지나도록 큰 문제없이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는 늘 엄마의 증상을 주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아쿠아로빅 수강도 그렇게 시작했다. 엄마는 수영장을 다니며 동년배의 좋은 친구분을 한 분 만나셨다. 지금은 아쿠아로빅을 그만두셨지만 일주일에 한 번 친구분을 만나 외출을 하신다. 그 친구분을 만난 이야기를 들어드릴 때마다 나는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엄마는 아마도 내가 친구분을 만났다고 하면 좋아하는 걸 알고 친구와 함께 간다고 하신 것 같다. 먹을거리를 사러 멀리 소래포구까지 일부러 갔다고 하면 내가 괜히 그런 고생을 하냐고 싫은 소리를 할까 봐 신경이 쓰여 그렇게 얘기를 하신건 아닐까.
그렇게 7번 출구의 붐비는 사람들 속으로 발걸음을 제촉하는 엄마. 창 밖으로 멀어지는 엄마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갑작스레 눈시울이 붉어지지만 이내 집으로 다시 향한다. 글을 쓰면서 보니 '거짓말'이라는 표현은 참 거칠었다. 내 얘기를 잘 듣지 않는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언제부턴가 이런 거친 표현들이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고령의 엄마와 가까이 접촉하는 게 당연히 좋지 않았을 상황이긴 했지만, 이런 '드라이브 쓰루' 같은 만남을 하고 나니 죄송하기만 하다. 이런 만남은 그동안 종종 있어왔다. 먼저 나가 개찰구에서 마중해야겠다고 몇 번을 생각했지만 게으름에 하지 못했다. 다음엔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미리 기다렸다가 엄마를 만나야겠다.
싱크대 위에 검정 비닐봉지를 풀어헤친다. 둘째 딸이 좋아하는 간장게장 한 박스, 명란젓 한 통. 전부인가 싶었는데 봉지 바닥에 물컹한 뭔가가 더 있다. 예쁜 보라색 가지 세 개.
2022.12.01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