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은나의것 Sep 20. 2019

한 줄만 쓰는 거야..

김영하 작가의 유튜브 방송을 찾아보는 것을 즐겨한다.


그의 글을 좋아하고.. 그도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별달리 할 일이 없거나 그러면서도 뭔가 나에게 유익한 짓을 하고 싶을 때면 나는 김영하의 영상을 찾아보고 그의 목소리를 듣곤 한다.


어릴 적부터 나는 예외 없이 글쓰기를 하는 곳에 속해 있었다. 초등학교 때에도 각종 글쓰기 대회에 나갔었고 수상도 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때에도 문예부, 고등학교 때에도. 감성이 폭발하던 고등학교 때 쓰던 일기장을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올라와 찢어 지하철역 쓰레기통에 처넣었던 기억은.. 지금 와 생각해보면 진짜 일어난 일인가 싶을 정도로 믿어지지 않는 기억이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를 좋아하는 것으로 되어있던 그 남자아이와 대학 입시가 끝나고 정말 잠시 만났었다. 두 달 정도를 만나고 헤어진 것이었는데 연애 경험이 전무했던 나에게는 나름 첫 연애의 실패였던 것이다. 헤어진 후 일기장 안에 그 아이와의 이야기가 적혀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소중한 글 묶음을 모두 버려버렸다.


 그때 몰랐던 것을 지금 안 것이지 어쩌겠나. 그 당시의 상실감이 그만큼 컸던 것이겠지.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 마음으로 충분히 들어가 동감하지 못한다. 용서하지 못한다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아까운 내 일기장.


기숙사 생활을 하는 3년 외고 시절. 나는 철저히 좌절했었다. 그때의 기억이란 대부분은 어둡고 침울하다. 중간중간 나는 웃고 웃기고 즐거웠을지 모르겠으나 내 근간에 있던 어두움과 좌절은 평생을 두고도 극복할 수 없을 거라 느껴질 만한 크기의 것이었다. 그 일기장 안에 쓰여있는 나의 말들이.. 당시 나의 기록들이 가끔 너무도 궁금하고 그립다. 그리고 애써 기억해보려 한다. 그 때의 모습을. 면학실에서도 기숙사 2층 침대 위에서도 일기를 쓰던 내 모습은 어렴뿟이 기억한다. 어느날 밤. 내가 깊이 잠든 줄 알았는지 같은 방을 쓰던 N 양이 내 머리맡에 꽂혀있던 일기장을 쏙 뽑아갔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으나 잠든척 했었고 그 아이는 자기 책상위에서 내 일기를 읽으며 흐느껴 울었다. 강렬한 기억. 아직도 확인하고 싶다. 무엇이 그녀를 울게 했는지.


여하튼.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김영하 작가의 유튜브 클립 안에 있던 말 중 내 마음을 움직인 한 마디 덕분이다.  자신이 소설가가 되지 않게 하는 수많은 악당 들과 싸워야 한다는 이야기. ' 그런 진부한 이야기를 써서 뭐해?' , '뻔한 이야기잖아' 등등의 목소리를 물리치는 단 한마디.


' 한 줄만 쓰는 거야, 한 줄만 쓰는 건데 뭐 어때'


김영하와 같은 위치의 작가도 저런 생각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 위로가 되고 ' 한 줄만 쓰는 거야' 이 생각이 나를 격려한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잇지 못하는 이유가 김영하의 그것과 정확히 같기 때문에.


한 걸음을 걷고 한 줄을 쓰고 하나를 공부하고.


오늘 다시 어린아이처럼 한 발자국을 뗀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픔을 배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