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찾아온 생명 5
24년 09월 말 우리 가족 멤버가 된 둘째.
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행복도 있었다.
11월 초 내 생일이 있어
남편과 나 첫째. 둘째가 소소하게
생일축하 음식을 먹었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오후부터 갑자기 아이가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얼른 AAP(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약제를 먹이고, 출산했던 병원의 응급실로 갔다.
출산병원 소아응급실은 전공의 파업으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당직의사가 없다고 했다.
아직 50일도 안된 아이가 고열로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119 전화해도 병원명만 알려주고 거기서 진료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불확실하게 얘기했다.
열이 나는 아이를 부둥키고 기도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순간, 지금은 염치 & 체면 따위는 필요 없다.
아는 모든 분들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2년 만에 이전에 소아응급실에서 근무하며 알게 된 우리 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님께 조심스럽게 연락을 드렸다.
정말 감사하게도 교수님께서 당직으로 근무 중이셨고 얼른 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저녁 6시 반, 소아응급실에 도착했다.
혈관이 보이지 않아 애먹었지만 다행히 혈관을 찾아 피검사 및 소변검사가 진행되면서 항생제 사용 및 수액을 연결하고
해열제를 먹였다.
둘째는 다행히 당일 소아병동에 입원자리가 있어 입원할 수 있었다.
그 긴박하고 정신없는 상황에서 나는 감사가 흘러나왔다.
지금 이 시간에 내 품에 안겨있는 우리 둘째 아이와
다른 사람들은 욕하고 이기적이라고 할지언정
나는 의사 선생님들께 감사했다.
(특히 소아응급실&소아병동에서 힘든 상황이지만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 주시고 돌봐주시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컸다.)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그 모든 상황 가운데
신생아를 치료해 줄 병원을 찾았다는 사실.
나 혼자 운전하고 둘째 아이와 함께 사고 없이
병원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기적이었다.(첫째 아이는 집에서 아빠가 보고 있었다.)
귀한 생명을 허락하시고, 아이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감사기도가 절로 나왔다.
1주일 동안 입원한 둘째는
ESBL(확장성 베타-락타메이즈) 음성결과가 나와 세포탁심 0.87g#3로 주사제 투여를 이어갔다.
신장 SONO(초음파) 검사까지 마치고 퇴원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12월이었다.
2024년 하반기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출산으로 인해 집을 한동안 비우고 첫째를 못 보다가
또 둘째의 입원으로 이산가족이 되고 완전체로 함께 있는 시간이 드물었다.
2025년 새해를 보내며,
우리 가족 4명이 모여 함께 식사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제 더 큰 이벤트가 없겠지 하며
육아하고 있던 어느 날.
2025년 03월
정말 예상치 못한 소식이 생겼다.
내 뱃속에 세 번째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