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내가 편집, 창작할 것
" 아침 강연에서 : ' 나는 편집된 데이터의 축적물이다.' '이 시대는 잡지처럼 창조적으로 편집된 정보의 홍수다' 나라는 존재에 대하여 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메시지를 많이 전달해 주셨습니다.. 중국 출장 중인데요.. 카카오톡 메시지, 네이버 카페 블로그, 브런치 모두 차단시킨 중국정부의 편집 영향력에서 그나마 줌은 잘 연결되어 다행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중국 출장 중 줌강연 참가 메모..]
중국 출장에서 남긴 메모를 찾았다. 그때 한국의 앱들이 모두 차단되었는데, 줌을 열 수 있었고, 줌강의로 한국과 연결, 참여할 수 있었다. 그때 '편집'이라는 단어와 '창조'라는 단어에 꽂히면서 한 달 만에 이 글을 찾아서 완성한다. 2달 동안 중국 출장을 거의 4주를 다녀왔는데 한국의 앱들이 작동되지 않는 편집의 세상에서 섬처럼 홀로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해방감을 주었다. 중국에서 쓴 글들이 온라인에서 살아나는 쾌감을 이 글에 창조하는 것이다. 국가도 거대한 세력도 우리들 각자의 글과 삶은 누구도 편집할 수 없어야 하지만....
<편집의 시나리오>
세상은 거대한 세력이 편집한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조물주에 의해서 태초에 편집되었을 것이다. 그 이후 외계지능인에 의해서 다시 한번 변형된 유전자의 인간으로 2차 편집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은 보통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수준의 편집이 아니다. 그런 수준의 편집은 지구촌 수준의 신화적인 편집이니까 잠시 접어주고 싶다.
인류의 역사는 국가 차원의 편집이고 초국가의 거대한 세력에 의한 편집일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프리메이슨이라는 18세기부터 성행한 현존하는 조직도 있다. 나는 중국의 국가 조직에서 편집된 세상에서 며칠을 보내고 왔다. 그 세상에는 한국을 경쟁 국가로 인식하고 한국으로 통하는 모든 앱이 중국에서 통할 수 없게 차단한 것이다. 그것이 곧 편집된 세상이었고, 정보가 차단되어 고립된 세상이었다. 세상은 이렇게 차단되는 것이 과연 옳은 방법일까? 정보 소통에 고립된 그 며칠간 몹시 놀라면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가족 간의 SNS 메시지 연락도 두절되니 세상은 중국어로 작동되는 세상으로 쪼개져서 내가 살아온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으니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편집된 세상에서 살 수 없었던 이유는 온라인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었던 것이 가장 컸다. 내 블로그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블로그 예약 발행에 의존해야만 하였다.)
헤르만 헤세는 1차, 2차 세계대전의 전쟁 발발 당사국이자 침략국인 독일에서 철저하게 편집되었다. 그의 작품의 출간도 그의 조국에 대한 호소의 글도 모두 차단되어 조국 독일은 그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은둔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혹독한 국가적 편집에서도 그만의 문학, 사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을 절대 그만두지 않았다.
단테는 조국 피렌체에 의해서 추방당하여 20년의 세월 동안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망명 도시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조국의 정치세력은 그를 추방하였으나 그가 돌아오는 조건으로 정치적인 타협을 요구하였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단테는 결국 그리운 피렌체를 그리면서 <신곡>을 통해서 그들을 징벌하였다.
정약용 선생님도 18년 유배생활에서 정권에서 배척되어 편집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학문과 글쓰기, 책의 집필을 통해서 짧은 정권, 근세의 조선을 넘어서는 위업을 남기었다.
위인들은 오히려 편집된 세상에서 글을 쓰는 것이 그들의 위대한 해방이고 걸출한 작품을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창조의 시나리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스위스 망명지에서 스위스 국적을 얻으면서 그의 세상을 창조하였다.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그의 사상과 세계시민적인 정신문명을 완성하였다. 헤르만 헤세의 예술작품 - 그림, 시, 소설은 곧 그의 탈 권위적인 동방, 서방을 아우르는 문명의 복원이었다. 성장소설들은 모두 그의 철학적 소신을 완성해간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창조한 인간의 모습이 주인공이었다. 노벨 문학상의 소설 <유리알 유희>는 동서양을 포괄하는 정신문명의 유토피아를 창조하였다. 누구도 헤세의 세계관을 편집할 수 없었다.
르네상스 시대, 단테를 비롯한 또한 마키아벨리 또한 추방당한 그들의 삶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창작하였다. 그들은 절대 그들의 신념과 용기를 꺾지 않았다. 그렇기에 위대한 작품들이 독창적인 그들만의 창작 정신으로 위대한 인류의 유산을 남길 수 있었다.
그날 밤 출장 중 중국의 상하이 호텔방에서 CCTV 중국 국영방송의 역사물 다큐멘터리를 감상하였다. 그 시대는 춘추전국시대의 공자와 장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공자는 자신의 뜻 - 자신의 세계관을 그 시대의 나라들에게 펼쳐 보이려고 하였으나, 아무도 그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국가를 그에게 맡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군자였고 실망하지 않았다. 그의 세계관은 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피가 난무하던 그 군벌의 시대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즉흥적인 편집 사용을 불허 되었다. 그의 사후 한나라에 이르러서 그의 유교적 가치관이 국가적으로 숭상되고 국가 시스템의 편집에 적극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에 반하여 장자는 민중으로 파고들었다. 노장자의 사상도 국가경영을 위한 조언의 사상이었으나, 국가 경영자들보다 민중에게 오히려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민간 사상으로 유가, 법가 등과 대립하였다. 민중은 국가에 편집된 할당된 삶에 괴로웠을 것이다. 백성들 - 힘없는 국민들에게 현실의 삶을 치유할 만한 철학적 대안으로 국가의 편집 없이 노장사상이 종교가 되었던 것이다.
편집된 세상에서도 굴하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러한 창조적인 작업이다. 이는 초거대 세력의 편집에도 굴복하지 않고 나만의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글을 감수성으로만 적어내는 것은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감수성으로 편집하고 외골수로 감정의 언어에 고착되고 싶지 않다. 나의 글은 그렇기에 인문학적인 대명제로 아무에게도 편집되지 않는 사상을 담고 싶다. 동서양과 수천 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글이 되고 싶다. 그렇기 위해서 중국을 공부하고 서방의 문명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시민을 지향하는 한국인 작가로서 편집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살아내고 싶다. 그것이 당장은 요원한 것일지라도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만의 인문학적 세상을 편협 없이 편집 재창작할 것이다.
사람은 일생 동안 살아내면서 나만의 세계에 온전히 몰입되어야 하고 누구에게도 편집되지 말지어다. 그것이 각자의 삶이라는 창작물에 감독이 되고 주연이 되는 일이다. 나의 삶은 내가 편집할 것이다.
<중국 상하이 출장 중 호프맨작가의 깨달음>
누구도 나의 인문학 탐구생활, 글쓰기를 편집할 수 없다. 나만의 창조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