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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프맨작가 Jun 11. 2024

백-30, 불멸의 니체와 고흐의 철학과 예술

불멸의 예술 고흐 vs 불멸의 철학 니체  


이 두 거장을 한데 묶어서 글에 옮기는 것은 떨리는 일이다.


원래 예술은 철학의 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철학과 예술은 크게 다른 한 가지가 있다.


철학은 글로서 사유와 사변을 기록하지만,


예술은 글을 쓰지 않고, 시각적인 회화와 음악-소리를 언어로 표현한다.


플라톤은 예술을 모방이라고 폄하하였지만, 니체는 예술로 인하여 인간의 정신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니체는 철학을 문학적으로 풀어서 해석해준 대서사 시인이라고도 생각한다.










프리드리히 니체와 빈센트 반 고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거의 2년 ( 1889년 5월 8일부터 1890년 1월 17일까지)을 보낸 빈센트 반 고흐는 죽는 날까지 불꽃같은 작품을 그려내었다.



니체는 1881년 8월 25일 이탈리아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두통과 구토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으며 1881년부터 1883년까지 스위스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받았다. 그는 토리노의 광장에서 늙은 말이 채찍질당하는 모습에 비참하게 울부짖으면서 정신분열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그 후로도 죽는 날까지 니체는 간혹 그의 집필 작품들을 수정하는 작업 이외에 거의 철학적 창작을 멈추게 된다.


  





둘 다 고통 속에서 창작하였다



고흐는 고통 속에서 창작을 이어갔다. <별이 빛나는 밤>, <붓꽃>, <사이프러스 나무> 등은 그가 고통을 이겨낸 불멸의 명이 작품들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죽기 3년 전부터 귓병을 앓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그런 원인으로 1889년 귀를 잘라내는 정신착란 증상까지 보였다. 육체적으로 그의 고통스러운 3년 동안 그의 창작품은 불멸의 명작품을 매주 창작하였다. 10년의 화가 생활 동안 1천여 편의 작품을 완성하였고 그의 습작품까지 합하면 두 배는 될 것으로 추산된다. 빈센트가 죽기전 1년여동안 150편의 작품을 쏟아내었다. 그는 정말 미친듯이 온몸을 태워서 작품을 완성하였다.



 


니체 또한 어려서부터 허약한 체질과 고통 속에서 탐구를 이어갔고 그의 철학은 병마의 고통 속에서 고통을 끌어안고 극복하는 데서 완성되었다.


니체는 20대 초 바젤대학교수 임용 시절 이전부터 논문을 쏟아내어 인정받게 된다.


빈센트처럼 니체도 다작으로 왕성한 철학서의 창작을 하였다.


 










1) <비극의 탄생>(1872)


2) <반시대적 고찰> 시리즈(1873∼1876)


3)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1878∼1879)


4) <여명>(1881)


5) <즐거운 학문>(1882)


6)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


7) <선악의 저편>(1886)


8) <도덕의 계보>(1887)


9) <힘에의 의지>(1888)


10) <우상의 황혼: 망치를 들고 철학 하는 법>(1889)


11) <반그리스도: 기독교에 대한 저주>(1889)


12) <이 사람을 보라>(1889) 죽기 직전 마지막 자서전


13) <디오니소스 찬가>(1908) 니체 사후 출간


 













둘 다 사람을 너무 사랑하였다



빈센트는 자신을 돌보기 보다,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에게 이타적인 애정을 보였다.


그가 목사 시험에 불합격된 후 설교자(목회자)로 탄광촌에서 가난하게 살면서도 모든 것을 나누어주었다.


그는 <감자 먹는 사람들>의 작품을 통해 그의 최초의 대작이라고 스스로 평가하였다. 가난한 농부들에게 그의 애정을 담아서 그린 이 작품에 그의 이타적인 사랑을 느끼게 된다.


또한 아이을 키우고 있는 매춘부에게 동정과 사랑을 느껴서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면서 돌본다.


그녀에 대한 그림 또한 남겼는데.. 빈센트의 애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으로 사람들에게 스스로 강해질 것을 주문하였다.


니체는 그만큼 인간을 너무 사랑하였다. 그의 책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의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기독교의 신이 죽었다고 하는 근대적 사상의 종언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예수님과 같은 너무도 인간적인 이타심의 성인에 대하여 존경하였다. 너무도 사랑한 사람들에게 개인들 스스로 존중하고, 인간의 감정을 아끼면서 유한한 삶을 사랑할 것을 설파한 것이다. 그의 철학은 사람에 대한 사랑, 삶의 철학이었다. 오죽하면 초인(리버멘쉬)라는 사람들의 삶에서 궁극적인 목표를 제시한 것도 고통 속에서 긍정의 힘을 지닌 사람들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초인은 그가 사랑한 사람들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가 닮고 싶었던 철학적 이상을 담았던 것이다.














위대한 혁명적 창작가였다.



그들은 근대를 멋지게 마무리하고 현대를 연 혁명가들이었다.



빈센트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인기 있는 화가들인 인상주의의 작품들을 넘어서는 포스트 인상주의를 열었다. 그의 작품에는 순간적으로 평면에서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의 포착이 주는 인상주의를 넘어서는 현대적인 시각 - 인간의 새로운 관념을 담아내었다. 그의 말년 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에서 그의 초인적인 시각이 포착해낼 수 있는 이상적인 추상과 인상주의를 섞어놓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작품에서 감동과 상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새로운 감상법이 필요해졌다.   



니체는 신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사람이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삶의 시대로, 이성에서 감정으로, 집단(국가)에서 개인으로,  고통을 인지하는 시대에서 고통을 끌어안아 행복을 창조하는 시대로 20세기 현대를 열었다. 21세기 오늘도 아직도 고통을 극복해야 하는 우리들이지만, 적어도 니체를 통해 강한 인간성을 위해 분발하게 되었다.   



















빈센트, 니체 모두 목사의 아들이었다



고흐는 목사인 아버지와 심각한 대립각을 키웠다. 아버지는 빈센트가 기괴한 예술가의 정신으로 또 다른 사람들의 고통마저 끌어안는 이타적인 사랑으로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것을 싫어하였다. 어쩌면 정상적으로 편안하게 살아가는 아들을 바랐을 것이다. 빈센트는 그의 예술과 작품을 위해서 그를 희생하였다. 이는 극도의 고통 속에서 순교와도 같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니체는 목사인 아버지를 어려서 여의었다.


니체의 아버지인 카를 루트비히 니체 목사는 1856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를 루트비히 니체 목사는 피아노와 오르간 연주에도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니체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어린 기억 속 아버지의 연주는 마치 천상의 소리로 어린 니체에게 각인되었다고 한다.







1889년 별이 빛나는 밤에, 세레미 정신병원에서 고흐의 작품



니체과 빈센트를 함께 놓고 그들의 인생과 작품들을 보면 정말 예술과 철학, 철학과 예술은 하나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그들의 먼발치라도 닮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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