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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프맨작가 Jun 07. 2024

백-26, 셰익스피어,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

영웅들의 최후와 함께 최후의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BC 69 ~ BC 30)는 실존 인문이었지만, 이보다 논쟁적이고 말 많은 역사적 인물이 있었을까? 

프톨레마이오스 왕국 마지막 고대 이집트왕국의 최후 파라오였던 그녀는 그리스 출신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이 분열되면서 300여 년간 이어진 이집트 지역의 헬레니즘 왕국의 마지막 파라오가 된 것이었다. 그녀는 이집트의 문화유산을 지켰던 마지막 여왕이었고 동시에 로마제국에 맞서 이집트를 지키려 했던, 로맨스와 카리스마의 화신이었다.  



로마제국을 상대로 파라오의 힘을 보여준 뱀보다 지혜롭고 치명적인 여왕, 클레오파트라!

그녀는 셰익스피어의 가장 큰 웅장한 스케일의 작품에서 여주인공이었다.

영웅 안토니오를 사랑에 멀게 하고 이집트의 안토니오가 되도록 이끌었던 절대지존이었다.


안토니오(마르쿠스 안토니우스 : BC 83~ BC 30), 그는 누구로 누를 수 없었던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로마제국의 영웅이었다. 율리어스 카이사르의 강력한 후계자로 떠오르면서 한때 로마 전체의 기대를 받았던 집정관이자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장군, 정치가로서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브루투스를 척결하고 로마의 영광을 이어간 로마제국의 존경받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을 위해서 기꺼이 로마제국을 버렸다.

두 제국의 운명을 건 두 사람, 이보다 극적인 러브 스토리가 있을까!



"안토니우스 : 이집트 여왕이여, 내 마음은 당신 배의 키에 꽁꽁 묶여 있어 당신이 이끄는 대로 가고 말았소. 

내 영혼은 완전히 당신의 종이 되어 신의 명령조차 거부하고 당신에게로 달려갈 태세요.
  

  
    클레오파트라 :  용서해 주세요!
  

  
    안토니우스 : 이제 나는 그 애송이에게 머리를 낮춰 강화를 청하고, 천한 자들이 곧잘 쓰는 속임수를 쓰거나 어물어물 속여 넘기는 짓을 해야겠소. 천하의 반을 떡 주무르듯 한 내가 말이오. 하지만 이제 사랑 때문에 완전히 약해져서 무슨 일이건 애정이 명령하는 걸 따르게 되었소.
  

  
    클레오파트라 :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안토니우스 : 눈물을 흘리지는 마시오. 그 한 방울 한 방울은 내가 잃고 얻었던 모든 것처럼 소중한 것이오. 키스해 주오. 그것만이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이라오. 애들 선생을 사절로 보냈는데 돌아왔소? 지금 내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겁소." 


늙은 안토니우스의 처절한 통곡이 들린다. 젊은 옥타비나누스에게 패전한 후, 사랑하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오열하면서 저 대사를 뿜어내었을 그에게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는 억울하였을 것이다. 사랑을 위해 로마제국에게 버려진 자신의 운명이 억울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이 선택한 운명이었다. 클레오파트라와 이집트를 사랑한 안토니우스는 파국을 받아들였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운명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그렇게 클레오파트라의 손에서 잠들었다. 



"레오파트라 :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아니꼬운 사령들이 우리들을 무슨 매춘부처럼 체포할 것이고, 거렁뱅이 시인들은 우리 얘기를 장단도 맞지 않는 노래로 지어 부를 것이다. 약삭빠른 희극배우들은 즉석에서 우리들을 즉흥극으로 꾸며 알렉산드리아의 술잔치 장면을 펼쳐 안토니우스 장군님을 술주정뱅이로 등장시킬 것이다. 빽빽거리는 애송이놈은 나를 화냥년으로 분장시켜 내 위엄을 욕되게 할 것이다." 


- <한 권으로 끝내는 셰익스피어>, 윌리엄셰익스피어 지음, 셰익스피어연구회 옮김

이 대사를 끝으로 클레오파트라도 독사에게 그녀의 살결을 주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옥타비아누스의 개선행진에 끌려가서 이집트의 정복을 욕보이는 상징으로 나서는 것을 거부하였다. 존엄한 파라오답게 그녀는 당당하게 자결하는 죽음을 선택하였다.

 


그들의 죽음이 위대한 것은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것과 더불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최후였기 때문이다. 누구는 삶의 운명을 개척하였지만, 그 종말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 둘의 영웅적인 삶과 죽음은 극적이다. 마치 위대한 소설의 이야기 같았지만, 실제 역사적인 사건의 이야기다. 



역사적으로도 안토니오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결합과 연맹은 그 둘의 운명에 한판 승부의 좋은 기회를 만들었다. 20만 명의 로마군인들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안토니오스와 재정적으로 완벽한 지원을 하는 이집트 왕국의 클레오파트라는 그들의 위력이 로마를 압도할 것으로 확신하였을 것이다. 안토니오스는 율리어스 카이사르에게 후계자로 지목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애송이로 보이던 정적 옥타비아누수가 카이사르의 후계자가 되면서 옥타비아누스와 로마제국을 양분하는 것이 그에게 유리할 수도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그가 승리에 취해서 너무 빠르게 샴페인을 터뜨린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와의 자식들에게 로마의 영토를 나누어주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그의 로마 군대가 그들의 고향 로마를 위한 싸움이 아니고 이집트 왕국을 위한 싸움에 참전하는 갈등을 빚었다는 것이다. 이점이 우세에 있었던 안토니오스를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에서 패전하게 된 이유였다. 정치적으로 계산이 빨랐던 젊은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으로부터 로마제국의 반역자 안토니오스를 척결하는 권리를 지원받게 된 것이다.   



그들의 셰익스피어 스토리에서도 역사에서도 옥타비아누스의 로마제국에 손을 들었다. 영웅들의 삶과 죽음은 문명의 탄생과 발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들이다. 로마제국은 이후 진정한 황제국의 패권을 갖게 되었다. 공화정을 이미 균열이 난 상태에서 오랜 내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 황제(아우구스투스 : BC 63~ AD 14)를 통해서 이집트를 포함한 모든 지역을 통합한 세계제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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