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준비> 일리야 레핀, 1864
번역판으로 된 내 책*에는 <시험 준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레핀의 나이 20세. 아카데미 입학 첫 해에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구글에서 찾은 파일이다. 비교적 책과 유사한 톤이지만 채도가 조금 높게 표현된 것 같다. 늘 그렇듯 미술관에 가서 볼 때까지는 원작의 느낌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원작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러시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원작의 느낌은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저채도에 따스한 앰버톤이 감도는 그림이다.
창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오는 빛이 부드럽다. 직광이 아닌, 창 너머 건물 외벽의 반사광과 산광이 주된 광원이다. 뒤쪽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얇은 커튼을 투과하여 더욱 부드럽게 벽에 떨어진다. 옅은 보라색 벽지에 만들어진 명암의 그라데이션이 인상적이다. 우측 창문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하이라이트와 빛이 덜 닿는 곳의 어둠이 만들어낸 밸런스가 좋다. 부드러운 산란광이 만들어 내는 암부의 풍부한 계조 표현이 이 그림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암부의 비중이 높은데도 그림이 무겁지 않게 느껴진다.
한가로이 앉아있는 강아지, 잠을 자는 학생, 창 너머 책을 읽고 있는 여인, 전경의 주요 인물의 표정과 몸짓.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어느 느긋한 하루의 일상은 부드러운 빛이 만들어낸 편안한 명암 계조 표현과 어울어져 더욱 안정되고 따뜻한 정서를 전달한다.
그림 속 벽지, 바닥, 창틀, 기타 소품에서 표현된 오래된질감 또한 부드러운 빛을 만나 디테일이 더욱 잘 표현되었다. 벽지의 보라색, 자고 있는 친구의 바지와 카펫의 붉은색, 창 너머 여인의 푸른색의 색 배분도 흥미롭다. 채도와 명도가 높지 않고 적절하게 보색의 배분을 잘 활용했다. 다만 창 너머에 여인을 그려 넣은 건 세련되지 못한 느낌이 있다. 여인의 시선이 책을 보고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레핀의 의도가 있었겠지만.
*도서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영혼 일리야 레핀, 일리야 레핀 외>, 씨네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