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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은나의것 Jun 05. 2020

외로움의 농도

외로움도 매력이 되나요?

한국을 떠나온 지도 언 십여 년이 지났고 그와 동시에 왜 때문인지 한메일의 사용도 멈춰졌다.  

내 기억으로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전산실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던 이메일 계정이 한메일의 메일이었다. 첫 대학생활, 친구들과의 첫 이메일 주고받기 등등. 나에게는 잊을 수 없고 소중한 기억 뭉텅이들이 그 안에 아주 많이 저장되어 있다. 그런 보물단지를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오늘 정말 몇 년 만에 다음의 이메일 계정에 로그인해 들어가 보았다. 스팸 광고들이 오래 관리되지 않은 정원의 무성한 잡초들처럼 메일 상자 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나는 추억상자를 열어보는 마음으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메일들을 하나씩 열어 보기 시작했다.


와........

그 안에는 무엇보다 당시 썸을 타던 남정네들과의 이메일이 주르륵. 사춘기 이후로는 남자와 함께 다니는 학교건 교회건 학원이건 늘 나는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초중고 동창생들을 찾아주는 아이 러브스쿨이 막 인기였을 때는 나를 찾는 여러 명의 아이들로부터 쪽지를 받았는데 그중에 적지 않은 남자아이들이 나를 짝사랑했었노라 고백도 했었고. 고등학교 때는 가뜩이나 스트레스 많고 빠져나갈 구석 없던 외고의 기숙사 생활 속에 여자 친구, 선배들의 질투는 그렇지 않아도 고단하고 지친 하루를 더더욱 괴롭게 해주기도 했다.  막말로 나를 좋아하는 남자 학우와 사귀기라도 했더라면 억울하지라도 않았을 텐데. 일명 범생이 스타일이었던 나는 러브 레터만 주야장천 받고 구름다리에서 몇 번 데이트나 해봤지 그 흔한 손 한 번을 안 잡아 봤다. 수능이 끝나고 나서야 손잡기, 포옹하기 한 번. 그것이 최대의 스킨십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새삼 억울하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지난 일이니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내가 살아가면서 이성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것은 그것을 마음껏 누리고 즐길 수 없는 사람이던 나에게 계륵과 같은 것이어서 오히려 쓸데없이 많은 상처와 괴로움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나는 그저 내가 이성으로서 왜 끌린 걸까 의심하기 바빴다.  


특히 대학시절 나는 스스로도 의아할 만큼 꽤 많은 남자들에게서 구애를 받았다. 자존감이 참 낮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처음엔 설레고 기분이 좋으면서도 매번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그 스토리 또한 흥미진진해서 나중에 소설을 쓰게 되면 하나씩 캐릭터로 삼아보기에도 참 좋을 정도다.

화려한 외모의 스타일도 아니오 늘 안경을 쓰고 화장한 번 할 줄 모르는 나였지만 혹시? 는 역시였고 설마? 는 과연  그러하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풍기던 외로움의 이미지도  인기에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된다. 아주 활발한 일면과 우울한 면이 공존하는 상태였던 내가 조금 이상하면서 신비해 보였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항상 지독하게도 외로웠다. 그것이 느껴지지 않을 리 없었겠지. 늘 사랑을, 사람을 갈망했다. 한 순간도 혼자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 큰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에게 집착할까 두려워하고 시작조차 하지 못한 인연들이 참 많다.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한 번은 정말  특별한 일이 생겼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타과의 남자애가 있었다.

외고에 다니던 나는 온갖 열등감과 패배감으로 바닥을 모를 정도로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학교 탑의 성적을 가진 아이 었다. 이성으로서의 동경과 내가 가지지 못한 성적을 가진 아이로서의 동경. 두 가지를 가진 아이. 그냥 마음속으로만 좋아하던 아이 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고시를 준비하던 그 아이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s대 대학원에 다니면서 그 아이와 가까운 곳에 살게 되면서 고등학교 동문 인터넷 카페에서 잠시 댓글을 몇 번 나눈 것이 전부였는데 그 아이는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어 했다. 바보 같은 짓이었으나 나는 그때까지도 예전의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는 나에게 같은 헬스클럽에 커플로 등록을 하자는 제안을 하는 등 꽤나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기도 이미 남자 친구도 있었던 상태이기도 해서 결국 그냥 그렇게 흐지부지 흘려 보낸 인연이 되었다. 그러나 어린시절 오래 짝사랑 한줄만 알았던  아이가 나타난 ,  아이가 나에게 구애를 하게  것에 흔들리지 않을 없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때까지도 외고를 다닐  바닥을 기던  성적이 아직 얼굴에 새겨져 있기라도 한  스스로를 수치시러워하고 있었다. 전국 최상의 성적을 내는 것만이 절대 목표이자 선이자 모든 것이 었던  시절에 생긴, 쉽사리 치유되지 않던 열등감과 수치심이 나를 좋아하던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도 밀어내게도 하였다니.. 지금  생각하면  쓸데없이 나를  소모하게 하던 그때의 감정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이렇게 저렇게 놓쳐버린 인연들을 생각하고 이십 년 전 메일 속에 참 어리고 상처 많던 내가 쓴 글들을 보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한때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들도 떠올리고 손발이 오그라들긴 하지만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남자들의 글을 읽으며 세월의 무상함도 떠올리게 된다. 다들 나처럼 가정을 이루고 어디선가 누군가의 아빠, 남편이 되어 살고 있을 텐데.


이십 년 후 노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떠올리며 조금의 후회라도 덜 할 수 있으려면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의 어렸던 나는 상처투성이에 외로움뿐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보다는 훨씬 안정된 모습이라는 것에 어느 정도의 뿌듯함도 느껴진다. 나는 아직도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외롭기 때문에 매력적인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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