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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수필> 소박한 산책길에서 꿈꾸는 시인 철학가

시인과 철학가의 마음을 산책길에서


스무 살 국토종단을 실행에 옮긴 그 시절 나의 두 다리와 두 발이 튼튼한지 알았다.


그때 그렇게 착각하였던 것이 군대에서 두 발이 보통 사람의 것과 달리 허약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발병을 현대의학에서 판명 받았다. 발병 전문의로부터 아치가 약하다는 것이다.


통풍도 두어 번 앓았고, 쉽게 피로가 오는 발병을 온몸이 느끼게 된 중년이다.


그 뒤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걷는 방법을 익혀갔다. 무리하게 걷거나 달리는 것을 주의하였다. 대신에 느리게 걷는 산책길에서 꿈을 꾼다. 시인과 수필가, 철학가의 마음을 닮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일터의 저녁시간, 소박하고 작은 산책길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보물찾기 시간이 된다.


흙냄새가 났고 불쑥 튀어나오는 두꺼비도 만날 수 있었다. 그 산책길은 수염을 휘날리는 듯한 나무들이 깃발처럼 나를 환영해 주었다. 날마다 저녁 7시경 산책길은 일터에서 나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다. 여름나라이지만 저녁 바람은 살랑거리고 다정하다. 좀처럼 시원하지 않은 여름나라의 햇살이 달빛에 숨어들어간 시간이 그렇게 고요함에 휩싸이면 1백 미터 산책길은 나만의 것이 된다. 그 산책길에서 남몰래 멋대로 큰소리를 외치면서 시를 읊고 또 철학적 사유를 소리 내어 웅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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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래 걷지 못하는 두 다리 두 발이지만 산책길에서 두 발 두 다리는 새롭게 태어난다. 나의 보물 중에 하나는 일터의 울타리 안 멀지 않은 그 1백 미터 산책길이다. 내 다리 내 발에 꼭 어울리는 작은 길이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이 도보여행을 하는 것을 자주 그렸다. 그렇게 며칠 두 발도 걷고 또 걷는 여행길에서 그는 자연을 만났다.




나의 작은 산책길은 고작 1백 미터밖에 안되었다. 고요한 밤길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거리다. 그나마 그 1백 미터의 거리가 보전된 것이 다행이고 기뻤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포장하고 시설을 확장하는 바람에 온갖 소음에 젖어버린 산책길을 제외하고 재어본 거리였다. 6개월 전에 3백 미터의 산책길이 반의반 토막이 나버렸지만, 나는 1백 미터의 산책길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그 행복감은 소리 내어 생각을 떠들어댈 수도 있었다. 그 산책길에서 시를 읊을 수도 있고 떠오르는 글감을 메모할 수도 있다. 산책길에서 시인의 마음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무도 무책임하다고 확신하게 된다




왜 소크라테스가 수많은 후대 철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오늘날 전혀 관계도 없는 동방의 한국인 중년 남자에게 감동이 되는지 골몰하게도 된다. 그 산책길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부끄럽지 않고 어떤 글을 쓸 것인지 창작의 불씨를 지피게 된다. 나에게 1백 미터 산책길은 창작의 뮤즈이고 영혼이 맑아지는 제단이다. 그곳에서 하루의 피로를 씻기고 하루의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린다. 온전하게 나의 본성으로 돌아오는 묵상의 시간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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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퇴근시간이면 홀로 1백 미터 산책길로 숨어든다. 숨어들지만 나의 영혼이 솟아나는 시공간이다. 그리움이 밀려들지만 하루를 완성하는 그 시간에 대견스럽게 스스로 칭찬하는 1백 미터다. 나에게 이 산책길은 하루 종일 욕망이 되지만, 그 욕망은 가난한 자의 조그마한 소망의 길이다. 가난한 자라고 하는 것은 럭셔리 호화로운 리조트의 헬스장(체력단련실)이 아니기에 스스로 위로하는 나만의 언어이다. 물질적인 세상에서 가난한 산책길이지만 그 소박함에 마음은 부자로 다시 태어난다.




중년의 나이에 1백 미터 산책길은 국토종단의 꿈과 비교는 안되지만 날마다 주어지는 행복이다. 백두 산맥의 산봉우리처럼 근육질의 대자연만큼 웅장하지 않지만, 날마다 은총을 주는 소박한 행복이다. 그 행복은 돈으로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건강이라는 세례를 육체와 영혼에 보듬어주는 소중한 순간들이다. 달릴 수 없어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충만한 1백 미터 산책길이 나의 보물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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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 산책길의 보물창고는 시인의 마음을 갖게 만든다. 시인은 볼 수 있는 것도 볼 수 없는 것도 사람들이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전해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곳 산책길에서 만나는 풀잎, 잡초들이 살아있는 생명들 모두가 아름답고 나의 마음이 그곳에 함께 하기에 행복하다.



왜냐하면 이 산책길의 보물창고는 이 생애의 한 존재로서 나를 인식하게 해준다.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아가지만, 나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갈팡질팡 될 것이다. 나는 나의 갈 길을 정했다. 인문학의 학도로서 인문학 작가로서 여생을 살아갈 것임을 누구보다 나 자신이 확신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이 소박한 산책길은 시인의 마음도 철학가의 마음도 믿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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