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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형 Jun 30. 2020

07. 2막 5장 <나의 얘기>

2막 5장 (2005~2008)


#1. 중학교 입학


이모부의 파견기간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나의 거취를 두고 얘기가 오갔다. 당시 내 마음이 어디로 쏠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훗날 어디에 살게 될지 모르지만, 결국엔 한국인이고 한국에서는 연고가 중요하다 하셨다. 그 뜻에 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탁월한 전략이었다. 다른 조기 유학생 친구들과 달리, 나는 한국에 친구들이 많은 편이다. 인천공항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나와계셨고, 이모, 이모부 그리고 윤재형한테 그동안 고마웠노라 말하고 헤어졌다. 종우는 학교 문제로 한 달 뒤에 따로 입국했다. 차 안 라디오에서 버즈의 가시가 흘러나왔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한국 특유의 큼지막한 간판과 교복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이클럽, 다음 카페 등으로 한국 친구들과 연락을 종종 해왔기 때문에 친구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더 설레기도 했다. 한창 사춘기이기도 해서, 어떤 여학생들이 있을지 궁금했다. 또, 기존 친구들이 어떻게 변해있을지도 궁금했다. 2년 만에 다시 만나면 어색하려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저녁에 시형이가 집으로 왔다. 원래도 키가 컸지만 더 커 있었다. 반가웠지만 서로 어색해서 오히려 어머니와 시형이가 대화를 많이 했다. 며칠 후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초대해 밥을 먹었다. 고맙게도 잊지 않고 많이들 와주었다. 각자 다른 학교로 배정되어 뿔뿔히 흩어졌었지만, 오랜만에 만나니 다들 반가워했다. 밥을 먹고 근처 노래방에 갔다. 한국 노래가 어색했다.


갈 수 있는 중학교가 세 개 정도 있었는데, 친한 친구들이 가장 많고 누나가 재학 중이던 중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교장선생님을 처음으로 대면하던 날, 부모님과 운동장을 가로질러 갔는데, 그때 체육시간이던 여학생들이 몰려들어 웅성웅성거렸다. 그리고 그 무리에는 유학 가기 전 사귀었던 전 여자친구도 있었다. "내가 다시 왔노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교무실에 앉아 있었는데 친구들이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다행히 학년이 인정되었고 반 선택권이 있었다. 당시 시형이가 1반이었고 순재가 4반이었다. 1반은 1층에 고립되어 있었고, 친구들을 더 많이 사귀기 위해서는 4반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2학년 4반 40번대 번호를 배정받게 됐다.


또 축구였다. 입학 첫날부터 다른 중학교와 축구 경기가 있었는데, 당시 축구부 주장 친구가 같이 뛰자고 했다. 강렬한 첫인상을 만들 좋은 기회였다. 내 축구화에 묻은 영국산 잔디를 보고 친구들은 신기해했다. 순재와 시형이의 도움과 영국에서 이미 다져진 적응력으로, 빠르게 한국 생활에 녹아들었다. 일본 영화 크로우제로의 한 장면처럼, 순재가 각 반을 돌면서 주요 인물들 소개해줬다. "얘는 전교회장", "얘는 전교 1등", "얘는 누구, 쟤는 누구" 쉬는 시간에는 다른 반에서 나를 보러 오기도 했다. 당시 반에 명종이라는 미국 유학생이 있었는데, 서로 본능적으로 선의의 경쟁자임을 느꼈다. 영국 대 미국, 누가 더 영어성적이 좋은지가 선생님과 반친구들의 관심사였고 서로 엎치락뒷치락하면서 불편하지만 스릴 있는 동거를 했다. 덕분에 영어선생님은 우리 반에 들어올 때마다 긴장을 많이 하셨다. 그럴 만도 한 게, 한 명은 미국에서, 또 한 명은 영국에서 왔기 때문에, 실수 하나 하기만 해도 전교에 소문이 날 기세였다. 우리 둘은 팔짱 끼고 매의 눈으로 선생님의 떨리는 손끝을 따라갔다. 소문에 따르면 다른 반보다 수업을 두배로 준비해서 오셨었고, 뒤통수가 매우 따가우셨다고 한다. 학교 공부 외에 종합학원, 단과학원을 다녔고 옥동 소재의 유명 영어학원에서 고등학생들과 같은 특별반에 배치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소싯적에 꽤 인기가 많았다. 축구를 하고 반에 돌아오면 책상 위에 빵, 우유, 음료수 등이 놓여 있었고 당돌한 몇 후배들은 반 앞으로 찾아와 전화번호를 물어보기도 했다. 가게에 부모님을 끌고 온 후배들도 있었다. 꽤 괜찮은 영업 전략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로스트(Lost: Legend of Soccer Team.....)라고 하는 내가 소속된 축구팀 자체가 인기가 많았다. 팀 이름이 유치한데, 이름과는 다르게 꽤 많이 이겼다 끼 많고 잘생긴 친구들이 많았고, 점심시간에 축구할 때면 소녀팬들이 창문 밖으로 구경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연애도 하게 됐다. 시험기간에 컴퓨터 사인펜에 힘내라는 문구를 적은 종이를 돌돌 말아 테이프로 붙여 선물했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크리스마스는 여자친구와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게 국룰이었다. 그다음 연애에서는 여자친구와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했다. 돌이켜보면, 나도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구나. 3학년 때는 선도부도 하고 축제 때 친구들과 여장남자 콘테스트도 하면서 학교에서는 나름 '유명인'으로 재미있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큰 사건사고 없이 졸업하게 됐고 연합고사라는 고입선발고사를 통해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https://brunch.co.kr/@hopeconomist/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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