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보다 못한 어른들의 용기를 생각하면서
일요일이면 이 공원이 커다란 유희가 된답니다. 눈을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예쁜 초록 빛깔의 이 공원을 거닐면 한없이 평화로와지는 것을 온몸이 느낍니다. 우기 중인 베트남의 여름나라는 우중 공원의 아름다운 물웅덩이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곳을 지나치려다가 한참을 서서 글감이 떠오르는 것을 부여잡게 됩니다.
그 순간 나의 용기 없음을 비웃는 두 아이가 그만 물웅덩이로 풍덩 빠져들고 맙니다.
그 남매 아이들에게 초록 공원의 물웅덩이가 어느 곳보다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지요.
풀잎문화센터 풀잎사랑의 공원에 모두가 초대되는 순간입니다.
그저 물웅덩이의 풀잎들을 바라만 보고 관찰에서 좋은 즐거움을 느끼던 어른과 아이들은 행동부터 달랐습니다. 아이들처럼 그 물웅덩이에 발을 담굴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겁니다.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발이 담긴 촉감의 느낌은 확실히 다를 것이었는데, 그럴 용기가 없어서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아이들에게서 어린 시절 산골소년의 동심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저 아이들보다 좀 더 큰 초등학교 1,2학년 때까지도 산골에서 아이들과 이리저리 헤치고 다니던 그 추억이 기억납니다. 그때 개울물에서 수영하고 첨벙거리던 그 산속의 추억들이 얼마나 즐거운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었는지 잊히지 않습니다. 대자연은 이렇게 우리들의 놀이터였고 우리의 동심 속 네버랜드였지요.
그때 심지어 초등학교 저학년의 두 형제가 똘똘 뭉쳐서 초등학교 고학년의 형을 물리친 적도 있었답니다.
미국에 살기에 더욱 그리운 나의 하나뿐인 형제 동생이 그리워집니다.
지금 저 남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그렇게 서로 그리워할 때가 있겠지요.
큰비가 풀잎들을 잠기었습니다. 물웅덩이에 수초가 되어버린 풀잎들은 그대로 시원한 샤워를 온종일 즐기게 되어 즐거운듯하였습니다.
저 풀잎들은 태생이 사람들의 영혼과 다르게 자연이 주는 대로 받아들이는데 장인입니다. 사람들은 자연을 꺾으려고 하고 인공적으로 재창조하는데 달인지요. 저 연약할 것 같은 풀잎들은 대자연의 형상 - 비바람과 함께 호흡하는 영혼을 갖고 있습니다.
그 풀잎들이 잠긴 물웅덩이는 상습적으로 그렇게 비만 오기를 기다렸다가 수초로 변합니다. 저지대의 수초들은 물웅덩이에 더욱 생명력을 갖게 되기 마련이지요. 높은 땅 위의 풀잎들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물 안에서 쾌적한 샤워를 온종일 즐기는 대지의 생명력을 한껏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러하니 아이들까지 쉽사리 유혹하여 저리도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하는 겁니다.
그 물웅덩이 안에 물벌레들이 뛰어다니는 물의 천국을 창조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세계에는 기껏 하여 수영장을 만드는 것인데, 자연의 세계는 이렇게 온갖 생명체들이 함께 동거하는 물의 천국이네요.
저 물의 천국에서 생명을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풀잎들이 작은 천사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장마철 여름나라의 일요일, 여름나라의 초록공원은 언제나 그 자리에 비로 만든 물웅덩이가 생긴답니다. 그 물웅덩이는 자연의 창작물 연못이 되어 수초들이 자랍니다. 집 앞의 공원에서 행복한 시간 아니 커다란 동기부여를 받았습니다. 수초들이 저렇게 열심히 영감들을 주는데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처럼 용기를 갖고 도전하려고 합니다. 기회를 찾으면 포기하지 않고 기꺼이 물웅덩이에 발을 담가 보겠습니다. 어린 왕자처럼요.. 호기심의 시선으로 세상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글을 적겠습니다.
일요일 오랜만에 홀로 공원에서 행복한 쉼을 가졌습니다. 그 쉼은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겠습니다. 비웅덩이에 기꺼이 빠지는 아이들처럼요. 어른 왕자라도 되어 동심을 되찾고 싶은 순간들입니다. 동심을 갖고 살면 세상의 모든 것이 친구가 됩니다. 시심(詩心)과 동심(童心)은 한 뼘 차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