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힘으로 종교관을 가져야..
존 그레이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베스트셀러의 저자이다. 그는 마하리시의 <초월의 길, 완성의 길>이 그의 최고 인생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영성의 힘에 대한 책이고 존 그레이는 그 힘을 완성의 길이라고 믿었다.
임마누엘 칸트는 종교, 크리스도교를 믿었지만, 신을 철학적으로 증명하는데 그의 탁월한 철학적 사유의 논리를 펼쳤다. 존재론적, 우주적, 자연신(자연법칙) 적인 논리를 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읽게 되면 정말 감명을 받고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신을 믿었지만 교회의 모임에 참가하지 않았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종교적인 영성의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한술 더 뜬다. 그는 목사, 선교사 가문의 전통을 이어야 했지만, 인도의 불교에 심취하고 그의 신앙이라고 고백하였다. 물론 그가 불교신자라는 것이라기보다 불교의 철학과 사상을 신앙처럼 공부하고 유희를 느꼈다는 간증이었다. <싯다르타>에서 그의 불교철학의 정수가 담겨있다. 하지만 그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통해서 크리스도교의 종교에 대한 그의 철학과 세계관을 담았다. 헤르만 헤세가 믿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신의 음유 시인, 가난한 자들의 대변자였던 성 프란체스코의 신앙으로 해석한 그의 감동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동방과 서방의 종교를 모두 아우르는 헤르만 헤세가 나의 안내자이다.
상기 기술들의 공통적인 것은 영성의 힘을 믿고 싶고 훈련하고 싶게 만드는 지점들이다.
이어령 선생님이 노년에 들어서서 기독교로 개종, 아니 기독교인으로 세례를 받은 신앙인이 된 것에도 감동을 받게 된다. 나는 고요한 사찰을 공경하고 사찰 앞 불상 부처님께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사람이다. 더불어 성당의 성스로움 앞에도 기도를 올리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독실한 종교인들에게 혼이 날지도 모르지만,
영성의 힘은 종교의 힘이고 그런 힘은 특정 종교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성의 힘은 동방, 서방의 종교에서 가르침을 받는 나의 영성을 깨우치는 잠재력의 동기부여 같은 것이다.
니체에게 자라투스트라는 하나의 종교가 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철학적 신념이 강하지도 않지만,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자신의 영성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힘을 성장시키는 것이 하나의 과제라도 믿는다. 그렇기에 20대에 만난 자라투스트라에게 중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감명을 받게 된다.
그는 '신이 죽었다' 선언하였지만,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였다.
누군가 물어보면 '당신의 종교는 무엇인가요?'
'불교와 기독교'를 모두 공경합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건방지고 오만한 것이리라.
하지만 나를 속이고 싶지 않다. 나의 영성은 종교의 가르침 더하기 채널링의 힘, 상상의 힘, 시크릿의 힘과도 같은 것이다. 절대 오해하지 마시라! 사이비 종교인이 아님을 부디 이해하여 주시라!
사이비 종교인은 다른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을 속이고 강요하며 광적인 의식을 치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나의 영성은 혼자만의 것이기에 누구에게 설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감성과 지성, 이성의 시대를 성장시키면서 영성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아직은 젊기에 영성에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지구촌의 대자연을 만나면서 시인이 되고 싶은 것과도 같이 조물주의 창조와 조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시심도 일종의 영성의 힘이 아닐까!
찰스 다윈은 처음부터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그는 기독교 신자였으나 그의 사랑하는 자녀가 일찍이 죽게 되자 그의 마음은 무신론자로 돌아서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진화론을 연구하고 집필한 것이 그의 가정사 배경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
또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진화론을 믿는다. 하지만, 꼭 원숭이에서 사람이 진화된 것이 100%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지성과 이성은, 사람의 영성은 오늘날 AI의 생성형 지성을 창조한 만큼 정말 대단한 창조력이 아닌가! 그러한 사람의 영성이 곧 신의 터치가 아니면 정말 가능했을까도 싶다.
공부하고 훈련하고 단련하는 과정은 이성의 깊이나 영성의 그것이 같은 프로세스다. 훈련 없이 절대 영성의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믿든다. 그럼에도 나이 들면서 깊어지는 것은 영성이어야 한다. 앎이란 영성의 깊이에서 오는 지혜에 비해서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겸손해진다.
영성은 종교를 포함하는 지혜의 힘이라고 믿는다. 나이 들수록 영성의 힘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문화적 발달을 거치면서 AI 시대와 관계없이 여전히 인간에게 그 중요성이 부각된다. 신성, 초자연적 존재, 자연, 우주 혹은 인간 존재를 뛰어넘는 다른 신성한 영역 간에 초월적인 실존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 종교라는 말은 점차 영성이라는 용어로 대치되는 문화적 풍토가 조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신과의 교감, 내면의 자아와 상상의 힘으로 연결하는 힘, 채널링의 힘, 제3의 눈이 떠지는 영성의 힘이다. 나이 들면서 깊어진다. 영성은 인간의 내적인 자원의 총체로서,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 타인 및 상위 존재와의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시킨다. 신체, 영혼, 마음을 통합하는 에너지, 존재에 대한 의미와 목적을 주관하게 한다. 당면한 현실을 초월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가지게 한다. 백발이 되면 지혜를 넘어서 영성의 힘을 갖고 싶다. 지금도 기독교와 불교 또 다른 영성의 가르침에서 모두 배우고 익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