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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호사 J Dec 03. 2020

수능 마친 아이에게 이것만은!

20여 년 전 나를 떠올리며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날이 다가왔다.

20년이 훨씬 지난 일인데도 그 날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그 전날 저녁에 책상에 앉아 있는데 공부가 전혀 되질 않았다. 엄마가 괜스레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과일을 깎아 와 책상 위에 올려주었다.


엄마가 어떤 말을 하려는데 내가 듣지도 않고 막았다.

"엄마 아무 말도 하지 마"

고마우면서도 부담되고 긴장돼 죽겠는데 엄마가 무슨 얘기를 해도 더 긴장될 거 같았다. 엄마 얼굴만 쳐다봐도 눈물이 날 거 같아 손사래만 쳤다.


잔소리와 걱정이 많았던 엄마도 그날만큼은 나를 배려해 주며 조용히 나갔다. 평소 공부 공부하며 얼마나 엄마도 나도 투닥거렸던가. 엄마 입장에선 마지막 순간에라도 따뜻함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을 텐데 타이밍이 안 맞았다.


다음날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봉고에 올랐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긴장한 모습. 겨울바람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잔뜩 웅크리고 앉아 눈을 감았다. 수능 치를 학교에 다 와서 내리려는 순간, 한 아이가 말을 꺼냈다.


"야들아 학교 문 지나갈 때 왼발로 드가야 합격이가?오른 발로 드가야 합격이가?" (난 부산 사람이다 참고로)


그 말에 모두 웃으며 왼발이 맞네 오른발이 맞네 떠들다 우리는 왼발로 지나기로 했다. 그래서 몇 명이 팔짱을 끼고 구령에 맞춰 왼발, 왼발 하다가 무사히 왼발로 정문의

경계를 넘었다. 그 와중에 깜빡하고 오른발로 정문을 넘은 아이는 다시 돌아가 왼발로 정문을 통과했다.


"우린 전부 합격이다!!" 란 친구의 말에 모두 웃었다.


그렇게 긴장을 푼 채로 교실에 들어갔지만 마음이 떨리는 건지 몸이 추운 건지 다시 덜덜 떨렸다. 심호흡을 수차례 하며 겨우 시험을 치러냈다.


시험을 끝내고 운동장으로 나오자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있었다. 드디어 끝났다는 해방감에 날아갈 듯했지만 오직 대학에 들어가려고 이 날을 준비했던 지난 세월이 허탈하기도 했다.


왼발로 들어왔던 정문을 내 마음대로 건너가던 순간

"얘들아" 누군가의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친구 엄마였다. 친구 엄마는 친구와 나를 보자마자 안아 주며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넸다.


"너무 고생했다. 힘들었지?"

장미 한 송이가 그렇게 힘이 셀 줄 몰랐다. 그 말과 꽃이 그간의 노고를 사르르 녹여주었다.

당연히 "시험 잘 봤어?"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실제 우리 엄마는 집에 온 나한테 그것부터 물었다 ㅋㅋ)

그렇게 말해 주는 친구 엄마가 너무 고마웠다.


그 고마움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이쁘게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야 이런 고마움이 왜 이토록 오래가는지 알았다. 결과 이전에 과정과 마음을 그냥 알아만 주는 것. 그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많은 아빠 엄마 보호자들이 수능을 마친 딸 아들들을 만날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로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얼마나 더 긴장되고 마음을 졸였을까. 아이들은 특히 예민한데 더 예민한 상황들로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었을 거다.


그런 시간을 보낸 아이에게 결과가 너무 궁금하겠지만 잠깐만 질문은 미루자. 먼저 아이를 안아주자. 익숙지 않으면 손이나 어깨라도 문질러 주자. 그것도 어색하면 작은 꽃이라도 건네자. 그리고 이렇게 말하자.


"정말 고생했다. 결과 이전에 오랜 시간 준비하고 시험을 치른 그 자체로 최선을 다한 거야. 사랑한다"


# 수능 # 2020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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