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작가 호프맨작가의 중국 진출 준비중에서
상하이에 주말부부로 10여 년 살았었습니다. 물론 루쉰공원-훙커우 공원의 루쉰과 인연을 생각하게 됩니다. 상하이의 친구에게도 루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던 적이 기억납니다.
16년간 중국에서 주재 근무할 시절, 상하이 훙커우공원의 윤봉길 의사를 만나러 간 경험이 있는데요, 그때, 그 공원이 바로 노신공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중국인들이 노신(루쉰)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루쉰의 인생 여정이 곧 오늘날 중화민국의 정신적인 기초의 일부를 만들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대 중국의 국민 작가, 루쉰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게 됩니다.
루쉰(1881~1936)은 100개 이상의 필명으로 - 그를 숨기려고 했을 겁니다. - 반정부 논객으로 중국인 정신개조를 위한 펜의 전사로 유명합니다. 그는 중국의 전통문화를 부정하고 노예근성, 패배 근성을 가진 중국인을 개조, 개심하려고 - 정신승리를 위한 인간 개조의 화두를 들고나왔습니다.
그가 일본 유학시절 목도한 사건, 중국인들이 처참하게 일본군에게 학살되는 사진 기사 자료들 그 장면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인들이 변하지 않으면 망국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를 글에 담았습니다.
루쉰은 근대/현대 초기의 중국병을 아Q라는 인물로 묘사하여 아Q정전이라는 걸출한 기행의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절대 아Q처럼 되어서는 안된다는 중국인들에게 호소한 소설이지요. 물론 세계사 세계적인 시각에서도 근대의 시민정신, 국민정신에서 반드시 깨우쳐야만 하는 정신개조로서 자성의 목소리를 소설을 통해서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그렇기에 국민 개조, 국가 체계의 완전한 탈바꿈을 통해서 중국은 봉건, 전통의 틀을 깨고 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겁니다. 오늘날 중국식 공산주의가 더 문제가 아니라 독재주의가 훨씬 더 문제일 겁니다. 하지만, 그전에 중국 근대의 청왕조가 무너진 그 시절, 루쉰은 중국병의 모두 깎기로 노예근성을 제거하고 보편적인 현대적 인간형으로 개조하려고 하였던 그의 노력만은 인정해야 할 겁니다.
아Q정전은 중국의 최하층, 날품팔이 농민이었습니다. 20세기 초 중국의 농민들이 그렇게 정체성에 휘말렸던 것이 어쩌면 1911년, 중화민국 -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의 탄생으로 중국 인민들을 깨어나게 되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루쉰은 아Q정전의 배경이 된 신해혁명마저도 변한 것이 없다고 하였고 그의 혁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21세기의 중국 농민공들의 도시 이주 노동이 또 다른 아Q를 낳는 것이지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제 루쉰이 외친 20세기 초 중국은 개조 혁신은 21세기 다른 나라에도 아직도 화두를 던지고 있지요. 특히 21세기 독재국가의 국민들은 살아갈 방향조차 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복지국가가 아닌 중진국의 함정인 도심의 슬럼가에서 꿈을 찾으려는 아Q같은 인물들이 혁명을 갈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시민의 문제라도 질의응답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질과 본성이 좀 더 잘 살기 위한 욕망과 꿈을 꾸는 존재인데, 아Q에게만 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구경꾼이 되어서 아Q같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할 만한 자격이 있을까요?
루쉰이 정치적인 사상가 문인으로 공산주의 -모택동이 신격화한 이유 -의 지지자로 전락한 것을 문제 삼기 이전에 그의 인간 개조에 대한 탐구와 문인으로서의 필생의 노력에 감명을 받게 됩니다. 문인의 관심사는 결국 인간과 사회이고 문명이 아니겠습니까! 루쉰의 시대, 우리나라의 문인들도 그러한 고민에서 글을 적었을 겁니다. 격동의 시대 문인들, 사상가들의 고민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의 삶은 좀 더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각성하고 자각하면서 자신의 본성과 소중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루쉰 같은 선각자들이 혼돈의 시대를 극복하려고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해 글의 힘을 사력을 다해서 활용한 점을 평가하고 인정해야 할 겁니다.
지난달 상하이 출장에서 돌아왔습니다. 이번 출장 목적 중에 한 가지는 상하이의 제1 유명 출판사에서 저의 인문학 교양서 책 <스니커즈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을까>의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저자 미팅이었습니다. 루쉰의 노력과 그의 작품들 탐구를 한 사람으로서 중국과의 좋은 인연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