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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a Apr 19. 2019

여행의 고수

프리랜서 놀이 중_D+172

*놀이처럼 즐기면서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때문에 정말 "어쩌다가" 시작된 나만의 갭 이어(Gap-year), 프리랜서 활동 172일째, 3번째 프로젝트로 제주살이 35일째에 시작한 글이다. 수입만을 위해 일을 하고 하루를 한숨으로 보내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둔 뒤 "어쩌다가" 들어온 프로젝트를 하다가 5개월 20일째를 맞이한 초보 프리랜서의 이야기.

 

어쩌다보니 172일 째가 되어서야 글 한 자를 떼었다. 그냥 날려버리기 아까운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의미를 가지고 시작한다. 하여 남기는 이야기들은 "어쩌다가" 들른 분들이 가볍게 읽고, 순전히 내가 남기고 싶은 기록을 모아두기 위함이다. (제목과 내용은 상관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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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지금은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지는 한게임에는 하수 ㅡ 평민 ㅡ 중수 ㅡ 고수 ㅡ 영웅 ㅡ 지존 ㅡ 초인 ㅡ 신 이라는 단계가 있었다. (이후에는 초보-평민(하,중,상) ,중수(하,중,상),고수(하,중,상),영웅(하,중,상),지존(하,중,상),초인(하,중,상),패왕,제왕,마왕,초급신,중급신,상급신,절대신 으로 디테일하게 엄청나게 복잡하게 등급이 바뀌었다고 한다. / 이거알면 옛날사람 인증)

[출처] 네이버 지식인 '뭐고 이거님' (우주신) 답변


이젠 노는것도 '잘 놀아야'하고, 수준(level)이라는게 생겨버렸다. 심지어 혼자노는 것도 등급과 고수가 있어서 어디선가 본게, 혼자 고기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고 술 한잔 할 수 있으면 혼술의 대가라고 한다. (출처기억 안남)


시간이나 금전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만 즐기던 사치로 여겨지던 '여행'이 어느덧 누구나 떠나고 잘 노는 방법을 소개하는 글들도 많아졌다. 관련 글들을 보아하니 가장 하수가 친구와 함께 떠나는 패키지 여행 쯤 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어느 덧 여행이 휴식을 취하고 리프레쉬하는 수단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인증샷 대회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많이 떠나봤던 사람의 혼자 떠나는 여행은 계획부터 매우 빠르다.
기업으로 따지면 너무나도 잘 알아서 '시장조사'를 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다.




나의 경우는 크리스마스 전 회사에 말 안하고 조용히 다녀온 2박 3일의 오사카 여행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공부하러 떠났던 1년짜리 해외체류 제외)(근데 휴일에 휴가를 얻었는데 왜 회사에 이야기해야 하는건지?)


뭣 모르면 용감하다고 나의 첫 해외경험은 영어공부 겸 세상을 보고싶다고 떠난 1년짜리 해외체류 경험이었고, 당시에도 나홀로 훌훌털고 떠난 덕에 첫 여행도 나홀로 여행으로 시작되었다. 애초에 사진에 집착하는 타입도 아니고, 나홀로 여행은 풍경사진 외엔 사진을 찍기 어려운 터라(셀카봉도 없었던 시절) 사진보다는 일기쓰기나 그때그때 당시의 감상을 눈과 마음으로 담는데 집중했었다. 그리고 어느덧 여행의 경험이 축적되다 보니 초고수 까진 아니어도 '그럭저럭 고수'급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스스로의 '여행 레벨'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는데, 이는 급작스럽게 동행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하게 되면서 부터다.


많이 떠나봤던 사람의 혼자 떠나는 여행은 계획부터 매우 빠르다. 기업으로 따지면 너무나도 잘 알아서 '시장조사'를 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다. 그냥 쉬고 싶으면 맘놓고 널부러져 있을 수 있는 날씨좋은 동남아, 루프탑 호텔을 찾아 하루종일 누워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정신적인 충족과 문화경험이 필요하면 박물관과 미술관이 즐비한 동네를 찾아 하루종일 작품감상을 하고 예쁜 카페에서 멍때리기를 한다. 색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으면 한국인이 잘 머물지 않는 호스텔(백팩커스)에 장기 숙박하며 라운지를 어슬렁 거린다. 때때로 계획대로 안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것마저도 혼자놀기의 즐거움이라고 치부하며 즐긴다.



여행을 100번 다녀온 사람은 20번 다녀온 사람보다,
20번 다녀온 사람은 5번, 혹은 무경험자보다 고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누군가와 떠나는 여행은 '타깃(동행자)'에 따라 시장조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심지어 그 타깃은 본인의 니즈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타깃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배려'라는 이름으로 숨겨져 있거나 혹은 여행의 경험이 없다보니 스스로의 성향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이 여행은 여행지로의 교통편이 준비되거나 편의시설이 있는 호텔이 준비되지 않으며, 방문지에서 제공하는 것 이외의 통역 서비스가 없습니다"라는 안내문구가 있다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혼자 떠나는 사람은 정말 혼자서도 잘 논다. 외로움과 낯선 사람과 대화에도 익숙하고 나를 찍어줄 사람이 없음에도 슬퍼하지 않는다. 멋진 곳을 만나면 잠시 셔터를 눌렀다가 그때의 기쁨과 감정을 담기 위해 여유롭게 시간을 즐긴다. 그런데 동행이 생기게 되면 만나는 시간부터 장소를 정해야 하고 급작스러운 상대방의 감정 변화에도 민감해져야 한다. 이미 약속했으나 상대의 결정에 따라 따라주어야 할 때가 생기고 간혹 어느정도 그 변덕을 따라주어야 할지 고민도 생긴다.


누군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너무 낯선 것이었고 내가 원하는 여행의 자유로움에서 거리가 먼 것이기도 했다. 시차 적응도 나와는 달랐고 좋아하는 것과 성향도 그간 내가 알고 들었던 것과 매우 달랐다. 마치 내가 알던 사람과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외로움을 덜 고자 잠시의 동행을 받아들였다가 내가 원했던 무언가를 깨버린 느낌이었다. 그 동안 나도 그렇고 타인들이 말하는 "여행의 고수" 타이틀을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내 스스로의 부족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왜 나는 내 스스로를 고수라고 생각해왔을까? 나는 왜 내가 즐겨왔던 활동에서의 '부족함'을 느꼈을까?



진정한 여행의 고수는 동행이 누구든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일까? 여행과 같은 자기만족의 활동에서도 누군가와 비교를 해야 만들어지는 등급을 나눌 수 있는 걸까? 여행을 100번 다녀온 사람은 20번 다녀온 사람보다, 20번 다녀온 사람은 5번, 혹은 무경험자보다 고수라고 할 수 있을까?


더 이상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사회, 나 자신을 주체로 살아가는 사회라고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개인의 취미나 즐거움을 찾는 영역까지 "고수"라는 타이틀이 생겨나고 있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사회, 기존의 상식이 이제는 몰상식이 되는 지금은 역설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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