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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은나의것 Sep 11. 2019

슬픔을 배우다..

어느 국문과 교수님이 쓰신 글에 오래전 영화에 대한 아주 서정적이고도 강렬한 감상이 적혀 있었다. '비정성시'라는 제목의 영화에 대한 것이었는데 남자 주연배우가 나도 아주 좋아하는 배우인 양조위며 그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이야기에 더욱더 보고 싶어 지는 영화다. 오래된 영화인 데다가 상업영화도 아니었기에 짧은 유튜브 클립을 통해서 그 교수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몇 분짜리 클립만을 볼 수 있었다. 실제 영화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듯 하나 이 영화가 찍힌 시대가 80년대인 탓인지 화면의 분위기에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어떠한 80년대의 정서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는 나에게도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사오십대 아저씨들의 시국 걱정이 오가는 식사 자리에 마주 앉은 두 남녀가 서로 눈빛과 손짓으로 이야기하다가 전축이 있는 곳으로 가 '로렐라이'라는 음악을 튼다. 남자 주인공은 말을 할 수 없는 청각 장애인. 작은 종이에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하면서 애틋한 사랑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장면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기한 두 배우를 통해 처음 사랑이 싹트는 순간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 같은 것이 마음속에 일어났다. 그리고 양조위가 여자에게 적어주는 자기의 어릴 적 이야기가 또 내 마음을 건드렸다. '어렸을 때 나무에서 떨어져서 크게 다치고 나서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는데 그때는 너무 어려서 슬픈 건지를 몰랐어요. 그냥 즐겁게 뛰어 놀기만 했어요. ' 

나는 그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고 슬픔에도 절대적인 조건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지금 불행한 거야. 이 정도 상황이라면 슬픈 거지'라고 가르쳐 주게 된 것인지. 스스로 어느 순간부터 배우게 되는 것인지. 우리는 수많은 슬픔을, 불행을 배워 알고 또 알아 버렸기에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을 아닐지. 


나는 슬픔과 불행을 너무 많이 배우고 싶지 않은데. 

이미 배운 것이라도 오래 쓰고 익히지 않으면 못하게 되는 것처럼. 


나도 그저 그냥 즐겁게 뛰어놀며 이 생을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 


p.s 유튜브에 ' A city of Sadness(1989)'라는 제목으로 전편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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