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가 거닐던 아테네의 리케이온
청출어람이 세상을 바꿉니다. 소크라테스가 플라톤 제자를 낳고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 제자를 낳았으니 서양 철학의 두 거장이 어떻게 한 세대에 함께 존재하였을까? 그들의 고전 책들을 공부하는 인문학 작가로서 감동적인 유적지에 다녀왔습니다. 동양인이지만 세계 인류사에서 그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철학이 서양문명의 중요한 뿌리를 이루게 되었으니까요. 오늘날 동양과 서양의 문명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요. 특히 서양의 문명, 철학 사상이 계몽주의를 거쳐서 경험, 합리주의, 그리고 산업화 혁명으로 성공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반드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알아야 합니다. 이는 연암 선생님과 다산 선생님을 알아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류 최초의 동, 서양을 통합한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이었지요. 덕분에 잔혹한 전쟁 영웅이었고 전쟁광이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정신적인 소양과 철학을 갖게 하였기에 헬레니즘 문명과 그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초의 만물박사로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까지 관심을 갖고 글을 쓴 대학자였습니다. 과학적인 체계적인 논문을 집필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하겠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정복전쟁 중에 동방의 신기한 동식물, 책들의 자료를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전달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헬레니즘 문명은 역사상 최초의 동서방의 문명이 융합된 세계시민 문명이었던 겁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비밀의 유적지 같은, 철학가의 학원이 있었던 아테네의 유적지에 다녀왔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학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립한 학원으로, 리케이온(Lykeion) 또는 페리파토스(Peripatos)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아테네인들의 체력 단련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고 공부하는 학원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학원 안에 있는 지붕 덮인 산책로인 페리파토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이 학파는 '페리파토스'(逍遙學派)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플라톤주의자들이 수학에 관심의 초점을 맞춘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은 생물학과 역사에 이바지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리케이온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훨씬 이전부터 철학적 토론에 사용되었습니다. 케오스의 프로디쿠스, 프로타고라스와 수많은 랩소디스트와 같은 철학자들이 그곳에서 연설했습니다. 그곳에서 가르친 가장 유명한 철학자는 이소크라테스 , 플라톤 (아카데미 학원의 창립자 ), 그리고 가장 유명한 그들의 스승, 아테네의 교사 소크라테스였습니다.
군사 훈련과 교육 활동 외에도 리케이온은 기원전 5세기에 프닉스가 공식 회의 장소가 되기 전에 아테네 의회 회의도 열었습니다. 다양한 집단의 종교 의식도 이곳 리케이온에서 거행되었습니다.
리케이온은 그리스 신 아폴로 리케이오스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원래는 리케이오스를 숭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소였지만, 나중에는 대중 운동장이 되었고, 나중에 체육관이 건설되었습니다. 이 숭배가 아테네에 언제 소개되었는지, 리케이온이 성소가 된 시점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리케이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교가 설립되기 전에 철학 토론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 프로타고라스, 키오스의 프로디쿠스는 기원전 5세기에 리케이온으로 여행하여 가르치고, 토론하고, 연구 결과를 논의했습니다. 이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세기에 리케이온에서 수사학도 가르쳤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35년에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 건물 중 한 곳에 학교를 설립하여 강의를 하고 대부분의 책을 쓰고 역사상 최초의 유럽 도서관을 위해 책을 수집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항상 책 수집가였으며 알렉산더가 그에게 보낸 책으로 도서관이 성장했습니다. 그는 또한 식물과 동물 종을 보내 아리스토텔레스가 박물관을 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도서관은 많은 학자들을 그의 학교로 끌어들였고, 그들은 교사가 되어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학생들은 당시 가능한 모든 과목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학교는 모든 종류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공장에 비유되었습니다
250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이 유적지는 너무도 한적하고 고요하였습니다. 하지만 가슴 벅차게 눈을 감고 다시 뜨면 그 옛날의 철인들이 가르침을 전하던 모습들이 그려집니다. 이곳에서 25세기 이전에 그들이 인류의 축의 시대, 아테네에서 나누었던 질문들, 아르케(원리, 원인, 처음)를 사유하였습니다. 그 후에 인간에 대하여 탐구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시대를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지도자들을 육성하는 고급 학원이었기도 합니다.
https://blog.naver.com/seolhon/223656109318
링크 안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학원 유적지 동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에서 가장 훌륭한 제자였고 교수였는데요, 그가 플라톤 아카데미의 다음 원장 지도자가 될 수 있었는데, 플라톤의 결정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큰 실망이 되었을 것을 추정하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만의 독창적인 학원 리케이온을 세워서 그의 철학적 성과를 나누게 됩니다. 만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저 플라톤의 아카데미 학원의 다음 원장 지도자로 머물렀다면 절대 그의 위대한 철학적 교육적 업적이 다른 거대한 산맥을 이루지 못하고 플라톤에 파묻혔을 겁니다.
청출어람의 가장 모범적인 스승과 제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같은 뿌리이나 각기 다른 산맥을 더 높이 쌓아 올렸습니다.
언제 지어졌나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은 기원전 335년 리케이온 지역의 체육관 부지에 세워졌습니다. 아름다운 육체 건강한 육신을 중요시하던 고대 그리스에서 체육관은 젊은이들이 신체적으로 운동하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체육관은 점차 영적 운동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의미입니다.
리케이온의 산책 스토리는 무엇입니까?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철학 학파의 경계를 산책하다 보면, 고대 철학자가 손을 등 뒤로 모으고, 석류나무와 야생 허브 사이를 걸으며 제자들과 토론하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올리브 나무, 석류나무들과 야생 허브 사이를 걸어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제자들의 대화를 엿듯게 됩니다.
저는 이곳을 한 시간여 산책하면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과 마음의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2500여 년 전 그들도 똑같이 이곳을 산책하고 철학을 나누고 사상을 교류하였던 겁니다.
이 유적지의 고요한 주변 건물들은 마치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학원을 둘러싸고 보호하는 느낌입니다.
그 유적지의 흙더미 돌들이 일으키는 공명이 바람이 되어 그 바람에 전하는 지혜의 말들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무려 25세기 26세기 전에 인류의 철학이 인류와 이 세상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을 살면서 해야만 하는지?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심오한 성찰들이 이곳에 있었다는 점이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또한 그러한 성찰들을 위해서 동시에 건강한 육체를 위해서 운동을 하던 장소였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고대 그리스인, 아테네인들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균형 있게 성장하는 단련을 덕으로 생각하였던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 너무 몸짱, 얼굴짱에만 치우쳐 있는 SNS 현실이 이곳에서 경건한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