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주차장이 닫혀 있어 골목에 주차를 하느라 시간을 거의 딱 맞추어서 도착하였다. 서둘러 학교에 들어가는데 벌써 학생들은 문이 잠긴 교실 앞에 길게 줄을 서있다. 10명이 넘는 학생이다 보니 꽤 수가 되어 보인다. 줄지어 있는 학생들을 향해 길게 난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나를 '당연히' 수업을 들으러 온 다른 한 명 쯤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은 동질감을 담은 눈빛을 보낸다. 그런 내가 줄에 합류하지 않고 열쇠를 꺼내 문을 따고 들어가니 그들은 놀람의 눈빛을 숨기지 못한다. 아니 숨기지 않는다. ' 설마 당신이 우리 독일어 선생님?'
놀라는 것도 당연하지. 동양인인 데다가 내 나이 때의 독일어 선생님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을 테니. 그렇다. 나는 조금 독특한 독일어 선생이다. 아직 독일에서 동양인 얼굴을 한 독일어 선생님은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더구나 2세도 아니고 입양아 출신도 아닌 토종 한국인이니까.
조금의 당당함 그리고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학생들을 맞는다.
첫 수업이니 당연히 수업의 시작은 서로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수업이 시작하고 몇 분이 지났을까 수업은 어느 정도 안정적인 분위기에 접어들고 잠깐의 놀람은 금세 잦아들어 다른 수업과 다를 게 없는 독일어 수업이 시작된다. 다행히 이 반은 처음부터 느낌이 좋다. 키르기스탄, 필리핀, 중국, 폴란드, 러시아, 콜롬비아, 이란, 시리아, 우크라이나... 이렇게나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생각한다. 이번에도 꼭 최선을 다해서 이 학생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쳐 주리라고.
독일에서 독일어 선생으로 외국인 앞에 서는 나는 늘 이러한 놀람의 첫 몇 분을 지나야 한다. 그 이상이 되는 편견도 있을 수 있고 그런 편견이 낳는 억울한 평가 같은 것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바꿀 수 없거나 극복해야 하는 어떤 것이다. 나를 능력만으로 제대로 평가해주고 많은 일들을 맡겨 주는 학교의 담당자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의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해전인 80세 후반까지도 시민대학의 영어 선생님을 하셨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도 독일어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공인 번역사라는 직업과 함께 평생 가지고 갈 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더욱 소중하게 아까고 다듬어야 할 직업. 나에게는 소중한 직업이다. 독일어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