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공부의 이유들
나는 왜 그토록 인문학 공부에 빠졌는가? 돌이켜 봅니다. 기계 소음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결론이 방망이로 머리를 치게 됩니다. 기계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기계 소리에 귀가 막히지 않기 위해서 그리도 인문학에 매달리게 되는가 봅니다. 공장의 부속품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 그토록 인문학 탐구에 애절하게 갈구하게 됩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류의 구원자, 레오가 깨어나면서 매트릭스 바깥에 진짜 사람의 삶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에서 우리 모두 충격적인 카타르시스를 만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공장의 일터, 기계들과 사람들의 매트릭스 세상, 그곳은 시끄럽습니다. 24년 기계음을 들었지만 귀가 먹먹합니다.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새벽에야 알게 되었답니다. 오늘 밤샘근무의 날입니다. 한국인 관리자로서 베트남 사람들의 일터를 감독하는 일이지만, 어찌 보면 작업자들과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국적의 차이를 떠나서 공장이라는 거대한 시설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귀가 먹먹하였던 것을 잠시 잊었지만, 기계음을 넘어서는 벽, 울타리를 넘어서 고요가 그립습니다.
기계를 조작하는 작업자들을 지켜보면서 그 소음에서 하루를 일해내는 모습에서 일터의 우리들이 진짜 삶인지, 일터 밖의 우리들이 진짜 삶인지 늘 되묻게 됩니다. 밤새워 일하는 작업자들 곁에 나의 모습에서 기계설비 주변에서 감독하면서 일하는 내가 진짜 모습인지, 일터 밖의 나를 만나고 싶은 욕망에 혼돈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일을 해야 하고 싶은 꿈도 꾸게 되는 것이지요. 일터는 내가 꿈꾸게 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니까 일터 작업장의 나도 진짜 모습이겠습니다.
일터의 소음이 활기차게 들릴 때도 있습니다. 기계와 사람의 작업이 손발이 맞아서 절도 있게 돌아가는 컨베이어의 기계음들이 경쾌하게 들릴 때가 있지요. 피아노 건반의 소리처럼 멜로디는 없지만, 나름대로 장단이 울리는 기계음이 타악기 정도는 연주하는 것 같은 착각에도 빠지게 된답니다. 초점이 강조되는 조명이 들어오고 때로는 뜨겁게 열기가 전도되는 기계시설들이 사람들을 찰싹 붙어 떨어지지 못하게 합니다. 작업자들이 마치 부품처럼 기계설비의 한 개 공구처럼 조화 있게 기계음들을 조율하는 것을 대량생산 체제의 효율이 됩니다.
새벽이 밝아오면 공기마저 여유가 생깁니다. 밤샘근무에 지칠 때쯤 깨어나는 새벽은 고요와 평화입니다. 기계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야근 철야반 작업자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매트릭스 세상처럼 짜인 각본대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잠시 눈을 뜨고 귀를 엽니다. 퇴근길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때야 나는 기계가 아니고 사람이구나, 깨닫습니다. 무대의 각본대로가 아니고 자유여행객이 되어 훌훌 떠나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잠시 고요함을 맛보고 침대에 눕습니다. 새벽이 달콤하고 새벽잠은 더욱 달콤합니다.
밤샘근무는 철학자가 되고 예술가도 되게 합니다. 소음이 싫다면 새벽의 공기를 마셔보세요. 그곳에 고요와 평화가 있습니다. 새벽에 깨어난 사람에게만 선물이 되는 조요한 음악이 있습니다. 그 음악은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마법입니다. 여성 보컬의 부드러운 음성이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그 음악은 새벽이 주는 위로의 평화입니다. 밤을 새워 일하고 맞이한 새벽이 보내는 응원, '고생하였습니다', 그렇게 응원해 봅니다. 밤샘근무를 해본 자는 쉼이 주는 행복을 품게 됩니다. 그렇게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열심히 깨어서 일하다 보면 찾아오는 새벽입니다.
밤샘을 통해 얻는 것은 소음과 고요의 대비에서 사람을 만났습니다. 기계 설비에서 일하는 사람들 속에 소음 한가운데 나, 새벽의 공기를 통해서 만나는 고요함 속의 나, 이렇게 절대 대립 속에서 깨닫게 됩니다.
24년 이렇게 살아온 공장의 일터이기에 더욱 사람에 대하여 탐구하게 됩니다. 기계를 다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인간적입니다. 기계 소음에서 사람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귀청을 찢는 시끄러움이 멍멍하게 하지만, 그 소음을 벗어나면 평화가 있음을 감사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글을 만나고 인문학 공부를 합니다. 내가 그토록 집착하는 인문학 공부는 진짜 나를 만나고 인류 문명사의 사람을 만나는 작업입니다.
고요와 평화가 주는 위로가 새벽에 깃듭니다. 그곳에 기계 소리는 더 이상 없었고, 나라는 영혼만이 피로한 몸을 이겨내고 이 글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참에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의 빛줄기가 그렇게 나를 응원합니다.
이 새벽의 빗줄기가 공장 기숙사 창문에 맺힙니다. 창문에 비춘 세상이 진짜일까, 아니면 창문 밖의 세상이 진짜일까? 잠시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창문 틀을 보지 않았다면 구분할 수 없었을 겁니다.
창문 틀을 벗어나서 매트릭스 세상을 벗어나서 온전히 나를 만나는 고요한 새벽의 평화와 위로가 고맙습니다. 기계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지만, 기계로 조작되는 일터이지만 결국 이 새벽 햇살이 동터오는 이 시각 이 순간만은 오롯이 진짜 고요한 나를 되찾게 됩니다. 기계 소음으로 가득한 일터를 넘어서서 인간을 생각하는 인문학 작가로 배우고 익히며 살아가는 길이 숙명이라고 믿어봅니다.
요즘 구상하며 쓰기 시작한 소설의 주제를 생각하면서 매트릭스의 세상을 적어보았습니다.
이 주제의 인문학적 소설을 언제인가 꼭 출간하기 위해서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기계 소음에서도 사람들의 소리가 섞인 그 소음에서도 반드시 사람을 발견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창틀에 비친 새벽이 매트릭스 세상이 아니고 그 안에 진실한 사람의 정신이 담겼다고
힘을 주어 피로한 눈길을 쏘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