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발원 도시 피렌체 인문학 여행
피렌체는 하루 만에 다 돌아볼 수 없지만,
그래도 일정 선택을 우선순위로 고른다면 하루 만에도 된답니다.
첫 번째, 두오모 성당 (1 시간) 내부 관광 미포함
두 번째,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다리, 단테의 집 (1 시간)
세 번째, 대형 조각 건물들의 대광장 (1시간)
네 번째, 우비치 미술관 관람 (3시간)
걸어다니는 이동 시간은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 단테의 다리는 그가 <신곡>을 완성하기 위한 뮤즈, 베아트리체를 만난 가장 시작의 공간입니다. 다리 주변에서 다리를 건너면서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게 됩니다. 문학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꼭 권해드리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현대적인 도시들의 넓고 웅장한 다리들과는 너무도 다른 느낌의 고풍적인 다리입니다. 다리 위에서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 - 르네상스의 피렌체 사람들이 살았을 것을 상상하니 더욱더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합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기에 강물은 흙탕물이었지만, 그래도 고풍스러운 르네상스 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피렌체의 아르노 강은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강물의 흐름보다 역사의 흐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키오 다리를 바라보는 정경은 아르노 강을 배경으로 그대로 문학적인 글을 쓰게 됩니다.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간 느낌과 단테의 운명적인 만남, 베아트리체와의 짧은 순간이 그려집니다.
https://blog.naver.com/seolhon/223643620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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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다리 상기 링크 동영상 원본 블로그에서 보셔요>
베키오 다리를 건너편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바라보면 그 느낌이 훨씬 좋습니다.
베키오 다리는 관광객들의 인파와 황금 보석 상점들도 발 디딜 틈도 없었지만,
산타 트리니타 다리는 고즈넉하고 유유자적한 공간에서 주변을 조망하게 됩니다.
산타 트리니타 다리는 1252년에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건설된 후에 홍수로 인하여 수차례 반복되어 복귀 재건설된 다리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영감을 얻어서 건설된 다리이지요.
베키오 다리에서 산타 트리니타 다리를 바라보는 정경은 단테가 살았던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반대로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베키오 다리를 바라보면서 걸어오면 황금 보석들 장식품들이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상점들이 즐비합니다. 현대의 피렌체는 황금만능주의의 세상 오늘날로 귀환하는 느낌입니다.
사실은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났을 때, 그 시절 이 다리들 주변은 고즈넉하였을 겁니다.
그 고즈넉함을 간직하고 있는 비 오는 날, 다리와 다리 사이를 걸었습니다.
르네상스의 대시인, 대문호, 단테가 걸었을 그 거리에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향에서 추방당한 단테가 18년 동안 그리고 1321년 망명 중에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
얼마나 이 다리가 그리웠을까요? 그는 결국 <신곡>을 완성하고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하였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피렌체에서
단테를 떠나기 싫었을 겁니다.
그토록 사랑하였던 베아트리체가
청초한 젊은 나이에 하느님에게로
가버린 것이 싫었을 겁니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하면서
<신곡>을 집필하면서
지옥에 다녀오게 되는 것이
인생의 쓴맛,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애처로운 헤어짐,
마땅한 슬픔의 항로였을 겁니다.
결국 베아트리체가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천사이기를
소망하였을 겁니다.
단테는 <신곡>을 통해서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납니다.
그에게 뮤즈 이상이었던
영혼의 반려자, 베아트리체와 단테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이 어두운 골목길에 관광객들, 여행객들의 발걸음들이 멈추어 섭니다.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입니다. 단테의 젊은 시절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이곳이 기록은 10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285년 또는 1290년에 단테가 젬마 도나티와 결혼한 장소라는 설도 있습니다. 이곳은 확실히 도나티 가문의 본당 교회였고, 단테의 연인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가 속해 있던 포르티나리 가문의 무덤도 여러 개 있는데, 그녀의 유모였던 몬나 테사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 작은 교회는 주로 단테의 교회로 알려져 있는데, 전통에 따르면 단테는 이곳에서 뮤즈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고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단테는 정말 억울했어요. 그가 사랑하던 피렌체에서 반대파 정치세력에게 추방당한 것은 그의 신념에 위배되는 것이었기에 그는 그들과 죽는 날까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고국 피렌체로 돌아가기를 거절했습니다.
그의 작품 <신곡>의 지옥 편에 '배신'한 사람들, '탐욕스러운 자들'을 가장 밑바닥 지옥에 처넣은 것은 그가 억울하였기 때문에 그의 책에서 풀어낸 것입니다.
그는 비참하고 처참한 망명생활에서 피를 토하면서 <신곡>에다 그의 신념을 쏟아낸 것이지요.
그러한 각성의 기회가 불멸의 명작품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단테는 인류 역사에서 별처럼 빛나는, 르네상스 시대 문을 연 대문호로 칭송받습니다. 그가 이룬 문학적 업적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인간에 대한 철학을 신의 시대와 마찰 없이 융합, 부활시킨 것이지요.
<신곡>의 그의 세계관은 지옥, 연옥, 천국으로 이어지면서 죄와 벌, 회개의 기회, 천국의 환희와 영광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는 신과 천사들을 빌어서 현생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지요.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 또 '제대로 살지 못하면 준엄하게 심판'하는 인문학의 최고 고전의 세계관을 신학과 더불어 완성한 것이랍니다. 오늘날까지 앞으로도 수백 년간 단테의 <신곡>은 읽히고 해석되고 깨달음과 통찰의 메시지를 줄 것입니다. 그의 추방 시절 망명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단테(1265~1321)는 분명히 그의 <신곡>의 천국편에서처럼, 베아트리체의 안내로 천국에서 피렌체를 굽어보고 있을 겁니다. 7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가 이 다리들을 통해서 단테의 문학을 기리는 것처럼..
베키오 다리에서 우비치 미술관까지 걸어가는 거리입니다. 건너편에 또 다른 다리에 이르기 전에
그 유명한 피렌체의 우비치 미술관을 만나게 됩니다. 우비치 미술관편은 다음 블로그에서 올리겠습니다.
르네상스가 숨 쉬는 도시, 피렌체의 도보여행은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합니다.
비 오는 날 흐린 날 피렌체를 방문하였지만, 내 마음에 비도 흐린 하늘도 남지 않았습니다.
르네상스적 인문학적 체험이 가득하여 차고 넘치는 행복한 하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가을의 피렌체 현지에서 르네상스 여행기를 담았습니다. 인문학 여행기 계속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