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우호의 시대를 그리면서
나는 학벌을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학벌도 아니다. 하지만, 자랑하고 싶은 석사학위가 있다. 상하이 교통대 MBA 석사인데, 그 이유는 상하이의 나의 동문 친구들 때문이었다. 우리는 40대 전후에 만나서 지금 모두 50대 중반이 되었다. 어떤 친구는 무려 10년 만에, 또 다른 친구는 15년 만에.. 그렇게 동창회 모임 같은 나의 친구들.. 고맙고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MBA를 공부하고 졸업하였을 때 그 시절 모두가 젊었다. 지금은 중년의 인생 어쩌면 절정의 한 시대를 살아온 친구들이다. 국경을 넘어서 한국에서 온 나를 반겨주는 중국 대륙의 친구들이 고맙다.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그때 나는 한 기업체의 중간 관리자였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중국대륙에서 만났을 때, 우리 모두 사회에서 성장한 기업체의 최고관리자들, 최고 컨설턴트가 되었다. 사업가로 크게 성장한 친구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꿈들이 이루어가지기에 우리의 젊은 시절의 만남들이 더욱 소중해진다. 중년에 그 꿈은 우정이 되기에 더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 왜냐하면 각자의 꿈을 위한 삶이었기에 그것이 더욱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장년을 예찬>하는 글을 그의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남겼다. 나의 중장년은 우선 현역이다. 용감한 청년정신도 있지만, 노년의 노련함도 있다. 무엇보다도 진실한 마음으로 내면의 성장을 중요시하고 있다. 청년시절에 부족한 내면의 성장을 다스리고 성장시키는 공부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한 중년이다.
전 세계 여행을 하고 돌아온 린다, 그녀는 늘 총명하였지만 오늘 다시 만나니 여간 원숙해진 것이 아니다. 가장의 역할과 한 기업체의 GM(총경리)으로 최고경영진이 된 Alex, 그의 가족이 호주에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꾸준히 연락하였던 나의 친구, Jim 2주 전에 상하이 와이탄에서 만나서 칭다오 맥주를 우중카페에서 즐겼는데, 이제 그의 사무실 그의 동네에서 만나게 되었다. Jim이 걸어온 인생은 늘 나에게 영감을 준다. 그는 사업가로 성공한 우직한 친구다.
우리에게 우정이 무엇일까? 우리에게 우정은 세상을 헤쳐나갈 젊은 시절의 용기와 끈 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외국인 친구, 나에게 그들은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그들로 인하여 나의 중국대륙 생활은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끈이 중년의 시대 국경을 초월하여 연결시켜 주고 20년 지속된 우정이 된 것이다.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은 그 끈은 서로에 대한 용기도 되었다. 내가 다시 그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내가 살아온 인생에 조금이나마 용기가 있지 않는가! 부끄럽지 않았는가? 스스로 캐묻게 되는 것이다.
그 친구들과 식사를 함께 하고 술 몇 잔을 나누는 연회는 즐겁고 행복하였다. 대부분 영어를 사용하는 우리들에게 중국어도 친밀한 언어였고 나는 영어와 중국어를 배운 것이 이런 우정의 향연에 큰 은총의 촛대가 된 것이다. 늘 세계시민으로 살고자 했던 나의 바람이 중년에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상하이는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MBA석사를 졸업하였고, 또한 중국의 최고 지능과 성공한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된 곳이다. 원탁의 식탁에서 그들에게서 배운 것들을 마치 심포지엄처럼 정리하여 보게 된다.
린다 :
90이 되신 엄마는 탁구선수 출신이셔. 이번에 로마에서 열심 세계탁구대회에 참여하셨고, 나는 그 세계탁구대회의 중국 쪽 위원으로 참가하였지. 세상에 100세가 되신 다른 나라분이 그 탁구대화에 참가하셨어. 정말 탁구로 세계가 교류하는 것이 참으로 보기 좋았고 자랑스러웠지.
진져 s :
세계 각국이 모이면 아시아 국가들끼리 모이는 것이 자연스럽지. 예를 들면, 한국, 중국, 일본이 서로 한 테이블에 앉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물론 서로 침략한 역사가 있지만, - 중국, 일본 사이의 역사 – 그래도 이웃국가들이 서로 이해가 높지 않은가! 서방국가들이 아시아 국가들을 낮추어보는 것은 정말 안될 일이야.
중국은 서방국가들에게 좋은 투자가 되고 있어. 물론 미국에 비해서 특히 IT분야에서 아직 중국의 힘이 모자라다는 것을 많이 깨닫게 되었지. 그렇기에 아시아 국가들이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네.
짐 :
나는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헌터(Hunter)가 되라고 했었지. 동시에 농부(Farmer)가 되라고 하고 싶어. 헌터가 되어 날아가는 새라도 잡을 수 있는 세일즈 능력과 고객관리가 필요하지. 동시에 땅을 파고 흙을 파헤쳐서 씨앗을 뿌리고 가꾸라고 하고 싶어. 그렇게 결실이 맺고 수확이 될 때까지 농부의 마음으로 일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어.
상하이의 파트너 공장의 작업자 반장은 이렇게도 내게 말을 건네었다.
공장 작업자 대표 반장 :
한국에게 미국은 큰 형님 아니오? 그렇게 모셔야 하는 것 아니오?
이 어처구니없는 상하이 공자의 중국인 작업자 반장에게 대꾸하려고 하였으나,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이러한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이 아니었다. 중국인민들은 그렇게 중국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교육을 받아온 것이고 실제로 한, 미국의 맹방관계를 중요하니까 부인하고 싶지 않다. 다만, 미국이 큰 형님으로 깍듯이 모셔야 한다는 해석은 지나치다. 우리는 모두 우방국으로서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서로의 우의와 이익을 존중해야 하는 관계일 뿐이지 무슨 형님 나라 같은
고대 근세 국가들의 외교관계를 있을 수 없는 현대의 이야기이다.
역시 외교와 국제관계를 아는 상하이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일반민중과의 표현 방법은 차이가 있다. 더불어 그들 모두 이웃국가 중국인들이기에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최고의 지성인 중국대륙의 친구들과의 우정을 가지고 살 수 있어서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