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글쓰기로 행복합니다.
쇼펜하우어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변하였다.
철학가의 삶은 수행자의 삶이고 그렇게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은 혼자 있기가 두렵다. 1주일은 견딜만하지만, 주말이면 가족 생각에 혼자 있는 것이 불행하게 느껴지는 것은 정상이 아닐까! 그럼에도 글쓰기의 기쁨은 혼자 있게 만든다. 글쓰기마저 없다면 혼자 있는 것은 정말 고행이 아닐 수 없다.
혼자가 싫을 때 글을 쓴다! 글은 꼭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과 같다. 내면의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고 글을 쓰면서 외면의 나는 내면의 나에게 사로잡혀 버린다. 혼자 있어도 그렇게 두 명의 나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되는 글쓰기는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쇼펜하우어는 철학 하면서 집필을 하였기에 행복하였을 것으로 믿는다. 그 또한 글쓰기를 통해서 혼자 있는 것을 견뎠을 것이다. 생각만 하면 그것이 철학적인 깊이라고 해도 혼자일 수밖에 없다. 글쓰기는 하얀 여백에 대화하는 것이 남으니까 혼자가 아님이 증명되는 것이다.
혼자를 오래도록 즐길 줄 아는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한다. 혼자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혼자서 수행하는 사람은 더욱 못된다. 그러니 수행자들이 가장 우러러보인다. 천성이 나는 혼자서만 지내지 못한다. 그럴만한 이유도 있다.
24년동안 가족들과 언제나 떠나서 일터에서 일해왔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주말에 어느 때는 격월로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집이 그립고 가족이 보고 싶어지는 세월을 쌓아왔던 것이 수행이라면 나의 기막힌 수행의 삶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나를 혼자 있게 만든다. 그나마 글을 쓰면 혼자가 아니다. 내면의 나와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음악 감상을 하는 것과 같다. 음악을 들으면서 충만해지는 것처럼 글을 쓰면서 외로움도 잊게 된다. 비로소 혼자가 됨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글을 쓴다. 혼자 음악을 듣다가 글감이 떠오르면 글을 연주하게 된다. 그 연주는 오로지 나를 찾는 시간이다. 혼자여도 좋다. 그 순간 나의 영혼과 연주를 하게 되니 외로울 틈이 없다. 음악을 감상하면서 글을 쓰면 마치 영혼이 글을 쓰는 감각이 된다. 내 영혼과 더 깊이 빠져들고 혼자만의 세계를 즐길 수 있게 된다. 글을 쓰는 작업은 그렇게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음악의 악기들이 모두 영혼과 대화를 하는 글쓰기 작업과 음악 감상은 이따금 최고의 행복, 쾌락, 유희가 된다.
쇼펜하우어는 베토벤의 음악을 사랑하였다. 그의 취미생활은 애완견과 함께 산책하는 것과 음악 감상이었다. 그 또한 혼자서 철학과 집필을 하는 것이 고독하였을 것이다. 그의 철학에 대한 인정은 말년에서야 이루어지게 된다. 그때까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가 견디고 철학을 집대성하면서 그의 위대한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30세에 출간한지 인정받지 못한 것을 말년에 한꺼번에 전 세계의 환영을 받게 된다. 그가 겪었을 고독한 세월을 철학적 글쓰기의 기쁨에서 채워나갔기에 그는 버티고 견뎌내었다. 삶이 괴롭다고 의지를 결코 꺾지 않고 먹고 자듯 글을 쓰면서 철학하였을 쇼펜하우어를 공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